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노천 칼럼리스트] 총칼로 겨뤄서 얻은 물리적인 영토의 강역 역사뿐만 아니라 정신과 문물, 가치관으로 겨뤄서 패배한 역사도 역사의 한줄기가 아니겠는가하는 오늘날 현대적 역사관을 만난다. 과거 우리의 역사 흔적이 있는 곳이 우리 역사의 강역이 아닌가?

아차산에서 또 하나의 얼토당토 않는 전설과 막딱뜨린다.

조선시대 세조 때 장님 점술가 홍계관의 전설이다. 그의 점괘가 신통했지만 세속을 어지럽힌다는 못마땅함에 세조는 그를 궁에 불러 시험을 한다. 계유정란의 핵심인 세조는 준비한 궤짝을 내 놓으며 물었다. "이 안에 뭐가 있는지 맞춰 보아라. 맞추면 너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이고 틀리면 네 목을 자를 것이니라.” 홍계관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쥐가 들어 있습니다” 놀란 임금은 두 번째 질문을 했다. "몇 마리가 들어 있느냐?" 질문을 받은 홍계관은 세 마리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궤짝을 열자 쥐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리가!” 홍계관은 꼼짝없이 죽음을 당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자기의 점괘가 틀린 것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홍계관은 과거 자기 사주를 보다가 훗날 참형을 당한다는 점괘가 나와 황 씨 성을 가진 이에게 목숨을 구명할 수 있다는 방비책이 나왔다. 그래서 만난이가 황희의 셋째 아들 황수신이었다. 그에게 훗날 형조판서가 될 것이란 점괘를 알려주고 나서 어떠한 경우라도 나의 목숨을 구해준다는 약속의 글을 얻어 두었던 것이었다. 홍계관은 그 글을 아차산에 있는 사형장으로 끌려 갈 때 내보였다. 그의 점괘대로 그날 형조판서가 된 황수신은 홍계관의 죽음에 맞닥뜨린 점괘가 맞아 뜨끔했고 과거에 약속한 만큼 그를 살려야 했다. 그래서 세조에게 부탁했고 쥐의 배를 갈라보게 했다. 그러자 배안에서는 새끼 쥐 두 마리가 더 나왔다. “이런, 죄 없는 자를 죽이려 했다니, 여봐라 어서 가서 사형 집행을 멈추고 그를 데려 오너라.” 고 세조는 명을 내렸다. 파발마가 급히 달렸다. 그 시간 아차산 입구에 있던 처형장에서는 망나니의 시퍼런 칼날이 홍계관의 머리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홍계관은 점을 치니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는 칼을 든 집행관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청했다. 죽기 전의 청이라 집행관도 들어 주고 잠시 앉아 쉬고 있었다. 이때 “어명이다! 기다려라!” 말을 타고 달려오는 전령이 멀리서 외쳤다. 그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지 않아 집행관은 자기가 형 집행을 늦추고 있어 고함을 치는 줄 알고 그만 칼을 휘두르고 말았다. 아차! 그런 일이 있은 뒤 형장의 위쪽 산이 아차산이 됐다는 유래도 있다. 물론, 이 설화는 아차산의 이름이 이미 있은 후 산 이름과 연관해서 홍계관의 일화를 끌어 들인 이야기일 것이다.

홍계관의 목에 망나니의 칼날이 덥석 떨어지지 않았다면? 조정에서 좀 더 빨리 말을 달려 형집행을 멈추었거나 했다면 역사는 바꿨을까? 역사에서 가정이란 필요 없지만 가정이 인정된다면 문학의 영역으로 달아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세월이 흐르면 늙어서 죽어야할 운명이었고 역사 속에 파묻히고 말았을 이름이었는데 그나마 이런 사연으로나마 이름이 남아있으니 잘된(?) 일일까? 당시 참형을 당한 그에겐 아쉬움이야 남지만 죽지 않았더라도 영생을 살수도 없었을 거니와 또 살아남았어도 무엇을 남겼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게 소위 말하는 역사성이 아닐까?

