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전미야 작가] 며칠 전 어머니의 구순이어서 일가친척이 모여 조촐한 축하연을 하고 돌아왔다는 사람이 말했다. 어머니가 자식들 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계셔 주시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으며 그 자체가 행복한 일이더라고. 거기에 덧붙이자면 자식들 또한 어머니를 앞질러 간 사람이 없으니 그 또한 효도가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요즘이야 백세시대라고 하여 백 살도 훨씬 넘긴 노인이 아직도 웬만한 일들을 거뜬히 해치우는 등 정정한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종종 방영되기도 하고 주변에서도 나이가 꽤나 많은 노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크게 아픈 데 없이 건강을 유지하며 흔히 말하듯 정정한 모습으로 구순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구순 축하연을 하고 돌아왔다는 그 사람은 자신의 말마따나 행복해 뵈는 얼굴이면서 또한 뿌듯해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실인즉 어머니가 그렇게 살아계셔 주시니 더없이 큰 힘이 되고 자식들을 비롯한 일가친척들이 이런저런 크고 작은 가족 행사 때면 모두 모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니라면 자식들과 일가친척들이 그렇게 모이지도 못할 뿐더러 모일 일도 없으리라는 것.

따지고 보면 늙으신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어떤 실질적인 힘이나 능력 혹은 권력(?)은 보잘 것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늙으신 어머니는 그 어떤 조건을 떠나 그 위에 군림하는 상징적인 존재이며 그 자체로 구심점을 이루기 때문에 자식들을 비롯한 그 피붙이들을 한데 모이게 한다.

현대에 와서 씨족사회나 부족사회 같은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라 거의 찾아볼 수도 없고, 지역공동체라는 것도 정치경제적 필요에 의해 부르짖기는 하지만 인구의 사회적 유동이 빈번하다보니 정작은 거의 의식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빈번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 단위인 가정과 그 혈족구성원 간의 긴밀한 유대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정과 혈족들은 구성원 중 연장자를 중심으로 긴밀하고도 끈끈한 결속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던 연장자가 사라진다면 그 구성원들은 급속히 흩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흩어진 후에는 그 다음 세대의 또 다른 구심점을 세워 모이게 되겠지만 이제까지의 구성원들이 아닌 새로운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위치에서는 ‘구순을 맞이한 어머니가’ 중심이 되며 현재의 구성원들 간의 결속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노인은 그냥, 혹은 잉여적(剩餘的)으로 존재하는 게 아닌 것이다. 한 가정과 혈족의 구심점이며, 나아가 아무리 복잡한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사회의 결속을 이루게 하는 강한 인력을 가진 무엇이다.

그림=김태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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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작가는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문학예술의 다재다능한 작가로서 시, 수필, 소설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