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후드득! 후드득!

햇살에 바싹 마른 나뭇잎을 가을비가 두드린다. 잎맥 한 줄기 줄기마다 빗물이 스며들어 흠뻑 젖어 든다.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피한다’라지만 푸른 잎새들에겐 오아시스다.

그 푸름은 붉고 노란 황금빛으로 진가를 발휘한다. 그 화려함에 온 산이 불타오르고 황금주단을 깔아준다. “가을엔 모든 것이 자신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터트린다. 마치 대단원 피날레를 위해 일 년 내내 아껴 왔다는 듯이”라고 미국 작가 로렌 데스테파노도 말하였다.

두꺼운 땅을 뚫고 나온 여린 새싹이 여름 광풍과 비바람에 견디어 낸 결실의 계절. 푸르던 벼가 황금빛으로 고개 숙일 때 그 한가위 보름달처럼 풍요롭다. 익어가는 계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가을햇살. 파란 하늘과 솜털구름, 뭉게구름!

그런가 하면 도시에는 무채색의 빌딩 사이로 황금빛 은행나뭇잎 가로수가 하루하루 옷을 갈아입는다.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하면 황금빛주단을 깔아준다. 황제도 부럽지 않은 호사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 맺어 새들과 동물들에게 내어주고도 씨앗을 간직한 채 제2의 삶을 준비한다. 잎은 잎대로 화려한 비상을 꿈꾸며 떨어져 내린다. 시몬을 부르며 떨어진 낙엽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가을이면 기대되는 내 추억의 한 장면이 있다. 한창 젊은 청춘일 때, 속리산 법주사를 찾았다. 아마 이 즈음 인 듯 낙엽이 떨어져 길 위에 뒹굴 때이지 싶다. 푸르던 잔디는 그 빛을 햇살에 내주고 금잔디로 반짝일 때, 거기에 뒹굴던 낙엽이 바람 따라 춤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곳이 천국이지 싶다.

바람 부는 날 보도 위를 뒹굴던 낙엽들이 지나가는 자동차바퀴에 함께 쓸려 가는 전경은 넋을 놓고 보게 한다. 붉게 물들어서 꽃을 피우는가 하면 낙엽으로도 일품이다.

스러지는 가을이 아니다. 새로운 봄을 준비하느라 놓아 버린다. 아낌없이 열매로 잎으로 다 버리고 빈 몸뚱이로 겨울을 이긴다. 그 짧은 가을날을 형형색색으로 피어난다.

쓸쓸해서 더 아름답고 외로움이 깊어져서 꽉 채워지는 시간.“가을은 모든 나뭇잎이 꽃이 되는 제2의 봄이다”라고 알베르 카뮈가 일찍이 깨우쳐 주었다. 나는 가을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고 어찌 이 화려한 잔치에 동참할 수 있겠는가!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