여기에서 또 여러 가지 상념이 스쳐간다. 문학을 하는 박대명이란 시인이 있다. 할아버지가 궁내부에 근무하셨는데 육조 거리를 출퇴근할 때 나귀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울과 인천 간에 전화가 개설됐다. 그 할아버지가 당시 전화가설을 담당했는데 그 전화 덕택으로 김구가 처형 직전에 풀려났다고 했다. 고종이 죄를 사해 전화로 사형을 중지케 해서 가까스레 목숨을 살려낸 역할을 한 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전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고 한다. 세조 때 전화라도 있었다면 하는 가정도 해본다. 그럼 홍계관은 더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것이 시네마천국이란 영화다. 남녀가 서로 엇갈릴 운명이라서 그런지 오가는 길이 엇갈려 평생을 이별했다는 가슴 아린 사연이 영화의 근간을 이룬다. 지금처럼 핸드폰이라도 있었다면 서로 비켜가지 않았을 결별이었다. 오늘날이라면 지하철을 타도 광화문에서 아차산역까지 30분도 안 걸리는 시간인데 그 시간이면 충분히 홍계관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냥 멀리서 핸드폰 하나만 울려도 사형을 중지했을 텐데 하는 가정을 해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핸드폰이 있는 요즘이라해서 일이 척척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만남이 용이해진 만큼 헤어짐도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되어 핸드폰이란 문명의 이기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형장입구에 다다라 ‘형을 멈춰라’는 전령의 손짓이 ‘형을 빨리 서둘러라’는 착각으로 여겨 칼을 내려쳤다니 그게 역사성이 아닐까? 아차!

인간의 목숨이란 정략관계로 어차피 죽일 작정이었다면 풀잎 한 가닥에 이유를 걸고, 남이장군처럼 글자 한자에도 덮어씌우고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하찮은 쥐새끼를 이유로 사람 목숨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라면 인간의 목숨이란 참 하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알렉스 헤일리가 지은 소설 ‘뿌리’의 인물 중에서 규칙을 어긴 노예의 생명을 다음날 치르는 닭싸움 게임에서 주인의 닭이 이기면 살려주고 지면 죽이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싸움닭보다, 쥐새끼보다 못한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이 주인과 노예, 양반과 쌍놈이라는 반상의 계급이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 속에 묻어 있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죽일 것은 이미 죽을 운명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앞에서 이야기한 장자의 전설에서도 보면 이미 장자의 집안은 몰살될 운명이었다. 집안을 몰살 시킬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 능력이라면 이미 시주를 주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도사는 이미 간파했을 것이고 시주를 간 것은 하나의 의례적일 요식행위일 뿐이다. 소재만 똥이냐 쌀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 며느리마저도 이미 죽을 운명이었기에 ‘뒤 돌아본다’는 금기를 깰 수밖에 없이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돌이 돼버린 상황이다. 돌이마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럼 돌산인 아차산도 입을 다물고 있다는 말인지?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그 시대의 집단 무의식이 추구하는 욕망의 결정체로 화소가 변해간다는 사실이지만 역시 비극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역사 속에서 죽어간 죽음이 다 비극일 수는 없지 않는가? 이미 역사란 그 시대상에선 어떤 역할을 하고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진 자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돌출 시켜도 어쩔 수 없는 역사적 교훈성의 맹점이랄까.

여기 아차산에서 평강공주라는 역사 속의 롤 모델을 탄생시킨 것은 좋지만 마치 이순신 장군이 당시 상황에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을 사심 없이 나선 불굴의 애국정신으로 부각해 정권의 이데올로기로 활용했듯이 평강의 정신을 한껏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선 역사 속에서 부합하는 인물을 하나 꺼내서 활용하는 것이다. 그가 시대상에 충실했건 말건, 시대상에 맞건 말건, 진실에 입각했던 말든 그의 옷은 현재의 권력자가 재단하고 입힐 뿐이다.

홍계관의 신통한 점괘도 권력의 간극을 비켜서지 못했다. 실제는 배속의 새끼 쥐처럼 보이는 것만 인정하느냐 않느냐는 사관에 따라 진실이 되고 안 되는 것이라면 아차산의 역사도 그렇지 않은가? 아차란 진실이고 덧칠이고 간극의 역사인식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출해내야 하는가하는 역사성 보다는 사상적 문제를 던져 주고 있다. 과연 세조가 계유정란의 그 어지러운 사회를 잠재우기 위해 혹세무민한다는 그 점쟁이를 본보기로 죽이고자 했다면 쥐가 한 마린들, 세 마린들 아니면 아홉 마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애초에 죽인다는 그 한 가지 사실과 다를 바 없다. 천부경의 숫자 놀음이 아니다. 그때 쥐가 3마리가 맞는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칼자루를 쥔 자가 마음을 고쳐먹고 살려주려 했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면서 인간의 삶에서 부조리함을 다시 곱씹게 한다. 아차!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호사가들에 의해 전설적인 이야기로 확대·재생산 됐을 뿐이고 실제적인 이야기를 놓칠 뻔 했다.

정노천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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