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노천 칼럼리스트] ‘아차!’라는 말에서 ‘아차!’하는 순간 역사의 단절을 맛본다. 논리적인 언어가 아닌 하나의 자극적인 반응의 영탄사다. 말의 어감상 아쉬움만 남지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한이 서린 문학적 정한으로 많이 차용한 영탄조가 아닐 수 없다. 아차산 능선을 따라가면 백제와 고구려가 진을 치고 싸웠다는 보루를 사이에 두고 아차! 하는 순간 죽은 자들(망우리 공동묘지)의 터로 들어간다고 누가 농담을 했다. 산자와 죽은 자로 나뉘는 길이라고 하는데 애써 우리는 산자의 마을인 고구려대장간마을 쪽으로 가닥을 잡고 일행은 내려섰다.

고구려(나라 이름을 표기할 땐 려(麗)가 아니라 리(麗)로 읽어야 한다-그래서 고구려를 상징하는 도시인 구리시가 구려가 아닌 구리로 도시 명을 표시)의 온갖 역사를 쏟아 버무려 놓은 돌산이 아차산(阿且山)이다. 신라·백제·고구려의 혈전이 벌어진 산이라고 해서 그런지 바위로 된 산이다. 오랜 세월 수목들은 바위 위에서 생을 꾸리느라고 그런지 쭉 곧은 나무는 드물고 대부분 구부러지고 비딱하니 비틀린 나무들이 주류를 이룬다. 마치 ‘춤을 추다가 다함께 멈춰랏!’ 구령에 따라 정지한 모습처럼 산발적이다. 또 바람이 불면 주문이 풀려 다시 나무들이 춤추는 모습을 연출하는 바위산이다.

아차산을 둘러보면 패국의 백제 흔적보다는 고구려의 흔적을 모조리 갖다 부어 놓은 산이라 얼마나 힘들까? 원래 아단산(阿旦山)이었던 것을, ‘해돋이 산’으로 불리던 이산은 천손 민족인 우리민족에겐 신성한 터였을 것이다. 서울에서 보면 ‘아침의 산’이었던 아단산을 태조의 이름에 단(旦)자가 들어갔다고 해서 피해야 하는 피휘(避諱)로 인해 아차산(阿且山)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아단(阿旦)이 아차(阿且)로 바뀌게 된 설을 보면 조선시대에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자 이름을 이 단(旦)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임금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피하려는 의도에서 비슷한 글자인 차(且)를 쓰게 됐다고 한다. 옛 기록에서 단(旦) 자와 차(且) 자가 함께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단산과 아차산이 다른 산이거나, 단(旦) 자를 차(且) 자로 잘못 판각(板刻)한 것이라는 여러 견해가 있다. 조선시대 이후에는 아차산(阿且山)의 한자가 바뀌어 아차산(峨嵯山)이라고도 부르고 있어 한자의 음차가 여러 가지로 변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차산의 이름에 얽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아직 분분하다.

아차산에 들어서면서 네댓 개의 역사적 서사를 만난다.

아차산의 유래에서 만나는 것은 시골 우리 동네 ‘장재 늪’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장자 못에 장자(부자)가 살았다. 그는 아주 심통이 많고 고약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저녁 장자의 집에 도사가 와서 염불을 하고 사주를 구했다. “옜다 이거나 가져가거라.” 하고 외양간에서 무럭무럭 김이 나는 쇠똥을 넉가래로 퍼서 줄 정도로 장자는 심사가 고약했다. “참 고맙습니다.” 라고 도사는 말하며 쇠똥을 받아서 가는 길에 근처 우물을 지나게 됐다. 그 집 며느리가 저녁쌀을 씻다가 도사를 불렀다. 바가지에서 쇠똥을 쏟아내고 씻은 저녁쌀을 손으로 한 움큼 떠서 주었다. 그 집에는 며느리밖에 쓸모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한 도사는 “젊은 댁은 날 따라 오시오. 그리고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뒤돌아보지 마시오.” 이렇게 당부를 하고 우미천을 지나가다가 별안간 뇌성벽력이 치면서 굵은 비가 막 쏟아지는 것이었다. 이때 “아이구 장독을 안 덮었네.”하고 며느리가 돌아보는 순간 아차! 그대로 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뒤 그 돌에 일 년에 한 번씩 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길 확장 공사를 하던 중 그 돌을 불도저가 밀어 한강에 빠트렸다고 전한다.

또 하나 민족의 공통적인 전설은 설악의 울산바위 유래와 유사한 것이 있다.

과거 한양성은 풍수지리 형세상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목멱산)이 각각 동서남북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세가 형성되기 전에 여러 산들이 한양성의 안산과 동서남북의 남쪽 주작을 이루는 산이 되려고 한양을 향해 왔다. 그러나 오는 도중에 지금의 아차산 자리에 이르러 한양 쪽을 보니 이미 그 자리에 종남산이 들어와 앉았던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퍼져 ‘아차!’ 했다고 하는 것에서 아차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도 재미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이야기로 아차산성과 연계된 온달(溫達) 장군을 만나게 된다. <삼국사기>를 보면 아단산에서 죽었다는 기록에서 이 아차산을 주목하고 있다.

고구려 온달장군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이 지역을 차지한 후 고구려 영양왕 때, 평강공주의 남편이며 평강왕(평원왕)의 사위인 온달 장군이 신라에게 빼앗긴 이 지역을 비롯한 죽령(竹嶺) 이북의 땅을 되찾기 위해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곳 아차산 산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는 것이다.

이때 온달 장군의 시신을 평양으로 옮겨 가려 했으나 장군의 한이 맺혔든지 영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아내인 평강공주가 평양으로부터 와서 관(棺)을 어루만지며 “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됐으니, 돌아갑시다” 하자 관이 움직였다. 이 서사는 황진이를 짝사랑한 총각의 죽음으로 그 정한이 이어진다. 어쨌든 오늘날 이곳 주민들은 “아차! 온달 장군이 이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구나.”라는 의미로 이곳을 아차산이라 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온달 장군이 전사한 이야기와 평강공주가 와서 달래어 돌아갔다는 것은 역사 기록(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그 장소는 여기 아차산이 아니다.

과연 고구려의 평원왕의 시위인 온달이 이 땅에서 죽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당시 고구려는 중원 대륙을 호령하던 우리 민족의 본거지인 중원에서도 하북성의 어느 전투라고 오학림(우리역사연구원) 교수는 말하고 있다. 과연 온달이 바쁘게 중윈에서부터 한반도 이곳까지 오락가락하며 싸웠을까 하는 말이다.

대륙의 일을 이 땅에 끌고와서 억지로 꿰맞추려니 아귀가 어긋난다고 오 교수는 지적했다. 제대로 된 역사를 써 내려가지 않는다면 누가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미래를 두려워할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생전 처음 이산에 발을 들여 넣으면서 갖는 내 삶은 역사적 서사와 만나면서 혼돈스러워 진다. 역사적 사실이 힘의 논리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각색되어진다는 역사적 진의에 대한 의구심이다.

정노천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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