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하 작가] 한 시간 후 차가 도착한 곳은 라후족 마을이다. 김영무가 근무하는 여행사의 순례 코스에 집어넣기로 잠정 합의한 곳이다. 한국인과 생활 풍습이 비슷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관심을 끌 만하다.

함봉호와 김영무는 김 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로 들어선다. 그들이 마을로 들어서자 얼핏 한국인을 닮은 듯한 얼굴을 가진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든다. 씻지 않아 때가 꼬질꼬질한 옷가지는 영락없이 거지 차림이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손을 내민다. 혹시나 사탕이나 빵을 주지 않을까 하고 눈알을 굴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김 박사는 아이들에게 1바트씩 나눠주며 각자의 묘기를 유발시킨다. 함봉호는 그 장면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란다. 굳이 돈을 주어야 하는 아이들의 놀이가 우스꽝스럽다. 아이들은 원숭이처럼 갖가지 재주를 보인다. 공기놀이, 사방치기, 비석치기, 고무줄놀이 등 한국의 아이들이 하는 것과 똑같다. 문제는 돈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돈에 길들여진 아이들 같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엄한 놈이 챙기는 듯한 느낌이다.

함봉호는 카메라 셔터를 연방 눌러댄다. 아이들의 놀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김 전무님,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아이들에게 돈을 주며 놀이를 시키는 것이….”

“나도 같은 생각이라오.”

함봉호는 김 박사가 아이들과 말하는 틈에 작은 목소리로 김영무의 의사를 타진한다.

역시 김영무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잠시 후 김 박사는 라후족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을 안내한다. 라후족들이 살고 있는 집은 획일적이다. 모두가 우리 시골의 원두막과 거의 비슷하다. 그런 특이한 구조는 치앙라이 교외의 집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이런 원두막 집을 짓고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어요. 우선 사람에 해로운 뱀 같은 동물을 피하기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땅의 습기를 막기 위한 것이지요.”

김 박사가 김영무에게 설명한다.

그는 뒤에 서 있는 함봉호랑 가능하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을 진작부터 알아챈 함봉호도 웬만하면 눈길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함봉호는 묘한 낭패감에 사로잡힌다. 눈치가 빠른 함봉호로서는 지나친 착각이라고 믿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고산족들의 집은 실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방은 단 하나뿐이다. 방안에는 특이하게도 화롯불이 하나씩 있다. 한국의 경우 겨울철에나 볼 수 있는 화로를 열대 지역인 이곳에 상시 있다는 점은 분명 신기한 구경거리이다.

김 박사와 함께 찾아간 집에는 노파와 아기를 업은 젊은 여인이 하나 있다. 김 박사가 여인에게 뭐라고 하자 그녀는 어디선가 옥수수를 담은 키를 가지고 나와 까부른다. 아주 그럴 듯한 한국의 시골 아낙 같다.

여인은 키가 작달막한 반면 젖가슴은 풍만하다. 하지만 그 젖가슴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채 살짝 드러나 보인다. 누가 보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무관심이다. 단지 아기에게 젖을 주는 기구로밖에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함봉호는 그 여인을 보면서 문득 생전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동생들에게 젖을 주려고 젖가슴을 내놓는 일에 별달리 망설이지 않았던 그 얼굴이 중첩된다.

함봉호는 그 모습을 보자니 측은한 마음이 앞선다. 그도 김 박사가 하던 대로 10바트의 돈을 여인에게 건넨다. 겨우 1바트만 주는 김 박사에 비하면 훨씬 많은 돈이다. 하지만 우리 화폐로 따지면 겨우 300원에 불과하다. 솔직히 더 주고도 싶지만 그나마 가까스로 절제한 결과이다. 뜻밖의 큰돈을 받아든 여인은 허리를 최대한 굽실거리며 황송해 한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다하겠다는 듯이 키를 더욱 정성스럽게 까부른다.

함봉호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 마을이 순전히 여행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생각보다 깊은 오지가 아닌 데다 마을 사람들이 돈에 잘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박사는 여기서 다시 함봉호 일행과 헤어져야 한다고 이미 귀띔한 바 있다. 그들은 또 다른 가이드를 따라 콕강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함봉호는 아무리 바빠도 답사단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데 부아가 치밀어 슬그머니 뒤로 빠져 언덕배기로 올라간다. 라후족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 쓰러져 가는 대나무 이층집이 더욱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마을 정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눈을 꿈벅이며 되새김질하는 소가 바이없는 우리네 시골 모습과 흡사하다.

함병호는 그 언덕에서 우연히 두 마리의 흑염소를 발견한다. 불현듯 쓸데없는 웃음이 허망하게 툭 터져 나온다.

