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그래서 잊혀 지지가 않았다. 엄마는 손님이 내 옷을 사주라고 돈을 주고 갔다며 써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시장에서 전기구이 통닭도 샀다.

나는 그 후로 낯선 손님이 다녀가면 내 옷 사라고 돈을 주고 가기를 은근히 바랐다. 하지만 그것이 처음이자 끝이었다. 오촌 당숙스님도 엄마 수의 값은 주고 갈망정, 내게 땡전 한 푼 준 적이 없다.

나는 그 영감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집중했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잠든 셰익스피어를 쳐다보았다.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얼굴 형태가 그렇게 둥글고 크게 생겼던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실소가 나왔다. 그게 막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갔을 때였는데 알 리가 있겠나. 내 느낌일 뿐이었다.

나는 머리를 일어나서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싸구려 야쿠르트도 한 병 있었다. 하나는 빈 껍질인 거 보니 이미 그가 따먹은 모양이었다. 남아있는 한 병을 따서 마셨다. 뿌연 색깔을 보니 좀 전에 그가 쏟아낸 정액이 떠올랐다. 내 몸속에 그의 생명이 들어가 생명을 완성시켜 줄 짝을 만나 착지를 하기 위해 달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모골이 송연했다. 아니 이미 벌써 누군가를 만나 생명을 부활시키기 위해 내 안에서 꿈틀대고 있을 지도 몰랐다.

“오! 이런 막장이 있나.”

나도 모르게 공포에 질려 중얼거렸다.

불현듯!

“최씨하곤 결혼하지 마라.” 엄마가 했던 엄마 말이 떠올랐다.

“차라리 김씨는 괜찮다.”

“왜요?” 김씨야 워낙 파가 많잖아. 최씨는 파가 하나다.

“난, 김씨잖아요. 상관없네.”

“그래도... 최씨는 못 쓴다. 최씨 앉은 자리엔, 풀, 풀도 안 난다고 안 하던. 최씨는 못 쓴다. 최씨 남자랑은 사귀지 마라.”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는 평소답지 않게 말을 상당히 더듬거렸던 것 같았다.

등본을 쥔 채로 엎드려 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가 다시 더듬는 바람에 잠이 깼다. 새벽에 또 한 번의 정사가 이루어 졌다. 침대는 또다시 꺽억- 꺽- 거렸다. 이번에는 미안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정을 끝내고 뒤집어 누우며 중얼거렸다.

“어제 아버지 제사였어요.”

“최 치국씨요?”

“어떻게 알아요?”

“아버지 존함이 최자 치자 국자라며요.”

“제가 그랬어요? 엄마는 살아 계세요. 한때 별명이 영부인이었오. 전두한 부인하고 이름이 똑 같거든요”

그는 다시 잠이 들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렇게 생각에 빠진 채로 오전 11시가 가까이 되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벌거벗은 그의 배 위로 올라갔다. 그가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이번엔 내가 그를 범했다. 거꾸로 누워 그의 남성을 입 안에 넣고 살아나는 그 생명체를 내 안에 넣었다. 생명들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로써 최치국 그를 내가 죽이는 거다. 엄마의 복수를 하는 거다. 그놈 묘지에 가서 말해줄 거다. 내가 어떻게 했는지. 나랑 당신네 종손이 어떻게 막장 놀음을 했는지.

나는 그를 깔고 앉은 채로 침대 위에 구겨져 있는, 그의 정액이 묻어있는 주민등록 등본을 갈기갈기 찢었다. 아주 오래된 시간들이 함께 찢어져나가고 있었다. 내 삶은 이제 부터였다.

12.

오랜만에 내 원룸으로 돌아오자 신문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5만원을 주며 10개월 동안 공짜로 넣어준다고 해서 시켰더니 일간지 외에도 이것저것 잔뜩 넣어 놨다. 어린이 영어신문이며, 한자 만화신문, 어린이 경제신문, 주말 해피 매거진까지 들어와 있었다. 아마 나를 초등학생이 있는 주부로 보았었나보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가방에서 유골함을 꺼내 화장대를 잘 닦은 뒤 신주단지처럼 그 위에 모셔두었다.

그 다음에 일간지를 펼쳐들었다. 독특하게도 통일계획 프로젝트 코너가 있었다. 매주 남북문제에 직접 간접적으로 관련 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통일 10개년 계획 준비플랜을 짜는 프로젝트였다. 내용이 흥미로웠다. 오늘 신문엔 주택 전문가들의 대담이 있었다. 통일이 되었을 때 어떻게 주택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통일을 대비하여 어떤 식으로 어느 쪽에 아파트를 지어야 하며, 현재 미분양으로 남아도는 집을 어떻게 활용하고, 집값을 어떻게 안정시켜 나가고, 어떻게 주택을 보급하고, 어떻게 건축비용을 비축하고, 뭐 그런 내용 들이었다.

“체!”

가난한 사람에 집이 그림의 떡인 것은 통일 하고 상관없었다. 돈만 있으면 된다. 요즘은 탈북도 있는 사람이 나와 보조 안 받고도 잘 산다고 하지 않는다. 통일이 되든, 전쟁이 터지든, 나라를 빼앗기든 부유한 기득권층들은 언제고 살아남는다. 그것도 아주 잘~. 어차피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며 죽어나는 것은 밑바닥 인생들 차지 아닌가.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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