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고무장갑부터 끼소”

새벽같이 달려 내려왔더니 들어서기 바쁘게 장갑부터 내민다. 서울서 정읍까지 세시간 걸려 내려와 보니 온 마당에 동네아낙네 자리하고 부산스럽다.

그 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홈쇼핑 김치 사먹다가 농사짓는 친구의 초대로 근 십 년 만에 김장체험 하러 갔다. 배추 다섯 포기 담그기도 버거워 그냥 주문해서 먹던 김치를 300포기 한단다.

밭에서 키운 배추와 무, 쪽파, 붉은 갓을 뽑아 손질하고 멸치 젖 담근 것도 내렸다. 양파 사과 배에 표고버섯, 디포리, 새우 넣어 육수 끓여 받쳐두었다. 배추는 밑동에 칼집을 넣어 쪼개고 소금물에 담 그었다 커다란 통에 차곡차곡 쌓는다. 흰 부분 줄기에 소금을 조금씩 뿌려주고 숨이 죽기를 기다려 다시 위아래 바꾸어 준다.

배추가 숨 죽일 동안에 또 할 일이 많다. 남자들이 채칼로 무를 써는 동안 여자들은 쪽파며 갓, 미나리를 소쿠리에 썰어놓는다. 마늘, 생강도 다져놓고 깨소금도 볶아놓는다. 다 썰린 무채에 고춧가루로 버무려 물도 들여놓는다. 일차 버무려 놓고 해가 뜨면 바쁘게 숨죽인 배추를 살핀다.

숨이 잘 죽은 배추를 맑은 물로 몇 번 씻어 물기 빠지게 엎어놓는다. 육수 물에 마늘 생강 넣고 새우 젖, 멸치 젖, 찹쌀 풀도 쑤어 함께 넣어 버무려서 붉게 물든 무채 위에 붓는다. 썰어놓은 야채도 함께 버무려 배추에 넣을 양념이 완성되면 판을 벌려 둘러앉는다.

배추 날라다 주고 각자 앞에 한 주먹의 속을 덜어놓고 하얀 배추에 빨간 양념을 바르며 켜켜이 넣어준다. 항아리는 아니지만 김치 통에 담아 바로 김치냉장고로 들어간다.

한 켠에선 된장 풀고 돼지고기가 삶아지고 하얀 햅쌀밥을 준비한다. 다른 반찬 필요 없이 보쌈 한 접시에 생굴과 절인 배추 속에 양념 속 싸서 먹는 김장 후 만찬은 최고의 성찬이다.

서로 이웃끼리 품앗이하며 한 통씩 겉절이 얻어 와 더 풍요로운 맛의 잔치다. 김치 속 넣으며 도란도란 동네이야기가 피어나고 객지 나가 있는 자식들 걱정이 무르익는다. 노곤한 몸은 찜질방에서 풀며 겨울채비의 완성에 흡족하다.

김치냉장고 가득 일 년 치 김장 채웠고 쌀도 저장고에 열 부대 샀다. 난방은 구공탄대신 가스관 타고 가스비만 내면 언제든 따뜻하게 이용한다. 많이 달라진 세월 앞에 그 추위에 손 시려 호호 불며 새벽 배추 씻던 어머님이 그립다!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