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송수복 시인] 오랜만에 야외 마스크 의무화 해제로 거리를 나서니 풍성한 가을이 동행합니다. 익어가는 가을은 축제의 계절인 만큼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행사들로 몸과 마음이 바쁘게 시간을 재촉합니다.

한동안 묶여있던 모임들도 죄다 해방을 선언합니다. 칠십이 넘고 보니 건강에도 변화가 많고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났습니다. 환절기라 또 걱정이 앞섭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늘 불안한 마음에 우리는 너 나 없이 시간이 허락되는 데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걸을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오늘도 그 만남을 위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멀리 남양주 세미원까지 가야해서 경의중앙선을 탔습니다. 전철에 오르면 언제나 경로석에 앉게 됩니다. 옆자리가 비었는데 때마침 예쁜 꼬마 애들이 엄마 손을 잡고 내 앞에 섰습니다. 귀여운 두 아이를 얼른 옆자리에 앉혔습니다. 어디서든 아이들을 보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이야기 할머니로 친숙해집니다. 애들이 정말 귀엽고 예의도 바르고 붙임성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금방 친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친한 친구 사이라고 소개했고 지금은 여행 중이라며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먹고 있던 과자도 몽땅 내 손에 쥐여 주고 잠깐 동안 어찌나 예쁜 짓을 하고 상냥하게 굴던지 구연동화 한 구절을 해줬더니 더 재밌어합니다. 집에서도 할머니랑 함께 살아서 낯을 가리지 않고 살갑게 재롱을 부립니다. 어딜 가나 아이들만 있으면 오지랖이 발동하고 사랑에 푹 빠집니다.

곧 내려야 하나 봅니다. 아이들 엄마가 내릴 채비를 하고 아이들을 챙기면서 내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아이들이 할머니랑 같이 구경 가면 안 되느냐고 내 손을 꼭 잡고 같이 내리자고 합니다. 그래서 두 아이 사진을 찍어 주면서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했더니 순간 엄마 핸드폰 번호를 불러주면서 사진 꼭 보내달라며 서둘러 내립니다.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안녕이란 인사를 남기고 아쉽게 전철은 다시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서 아이가 불러 줬던 번호로 사진을 보냈습니다. 종일 아이들이 궁금했고 보고 싶어졌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일산인 줄 알았던 집이 전라북도 익산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여행 왔다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지하철 탈 때마다 할머니 만나려나 궁금해 했고 여행 내내 지하철 할머니를 계속 물어봤다고 합니다.

정말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잊지 않고 소식 주고받으며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희망합니다. 부디 그렇게 예쁘고 튼튼한 어린이로 올곧게 잘 자라기를 바라면서 복된 가정 이루고 아름다운 이 가을 아이들과의 짧은 추억도 가을 속에 오래도록 물들어가길 바라겠습니다.

시인 송수복은
시와수상문학작가회 회장 송수복 시인은 서울시 청소년지도자 문화예술 대상·시와수상문학 문학상 수상. 시낭송과 시극 등 다양하게 활동하는 송 시인은 첫 시집 ‘황혼의 숲길에’ 이어 두 번째 시집 ‘달빛에 누워’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