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오늘은 뭘 만들어 볼까?

어릴 적 늘 손에서 뜨개바늘을 놓지 않던 엄마 옆에 앉아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손놀림은 소란스럽지 않고 고요한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멀찌감치 앉아 양 손목에 실타래를 걸고 엄마가 감아 놓은 실 뭉치를 굴려보는 감촉도 보들 보들 아기살 같았다.

실의 특성상 저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이 다르다. 면실이냐 폴리냐 실의 굵기에 따라 가는지 두꺼운지 그 두께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 수세미용으로 쓸 건지 가방용으로 쓸 건지 모자며 소품용으로 다 활용할 수 있으니 그 범위가 넓다.

모양을 잡고 어떤 패턴을 할 것인가 결정하고 한 코 한 코 떠 나가다 보면 모양이 잡히고 마음에 흡족하기도 하고 정반대 일 수도 있다. 아예 도안 책을 놓고 떠 나가는 안전성을 찾기도 한다.

뜨개질 한 옷을 입다가 다시 풀어서 재사용할 수도 있다. 엄마가 하던 방식은 주전자에 물을 받아 불에 올려놓고, 주전자 뚜껑에 뚫린 구멍으로 실을 밀어 넣어 다시 주전자 주둥이로 실을 꿰내어 수증기 김을 쐬어 주면 구불거리던 실이 새 실이 되어 나온다.

엉킨 실타래를 풀 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귀찮다고 툭 끊어버리고 끊어버리면 이음새가 많아 매끈한 뜨개질을 할 수 없다. 엉킨 실 바깥부터 살금살금 틈을 내주고 밀어내고 당겨주고 빼내주다 보면 어느새 말끔히 풀리기도 한다. 내 마음도 저리 풀어 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큰 인내심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실도 중요하지만 바늘도 실과 맞는 사이즈와 패턴이 조화롭게 이루어 질 때 비로소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 양손을 이용해서 바늘을 잡고 실을 당겼다가 풀어가며 한 올 한 올 떠 나가는 뜨개질. 모양이 나고 형태가 잡혀가면서 힘이 솟는다. 평온함과 함께 다 이루어 냈을 때의 성취감!

91세까지 사시다 가신 엄마는 가실 때까지 손에서 뜨개질을 내려놓지 않았다. 앉으셨다 하면 TV를 보면서도 양 손에 뜨개질꺼리를 챙겨 들고 시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감으로 떠 나가신다. 평생을 맑은 정신으로 사시다 간 비결이라 여겨진다.

더위에 지친 심신을 차분히 앉아 뜨개질 속으로 빠져든다. 남아 있는 실들을 모아 색색의 예쁜 가방을 만들어 볼까 한다. 손녀딸 뱃살 위에 찰랑찰랑 무지개 가방을 띄워보아야겠다.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