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하 작가] 아무튼 회사에서 확실한 검증 없이 펴낸 「트라이앵글」이라는 책으로 인해 무고한 한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한바탕 총성 없는 전쟁이 치러질 것이다. 물론 책임자들은 배 째라고 배짱을 부릴 것이다.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홍달표 부장이 가장 큰 부담을 질 만한 사람이지만 약삭빠른 그가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턱이 없다. 더욱이 국장은 물론 사장도 당연히 모른 척할 것이다. 그들의 위선은 이미 검증된 바 있으므로.

결국 조수미만 불쌍한 희생양이 된 셈이다. 이제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가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엉덩이에 뿔이 난 못난 망아지 한 마리로 인해 중간에 삶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유능한 젊은 일꾼을 잃은 방송사로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들도 사건을 축소화하고 은폐시키려고 애쓸 터이다.

얼마 후 간부회의는 끝났다. 이한무가 국장실에서 나와 함봉호를 부른다. 구본하는 짐짓 모른 척한다. 하지만 구본하의 자리는 이한무의 바로 앞에 있었으므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생생하게 들린다.

“그래, 치앙마이가 그렇게 위험한 곳인가?”

이한무가 화두를 꺼낸다.

“아니요, 제가 볼 때는 그리 위험한 곳이 아니던데요.”

“그런데, 어째 죽는 일이 벌어질 수 있나?”

“확실히 죽은 것이 맞습니까?”

“응,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보는 것이….”

“설마 했던 것이 정말이었군요.”

“허 참, 어이가 없네 그려.”

이한무가 혀를 끌끌 찬다.

“조수미 씨 남편이 죽은 곳은 치앙마이가 아니고 미얀마입니다. 제가 치앙마이에 갔을 때 이미 그는 미얀마로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렇다면 치앙마이선 별볼일이 없었다는 얘기군.”

“허헛, 부장님도 눈치 하나는 빠르시군요.”

“그런가?”

이한무가 우쭐거린다.

함봉호는 속으로 웃는다. 그런 그가 가증스러울 따름이다.

“참, 치앙마이 취재 건은 어떻게 할까요? 기사로 쓸까요? 아니면 없던 일로 할까요?”

“글쎄, 아직까지는 국장님이 뭐라 그러지 않았으니까 쓰는 걸로 하지.”

이한무는 적당히 둘러댄다.

그는 자신이 없을 경우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얼버무린다. 그럴 때면 이한무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묘한 제스처를 쓴다. 원숭이처럼 입을 쫑긋거리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면 영락없는 원숭이가 된다. 그가 그런 야릇한 짓거리를 하는 원인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본인은 정작 그 사실을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함봉호는 이한무와 대화를 끝내고 노트북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함봉호는 비겁해지려는 자신을 타이른다. 어쩔 수 없는 굴복이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며 영웅심을 표출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을 질책한다. 혼자 잘난 척해 봤자 스스로 무덤만 파는 일임을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모두가 다 부질없는 짓이다.

함봉호는 서두부터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 치앙마이의 고산지대에 사는 라후족이 우리 고구려 민족의 후예가 틀림없노라고 결론부터 내린다. 1바트의 지폐를 주어야 비석치기와 공기놀이를 하는 그곳 아이들의 위선은 이미 버린 지 오래 전이다.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솟대도 우리의 것과 거의 똑같다고 적는다. 물론 함봉호는 현지에서 솟대를 발견한 적이 없다. 아기 업은 엄마의 키질이 우리네 시골 아낙들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쓴다. 편집할 때는 그 당시 찍은 여인의 사진도 당연히 첨부해야 한다.

태국 치앙마이 탐방 기사는 웬만하면 오늘로서 끝내야 한다. 원고를 늦게 써서 괜히 이한무에게 책 잡힐 필요는 없다. 이한무는 부원들의 원고 마감이 늦으면 발작하듯 호통을 친다. 특히 함봉호가 늦을 경우는 더욱 노발대발한다. 이른바 일종의 질투심이다. 그 도는 함봉호가 생명보험회사에 주간지 3만부를 확장한 이후 훨씬 더해졌다.

당연히 치앙마이 원고는 빨리 쓰는 것이 유리하다. 아무리 수첩에 당시의 감정을 잘 적어놓았다고 해도 시간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불리해지게 마련이다. 모든 기사가 다 마찬가지다. 인터뷰 기사도 대담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쓰는 것이 현명하다. 무슨 기사이든 따끈할 때 빨리 끝마치는 것이 최상책이다.

