[골프타임즈=정노천 칼럼리스트] 아차산에 대한 자료는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가 쓴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나온다. 세조조 고사본말(世祖朝故事本末)에서 홍윤성(洪允成 1425∼1475)에 대한 글을 쓰면서 홍계관(洪繼寬)을 다루고 있다. 부계기문(涪溪記聞)을 인용한 연려실기술 내용에서 홍계관이 나온다. 부계기문을 쓴 김시양(金時讓 선조 14∼인조 21)은 어려서부터 문장이 뛰어나고 박식해서 이름이 높았다. 인조(仁祖) 때 이조 판서, 병조 판서, 4도의 관찰사를 역임했으며, 사후에 청백리로 선록(選錄)됐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가 기록한 홍계관의 사료를 보는 게 정설일 것이다.

홍윤성(洪允成)은 무과에 급제해 세조를 도와 그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이 되고, 이후 좌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 과정을 보면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에게 임금이 어리고 나라가 위태하니 정국(政局)을 바로잡을 큰일을 일으켜야 된다고 진언하고는 권람(權擥)을 모사(謀士)로 천거한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세력인 황보 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 원로대신을 살해, 제거하는 계유정난을 일으킬 때 적극 가담해서 협력한 홍윤성이 정난공신 2등에 책록했다. 성질이 사나워 권세를 얻은 뒤에는 행의(行誼)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기세(氣勢)로써 다른 사람을 능멸하고, 가노(家奴)를 놓아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있었으나 세조는 그가 정난(靖難)의 원훈(元勳)인 이유로써 단지 책망만 할 뿐 처벌은 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홍윤성은 호서(湖西) 사람으로 젊을 때에 뜻은 컸으나 때를 만나지 못했다. 향해(鄕解, 鄕試)에 합격해 서울에 들어왔다가 홍계관의 명성을 듣고 찾아갔다. 서울 안에 홍계관리(洪繼寬里)가 있는데 맹인(盲人) 점쟁이 홍계관이 살던 마을이다. 홍계관이 점 잘 치는 것으로 이름이 났으므로 그대로 마을의 이름을 삼은 것이라고 한다. 홍계관이 홍윤성의 운명을 꽤 오랫동안 점치더니, 꿇어앉아 공경히 말하기를, “공은 남의 신하로서 더할 수 없이 귀하게 될 운명입니다.” 하고, 이어 말하기를, “어느 해 어느 때에 공께서는 반드시 형조 판서가 될 것입니다. 그때 저의 아들이 죄를 받고 옥에 갇혀 죽게 될 것입니다. 부디 공께서는 나를 생각해서 살려 주십시오.” 라고 부탁했다. 이어 그의 아들을 불러서 말하기를, “네가 어느 때에 옥에 갇혀 심문을 받게 되거든 홍계관의 아들이라고 말만 하여라.”고 했다. 홍윤성은 깜짝 놀라 감히 승낙하지 못했다. 그 후 10년이 못되어서 공은 세조를 추대한 공으로 순서를 뛰어넘어 형조 판서에 임명됐다. 어느 날 큰 옥사를 국문하는데, 한 죄수가 부르짖기를, “죄수는 맹인 점쟁이 홍계관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 홍윤성은 그 말을 알아듣고 놓아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홍계관에 관련된 사실(史實) 기록이다. 이 사료로 보면 홍계관과 아차산은 전혀 동떨어진 상황이다.

후일 호사가(?)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전반부에 언급한 홍계관의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 당시 세조가 한갓 점쟁이를 만나 토닥거린다는 이야기는 맞지 않다. 그것은 어떤 음모가 조장돼 있는 것이라 본다.

첫째 왕이 천민과 만나는 이야기를 설정해 살인마의 이면을 누그러뜨리고, 둘째 아차산을 빗대 마지막 아량을 베풀어서 온정의 임금상을 그렸고, 셋째 청백리상 황희를 삽입하여 이미지 전환을 노렸으며, 넷째 고구려 산성을 만들고, 온달장군과 낙랑공주가 또 첨가되어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는 설이 나온다.

그것을 사실인양 되 뇌이다 보니, 역사의 진실이 된 듯하다. 모든 이야기 꺼리는 유명세가 타면 양산이 되고 덧붙여 확대, 재생산의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황희와 관련된 이야기도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홍윤성 보다는 황희를 대입하므로써 만인의 흥미를 더 유발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 전설도 때론 가치를 부여를 하고 재미를 양산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이면에는 지방자치단체와 주변 상권의 관광수익이라는 자본의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민족의 콘텐츠를 충분히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좋겠지만 역사적 사실을 비틀면서 까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긴 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그 원형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살이 풍요로워도 뼈대가 없으면 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 아차산에 무시무시한 처형장이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권력투쟁과 당쟁에서 밀려난 자들이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 서려있다”고 우리역사교육원 한문수 교수는 풍수지리적인 입장을 빌려 언급하면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그 등산길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해맞이 길’처럼 ‘아단산’이란 이름을 되찾아야 광명이 될 것”이라고 진담 반 농담 반 말을 던진다. 쥐새끼 3마리란 속사정을 맞추고서도 댕강 머리를 떨구어야했던 전설이 서린 곳. 그 전설이 현재 우리들의 의식을 장악하며 살아있는 것이다. 아차!

지금 온갖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역사현장이란 명분으로 칠갑을 한 그 작은 산은 내 의식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런다고 고구려 혼이 돌아온 건지 민족의 역사서인 <삼국사기>마저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삼국사기>를 취사선택하면서 산의 설명을 인용하며 엄청나게 써먹(?)는 노릇을 보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스토리텔링으로 역사현실을 비틀어 현대인에게 더 감칠 나게 세뇌시키려는 작업은 역사의식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역사인가 콘텐츠인가? 현대에 더 많은 위력을 끼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세종이 편찬한 역사지리말살서인 신찬8도지리지에서 억지로 꿰맞추려고 한반도로 축약시켜버린, 나약한 군주의 안주가 돼 버린 고구려의 그 웅비하고 용맹한 역사를 팽개치려하고 있다고 일부 뜻 있는 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국력이 악한 것인가? 주변국의 눈치를 보는 걸까?

우리 민족인 동이가 대륙에서 시작되어 중원을 호령하고 이 땅으로 전래됐다는 역사적 서사를 알려서 우리의 정신적 강역을 확인하고 민족적 정기를 되찾아야하는 것이 지금 할 일이 아닌지 묻고 싶다.

왜 어느 순간 누구에 의해 우리민족의 배포가 졸아들었는가를 아차산을 볼 때 분통이 터질 일이다. 산을 내려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정구 우리역사교육원 운영위원(국선도 구리선원 사범)의 심장강화 강의를 들으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물론 지나간 역사야 어쩌랴만 그 과거 역사가 미래가 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간과하고 사는 사람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현대인의 무감각한 모습을 보면 심장이 아프다. 너무 역사를 부풀려 가공할 필요는 없는데 그 웅장한 고구려의 정신을 여기 모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다고 본다. 이젠 역사적 서사보다는 지자제의 스토리텔링과 그 고구려의 혼과 정신을 계승한다는 철학과 사상으로 연계되어 문학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일말의 서글픔을 느낀다. 그렇게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 역사 혼이 살아간다는데 만족해야 하는 건지? 뼈대가 없는 확실한 역사관 없이 우리나라가 무슨 힘을 받을 것인지…

정노천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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