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영희 시인] 한없는 움직임을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잘 닦여진 금오 동산이라는 놀이터가 생긴 날에는 불안하여 겁도 났지만, 호기심과 더불어 신바람이 가장 컸었기에 모든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엄한 어머니 덕에 공부는 겨우겨우 하며  놀잇감에 흠뻑 빠져 지내곤 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설렌 가슴을 붙들게 하고 볼은 발갛게 달아오릅니다.

삼삼오오 모여 우우 소리 내며 철길을 밟고 가던 학교 길. 구멍가게 화야와는 학교로 이어진 산길로 가다 파란 대문 집 앞에서 "선아, 학교 가자!"를 외치며 걸었던 언덕이 선명한 그림이 되어 펼쳐집니다.

점심시간에 가재를 잡겠다고 좁다란 산길에서  흐르는 물에서 화야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수업을 놓치고는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까맣게 애를 태웠던 일, 줄넘기 쌕쌕이(이단 뛰기)를 배우고는 신바람 나서 시간만 나면 학교 귀퉁이에서 바람을 갈랐었고, 한여름에 전교생이 태권도를 배웠을 때 어지럼증에 주저앉아 짝꿍에게 업혀 들어왔던 일, 핸드볼 경기를 하는데 럭비처럼 공을 안고 뛰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었던 일 등이 새록새록 다가와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푸르디 푸른 가을 하늘을 보다 그만 울음이 터져 엎드려 울던 열두 살 계집아이 옆엔, 누가 희야를 울렸냐며 팔을 걷어 부치던 화야가 그림자처럼 서 있습니다. 닦달하는 소리와 ‘나는 아니야’라는 소리를 들으며 차마 가을 하늘 때문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나는, 그날 화야와 반 아이들에게 참 미안했었습니다.

금오 동산은 이렇듯 저의 작은 열쇠들이 숨겨진 약속인 양 매달려 있는 곳입니다. 오고 가던 국민학교 6년의 시간은 여명을 뚫고 번지던 햇발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고 작은 꿈의 여행지였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 화야를 되새김질할 때면 여지없이 언제나 부실했던 희야를 위해 지킴이를 맡아 주었던 짝꿍이 생각나고, 그 옆으로 다가서는 개구쟁이 얼굴들이 있어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언제나 설렘을 안겨 주던 금오 동산은 지금도 변함없이 꿈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꿈꾸며 자라던 작은 아이는 지금, 글품쟁이가 되어 어느 때가 되든 글 뜨락을 거닐며, 글부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향

찬바람 머리에
철로가 길게 늘어져 있는
개울가 자갈밭에 바람이 속살댄다

물비늘 가득 채우고
이제는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돌개울의 여울진 몸짓은 허허롭고

산허리 중턱에 노랗던 노을이 검붉게 내려앉으면
뚝 떨어질 밤이슬의 공허를 맞이해야 할
비탈진 언덕 위에 소롯이 핀 한 송이 구절초가
서러운 꽃잎을 접느라 몸서리친다

무거운 걸음을 이끌고 사립문을 닫는
엄마의 한숨 소리 잦아들면
펌프장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분꽃들 사이로
분주했던 숨탄 것들의 아우성도 잦아들고

검기우는 엄마의 텃밭은
달의 여백을 심기 위해 틈을 헤집느라 여념 없다

*금오동산=시인의 모교인 경기도 의정부 천보로 소재 금오초등학교를 지칭 함.

시인 박영희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디지털 삽화가, 칼라맨, 캘리그라퍼. 출판편집 디자인 팀 ‘지소사’의 팀장, 시와수상문학 운영위원장으로 문학사랑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박영희 시인은 필명 ‘지소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우연처럼 뜬금없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