함봉호는 기사를 쓰는 동안 줄곧 대학에서 배웠던 ‘기자 정신’과 은연중 전쟁을 치른다. 기사를 거짓말로 쓴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인 줄 그는 미처 몰랐다. 하지만 그는 속의 녀석과 한바탕 격전을 벌인다. 적당히 회유를 하였다가 때로는 윽박지르기도 한다. 당연히 반발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함봉호는 속의 녀석과 잘 타협한다. 이미 오래 전에 똥 같은 자존심을 내팽개친 그다.

“어이, 함봉호! 나랑 점심 식사나 하지?”

뜻밖에 출현한 이병채 상무의 목소리가 함봉호를 두들긴다.

잘 연결되지도 않는 기사로 고민하고 있던 함봉호는 필요 이상으로 화들짝 놀란다.

“뭘 그리 놀래? 뭘 하는데….”

이 상무가 노트북에다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아, 상무님 오셨어요?”

함봉호는 바짝 긴장이 되어 벌떡 일어선다.

“벌써 기사 마감인가?”

“아, 네. 빨리 막고 다른 일 하려구요.”

“그래? 하지만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마. 없는 일을 마치 있는 것처럼 부풀리지도 말고….”

이 상무가 묘하게 말꼬리를 붙잡는다.

함봉호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진다. 이 상무가 갑자기 찾아와 점심 식사를 하자는 것이며, 기사 쓰는 일까지 관심을 가진다는 자체가 부담스럽다. 함봉호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이 상무에게 인사를 갔었다. 함봉호로서는 감히 인사를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함봉호가 태국 치앙마이 해외여행 취재를 떠날 때 이 상무의 여비서가 그에게 촌지를 주었던 것이다. 10만원 수표 한 장이었지만 그로서는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함봉호는 이 상무에게 가장 비싼 선물을 사다주었다.

출판국 말단 기자에 불과한 함봉호가 텔레비전에 나올 만큼 대외적으로 유명한 이 상무와 함께 잘 어울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다. 물론 유명 스타라고 다 건방을 떠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사람일수록 의외로 자신을 낮추는 데 익숙한 부류들도 많다. 함봉호가 개인적으로 볼 때 이병채 상무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는 관점까지 다 똑같을 리는 없다.

이 상무는 의외로 독선적이고 고집이 센 사람이다. 이 상무의 현재 위치는 논설위원실장이지만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는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다. 그러므로 이 상무의 밑에 있던 편집국 기자들은 그를 좋게 볼 턱이 만무하다. 함봉호는 ‘등하불명(燈下不明)’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임을 새삼스럽게 떠올린다. 함봉호가 먼발치에서 바라본 이 상무는 문제가 전혀 없는데 말이다.

“네, 알았습니다.”

함봉호는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린다.

“야, 이한무! 넌 나중에 나랑 한잔하고….”

이 상무가 이한무 부장에게 마지못해 한마디 한다.

이한무는 이 상무에게 만큼은 고양이 앞의 쥐다. 이한무는 같은 대학 후배인 자신을 이 상무가 잘 챙겨줄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함봉호가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은 형국이다. 게다가 이한무를 출판국 주간지 부장으로 쫓아낸 장본인이 바로 이 상무였기 때문이다. 술 마시고 툭하면 결근하는 이한무가 편집국장으로 재직 중일 때 이 상무에게 찍히는 것은 당연지사다.

경상도 출신인 이 상무는 성질이 급한 편이다. 기자 공채 1기생인 이 상무로서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신문 산업이 양대 산맥으로 재편되어 있던 그 당시 새롭게 창간된 신문의 어려움은 바람 앞의 촛불 같았다. 그런 신문을 창간 작업한 1기생으로서의 어깨는 당연히 무거운 것이며, 그래서 그가 걸어온 길이 탄탄대로일 리가 없다. 실제로 그는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신문사로 일구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었다.

묘하게도 신문사 사람들의 대다수가 전라도 출신이었다. 창업주의 고향이 전라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맥이 그 쪽으로 형성된 것이다. 결국 우리 나라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지방색이 당연히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중도 탈락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왔다는 자체가 경이적인 사건이다. 가뜩이나 중간에 창업주가 죽고 엉뚱한 사람들이 사장으로 재직했기에 더욱 그렇다.

함봉호가 이병채 상무와 나이 차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거리낌없이 친해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깔려 있었다. 함봉호는 신입 사원 시절에 이 상무와 함께 창업주 추모록과 사보를 창간한 경험이 있다. 결국 두 사람은 우연히 이 무렵에 자주 접하면서 서로 알게 된 것이다. 대학에서 학보사 편집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던 함봉호로서는 오랜만에 제 실력을 발휘했고, 이 상무는 그런 그를 눈여겨보았다. 사내의 실력 있는 직원을 찾으려고 애썼던 이 상무로서는 그것이 마냥 수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함봉호가 그의 눈에 들어왔던 셈이다.

