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박소향)

[골프타임즈=이정인 시인] 갑자기 섬 여행을 가자고 하는 딸의 말에 그렇게 하자고 해 놓고 보니, 온통 급한 일이 천지에 나를 압박한다. 그럼에도 마음은 떠나자고 강하게 유혹을 하니 그냥 미련없이 떠나버렸다.

올해는 일복이 터졌는지 일을 끝내고 돌아서면 다시 일이 생기고는 한다. 어차피 하는 거 즐겁게 하자고 외치며 나는 여수 밤바다의 별빛을 향해 떠났다. 마치 별빛
사막이라도 가는 것처럼 발걸음에 들썩이는 마음이 된다.

목적지까지의 거리 380키로를 가는 동안 마치 인생의 큰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눈발이 날리다가 멈추다가, 바람이 불다가 주춤하다가, 다시  해가 쨍쨍 비추는 풍경이 되면서 자연이 주는 웃음. 이런 날은 모든 마음을 비워보기로 한다.

하루가 꼬박 여행지 까지의 거리를 이동하는데 쓰였다. 여수에 도착해 보니 저녁이 시작 되고 있었다. 섬에 왔으니 섬 먹거리를 먹어야 한다는 마음에 항아리 물회와 대게찜을 주문했는데 반려견 동반 여행은 늘 제한적인 곳이 많다. ㄱ래서 우리는 식당에서의 식사를 포기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여수 밤바다를 보러 가야 하는데 너무 피곤 해 대신 와인에게 피곤을 건네주니 웃음이 나온다.

시골 밤하늘의 별도 세어보며 폭죽도 터트리고 밤을 가득히 채워  본다. 며칠 봄날 같더니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을 느끼며 아침 바다길도 걸어보는 한가함이 즐겁다. 이렇게 한 해 끝자락의 시간이 만족스럽게 흐른다.

아무리 추워도 우리의 목적인 여수 밤바다의 낭만은 제대로 느껴야 하기에, 화장을 지우고 가장 편한 옷을 걸치고 자유롭게 밤바다와 마주한다. 바다 앞에서는 수다장이가 되어도 괜찮고 낭만주의자가 되어도 괜찮다.

그냥 지금 이 시간 이 느낌이 참 좋을 뿐이다. 23년은 나의 키가 한뼘 쯤 커진 듯한 소용돌이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왕 흐르는 생 따지지 않기로 해서 그런지 그 많은 어려움도 마음은 잠잠히 탄력을 유지하는 중이다.

자리를 잠시 비운 3일 동안의 일이 거침없이 늘어나 있겠지만, 나는 나의 자유로운 영혼에게 휴가라는 옷을 입혀 주었고 덕분에 집으로 오는 길은 손에서 전화기를 놓을 수 없는 분주함이 주어진다.

한가한 시간의 여행도 좋지만, 바쁜 틈을 이용해 먼 거리를 다녀올 수 있는 시간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여수 밤바다에게 남겨놓은 이야기를 찾으러 곧 다시 다녀오고 싶을만큼.

시인 이정인은
시와수상문학 작가회 사무국장, 옳고바른마음 총연합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2019년 언론인협회 자랑스러운 교육인상을 수상했다. 칼럼니스트와 시인으로서 문학사랑에도 남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