“애애애~ 응애!”

그는 염소를 향해 한바탕 울부짖는다. 반갑다는 뜻의 인사이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어미 염소도 대답한다. 함봉호는 새삼스럽게 국적이 다른 염소가 자신의 울음소리를 알아준다는 사실에 감동한다.

그는 다시 새끼 염소에게 말한다. “엄마 말 잘 듣고 속 썩이지 말라”고. 그러자 새끼가 가냘픈 목소리로 “그러겠노라”고 대답한다.

함봉호는 언덕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나서야 한결 가벼워진 기분을 느끼고 발걸음을 마을 쪽으로 옮긴다. 밭에서 일하던 마을 사람들이 허리를 펴고 습관적으로 낯선 이방인에게 미소 짓는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싶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아무래도 돈을 달라는 뜻의 미소인 듯하다. 적어도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은연중 몸에 배었을 법하다.

이들의 치아는 거의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이들이 양귀비와 엇비슷한 풀을 습관적으로 껌처럼 씹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풀에는 마약 성분이 담겨 있어 끊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습관이 그들의 수명을 짧게 하는 원인이라고, 마치 대단한 연구를 끝낸 과학자처럼 으쓱한다.

“함 기자님, 이거 또 미안해서 어쩌지요?”

김 박사가 언덕에서 내려온 함봉호에게 겉치레 인사를 한다.

콕 강변에 흩어져 사는 진짜 고산족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따라가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뜻이다. 이는 김 박사가 나름대로 함봉호 기자를 연구하고 파악했다는 심산(心算)일 수도 있다.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소원하지 않도록 치밀한 계산에 따른 셈법이다.

“아, 아닙니다. 그럼 우리를 그곳까지 안내해 줄 가이드는 어디서 만나나요?”

“아, 네. 그건 걱정 마세요. 이명수 씨가 그곳까지 안내해 줄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새로운 가이드가 고산족이 있는 마을까지 안내해 주나요?”

“네, 그럼요. 그건 그렇고, 이거 미안해서 점심 식사를 제가 대접할 테니 그만 갑시다.”

김 박사는 특유의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돌린다.

함봉호 일행은 김 박사와 몇 명의 아이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마을을 나온다. 김 박사가 안내한 식당은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다. 예쁜 연꽃이 아름답게 핀 작은 연못이 인상적인 식당은 관광객을 전문으로 하는 집답게 깔끔하다. 연못에는 색이 고운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연못 중간에 있는 콰이강을 흉내낸 모형 다리 위에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한껏 포즈를 취한다. 함봉호와 김영무도 그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참, 얼핏 듣기에 고산족 사람들의 수명이 상당히 짧다면서요?”

함봉호가 김 박사에게 뜻밖의 질문을 한다.

앞으로 김 박사를 볼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직감한 이후 불식간에 나온 말이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불식간에 달려드는 무료(無聊)를 달래는 뜻도 있다.

“네, 대체로 수명이 짧아요. 의료 시설이 없는 데다 에이즈까지 번지고 있어 큰일입니다.”

“네? 에이즈요?”

“아, 모르시는군요. 태국은 에이즈 환자가 많아요. 그래서 함부로 홍등가에 가면 안 되지요.”

“그건 아는 사실입니다만, 어떻게 고산족들에게까지 에이즈가!?”

“참, 그것이 서글픈 현실이죠.”

김박사는 혀를 끌끌 차고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곳 고산족 소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방콕의 밤거리로 많이 나갑니다. 특이하게도 방콕의 홍등가는 우리나라와 같은 그런 인신매매는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1년이나 2년 정도 일하고 떠나면 그뿐입니다. 고용주는 소녀들을 강제로 붙들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그곳에서 일하고 마을로 돌아온 소녀들이 에이즈를 자신도 모르게 옮기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마을 전체에 퍼진다는 게 좀?”

“아하, 고산족 사람들은 성적으로 정조 개념이 좀 부족해요. 쉽게 말하면 문란한 거죠. 결국 그렇게 에이즈가 번지게 되는 셈입니다.”

“그거, 참 심각하군요. 태국 당국에서는 그 사실을 아나요?”

“네, 알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태국 정부는 자신의 민족과 다른 고산족들에게 별다른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지 않아요.”

함봉호는 김 박사로부터 충격적인 내용의 말을 듣고 잠시 혼선을 겪는다. 그것은 그의 책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사실이다. 함봉호는 김 박사의 안티노미(Antinomy)를 새삼스럽게 느낀다. 라후족의 새로운 역사책을 쓴다며 그 누구보다도 애착심을 가진 그였기에 그 충격이 더욱 크다. 그런 김 박사가 그와 같은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야속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태국 소녀 마야는 그가 합법적으로 고용한 성적 노리개인 셈이다.