게다가 이 상무는 조수미의 결혼 주례까지 섰다. 공중파 방송국에 나가 시사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이 상무는 거기서 우연히 조수미의 남편을 알았다. 프로듀서로 재직 중인 조수미의 남편이 그에게 주례를 부탁했고, 이 상무로서는 대학 후배인 데다 앞날이 창창한 그의 주례를 흔쾌히 맡아 주었다. 또한 이 상무는 조수미를 자연스럽게 주간지 객원기자로 소개했다. 객원기자는 정식 직원이 아니었으므로 소개나 추천 정도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이 상무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상무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는 투로 함봉호에게 자초지종을 묻기 위해 점심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복어 매운탕을 즐겨 먹었다. 함봉호와 함께 들른 식당은 ‘부산 복집’으로 충무로에서는 익히 유명한 집이다.

식당 주인 여자도 이 상무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텔레비전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데다 식당 단골손님이었으므로 잘 알 수밖에 없다.

“복매운탕 괜찮지?”

“아, 네.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복매운탕으로 주시죠. 그리고 소주 한 병도….”

이 상무는 주인 여자에게 뜻밖의 술까지 시킨다.

신문사 사람들이 점심 식사 때 습관처럼 즐기는 것이 반주다. 이 상무도 역시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다. 물론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닌 함봉호도 가끔씩 몇 잔 정도는 했다.

“그래, 치앙마이에 가보니 어떻던가? 정말 그 곳이 사람이 죽을 만큼 위험한 덴가?”

“아닙니다. 조수미 씨 남편이 죽은 곳은 치앙마이가 아니라 미얀마입니다.”

“그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었군.”

“네, 그렇습니다. 제가 치앙마이에 도착한 날 바로 하루 전에 미얀마로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누가?”

“김 박사가요.”

“그런데 왜 미얀마로 넘어갔지? 치앙마이에서 탐방하지 않고….”

“네, 그게 좀….”

“어허, 나에게는 솔직하게 말해 봐. 내가 모른 척할 테니까.”

함봉호가 슬며시 말꼬리를 감추자 이 상무가 은근슬쩍 질책한다.

“글쎄요. 꼭 그렇다고 확증할 만한 물증을 구해 오지는 않았지만, 치앙마이 근처에 있는 태국 고산족들에게선 별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아하, 그래서 미얀마로 넘어갔군.”

“네, 추측컨대 그것이 맞는 듯했습니다. 저도 막상 가보고 나서 후회를 했으니까요. 저와 함께 간 여행사 김 전무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구요.”

“그래? 그럼 김 박사가 사기친 거구만!”

“글쎄요.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좀 켕기는 것이 있는 듯했습니다.”

“참, 결국 그 사기꾼 때문에 무고한 젊은이가 죽은 거 아냐!”

“상무님, 그 PD가 정말 죽은 것이 맞습니까?”

“음, 맞아. 수미에게는 충격받을까 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거지.”

“아, 그랬었군요. 그렇다면 지금쯤 방콕에 도착해 남편 시신을 확인하고 오열하고 있겠군요.”

“그래, 참 안됐어. 앞날이 창창한 친군데….”

“…….”

“자, 한잔 하지.”

이 상무는 부아를 삭히려는 듯 소주를 단숨에 입에다 털어 넣는다.

함봉호도 마지못해 한잔 마신다. 창자에까지 전기가 찌르르 흐른다. 알코올이 벌써 그 먼 거리의 뱃속까지 타고 흘러갈 턱은 없다. 함봉호도 그만큼 열 받아 있다는 뜻이다.

“그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여행 사업 건 말일세.”

역시 이 상무의 성질은 급한 편이다.

“아, 제 개인적으로 볼 때…, 여행 사업을 백지화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이지?”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조수미 씨의 남편이 사망한 데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있구요. 또 다른 하나는 여행객들이 갔다 오고서 실망할까 두렵습니다.”

“그래? 그 정도인가?”

“물론 김 박사가 낸 책이 소설이라는 점에서 면책 사유는 됩니다. 소설은 엄연히 픽션이니까요. 하지만 소설 밖에서도 라후족들이 고구려의 후예가 분명하다고 얘기하고 다니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허, 참….”

“물론 어느 정도는 우리와 흡사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점은 호주와 필리핀의 원주민, 뿐만 아니라 인디안이나 멕시코인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연 그들을 고구려의 후예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허헛, 자네 많이 연구했군 그려. 잘 알았네. 자, 그만 식사나 하자구.”

이 상무는 그쯤에서 말을 끊는다.

식당에 꽉 들어찬 사람들이 괜히 신경이 쓰인 탓이다. 이 상무의 얼굴이 일반인들에게 웬만큼 알려진 것도 부담이 되었다. 함봉호도 자칫 누군가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좀은 무안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열을 올린 것이 부끄럽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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