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영희 시인] 깜박 잠든 틈에 뜬금없는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도 비가 왔고, 와중에 강아지 두 마리와 산책을 했고, 우산을 든 그대의 모습이 담벼락 끝에 서 있는 꿈을 꾸고, 섭리를 거스르지 못하고 희미해져 가던 그대를 잠시 불러 세웁니다.

여름과의 사투는 끊임없는 일이 돼버린지 오래.
지난 여름 석 달 열흘 호되게 앓고  일어났더니 허한 것투성이에 몸은 가눌 길 없는데,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꿈을 꾼 후에 들이닥친 폭풍이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에,  그 힘을 억누르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그대 모습을 바라보며 잊혀진 시간을 건너고 있습니다.

그런 계절이 왔기에... 갖은 핑계를 붙여놓고 놓아두기로 합니다. 언제 또 이런 마음이 들지 싶어서.

잘 지내세요. 그대  머문 그곳에서....

이별

검붉고 둥근 얼굴이 
어쩌다 몹시 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떠나는 등을 보았지만 잡지 못했고
남은 나날 평생 
소리 내 울지 못할 일이란 걸 알았어도
잡지 않았습니다

버선 한 짝 없이 가시는 길이었기에
가슴만 까맣게 탔더랍니다
녹슨 톱을 볼 때마다
손에 꼭 맞는 장도리를 쥘 때마다

사무치게 그리운 나날들입니다
어느 등이든 보게 되면
이만큼의 별리가 예고 없이 떠오르고
시간이 거슬러 와
외로이 떠나던 어깨 위에
버선발 한 짝에 걸어 둔
등불 같은 염원 스러졌을까
그날의 염원을 다시 밝혀둡니다

시인 박영희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디지털 삽화가, 칼라맨, 캘리그라퍼. 출판편집 디자인 팀 ‘지소사’의 팀장, 시와수상문학 운영위원장으로 문학사랑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박영희 시인은 필명 ‘지소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우연처럼 뜬금없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