곧바로 나온 식사로 인해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간간이 음식에 대한 설명만 덧붙였을 뿐이다. 함봉호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김 박사와 헤어진 후 콕강 하류 보트장으로 갔다. 이명수는 거기까지만 안내해 주고 떠났다. 이미 그 곳에는 콕강 주변만 전문적으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잘 짜인 각본이다. 고구려의 라후족은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호기심용 픽션일 뿐이다. 함봉호는 철저히 속았다는 직감이 든다. 지금 다니는 이 여행 코스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구닥다리다.

보트는 선수용 조정처럼 길쭉하다. 보트 후미에는 모터가 달려 있다. 가이드는 보트도 운전하고 그들의 안내까지 맡기로 한 전문가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2시가 넘어 서둘러 가야 했다. 가이드는 일찌감치 지금 떠나더라도 늦을 수도 있다고 귀띔한다.

함봉호는 은근히 겁을 집어먹는다. 강 건너편이 마약 재배 지역인 데다 늦을 경우 캄캄한 강물을 따라 내려와야 하는 탓이다. 마약을 키워 밀매하며 근근이 연명하는 고산족 중 일부가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한몫한다. 물론 그럴 일은 거의 없을지 몰라도 은연중 부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국경 지대인 메콩강이나 살윈강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것을 두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딱 안성맞춤일 성싶다.

보트는 콕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이라서 그런지 강물이 온통 흙탕물이다. 물줄기는 의외로 약해 보트가 나아가는 데 그리 큰 방해물은 못 된다. 이따금 강폭이 좁아지는 여울목에 이르면 보트가 요동을 친다. 강물을 역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속도도 늦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내려올 경우는 속도가 훨씬 빠를 거였다.

강가로 전개되는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밋밋하던 산의 고도가 점차 높아진다. 고산족들이 이런 곳에 숨어 살 만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고지대인 관계로 태국 정부군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데다 알맞은 기후 조건이 양귀비를 재배하기에 적당할 듯싶다.

보트는 2시간 정도 달리고 나서야 강가에 멈추어 섰다. 역시 긴 팔의 점퍼를 가지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물 위를 달리다 보니 바람이 일고 물결이 튀어 한기가 피부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함봉호는 진작부터 겁에 질려 아무런 말이 없다.

김영무도 마찬가지다. 막상 오지까지 갔다 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것을 괜스레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여행사 전무 위치에서 그 따위의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는 그저 신문사와 협찬 관계의 영업만 완수하면 된다. 그러므로 그는 함봉호에게 어떤 말도 함부로 흘릴 수 없다.

보트에서 내리자 덩치 큰 몇 마리의 코끼리가 눈에 들어온다. 여행객들이 일정액의 돈을 내고 타는 코끼리이다. 함봉호도 속으로는 코끼리를 타고 싶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런 뜻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만큼 갈 길이 바쁘다는 얘기다. 코끼리를 타고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다는 뜻이다. 일반 여행객처럼 똑같이 따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들은 다시 지프를 타고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이미 날은 어느덧 저녁 으스름이다.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산속의 어둠은 평지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빨리 스며든다.

“어매, 이렇게 깊은 골짜기에 마을이 있네!?”

함봉호는 갑자기 나타난 마을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른다.

그랬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마을이 불쑥 출현한 것이다. 마을 입구의 구릉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스런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조그만 연못이 환상적이다.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그러므로 로케이션 헌터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로 쓰일 만하다. 온천수가 나오는 20여 평의 작은 연못은 아스라한 수증기가 춤을 춘다. 사위는 마치 요술 램프에서 나온 알라딘이 춤을 추는 듯 오묘하다.

그 연못 주변에는 이름 모를 빨간 꽃이 피어 있다. 문제는 그 꽃에서 나는 지독한 향기다. 사람을 알게 모르게 흥분시킨다. 함봉호는 자칫 그 향기에 취해 연못으로 무작정 뛰어들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만큼 묘한 마력의 냄새를 지닌 희한한 꽃이다.

“저 꽃 이름이 뭔가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하여간 저도 처음 저 꽃을 접하고 향기에 감탄한 적이 있어요.”

함봉호가 그 꽃향기에 빠져 가이드에게 물어 보자 그 역시 신통한 답을 주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장미꽃도 향기가 제법 강한 편인데, 저 꽃에 비하면 새 발의 피군요. 아무튼 저 꽃 이름을 꼭 알고 싶군요.”

함봉호는 누구 하나 들어 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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