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어렵겠어요. 다음 주로 미루어야 할 것 같아요.”

여럿이 만난다는 게 참 어렵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그 지역을 떠나 멀개는 4~5시간 운전하고 당일 돌아가기엔 버거웁다. 가까워도 3시간이니 동해로 모이자 한 것이 무리인 듯싶다. 당일은 힘들고 하룻밤 이틀 밤 각자에 여유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려다 보니 조율이 어렵다.

한 달 여 전에 미리 날짜를 정하고 사정을 하였건만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수시로 바뀌는 상황과 마음이 번잡해지고 약속은 다가오니 번복할 수 밖에 없다. 서울도 아니고 동해이다 보니 더 어렵다.

예전엔 광화문 덕수 제과 앞에서 12시 보자 하면 1시간이건 2시간이건 올 때까지 속수무책 기다릴 뿐이었다. 공중전화도 집 전화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하다못해 첫눈 오는 날 남산타워에서 만나자고 황당한(?) 약속을 하지만 그래도 만나지기도 했다.

약속 때마다 칼같이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늘 십여 분씩 늦는 사람도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늘 기다리고 늦는 사람은 늘 늦었다. 그렇게라도 만나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전화가 귀하고 손목시계도 흔치 않았던 시간엔 약속이 잘 지켜졌다. 달리 연락할 길이 없으니 기다리는 것이 정상이었다. 지금은 휴대폰을 손에 들고 실시간으로 약속체크하며 움직인다. 일정표가 있어 수시로 확인하며 일정을 잡아야 한다.

아무 때나 들이닥치는 시부모님도 없다. 연락해 보고 상황을 체크하여야 한다. 초대하여야 찾아 갈 수 있고 약속이 잡혀야 가능하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주고 배려하며 함께 한다.

다음주로 미뤄진 약속으로 공백이 생기고 잠시 여유를 가져보면서 주어진 시간이 또 버거웁기도 하다. 짜인 시간과 허술한 시간 사이 또 다른 약속을 잡아보려 여기저기 전화해보고 문자 보내고 분주하기까지 하다. 시간과 시간 속에 서로 지켜야 하는 약속이 주는 의미가 퇴색되었다.

다른 약속을 잡느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한다. 오롯이 주어진 시간에 한적한 산길을 걸어 도서관에나 다녀와야겠다. 못내 아쉽긴 하지만 다음주로 미루어졌으니 기다려야겠다. 그도 약속이니 어쩔 수 없다.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