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당신은 입 좀 다물어라. 니는 와 만날 아무 데서나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고 그러나?”

“내 동생인데 그런 소리도 못하냐. 쟈도 이제 나이가 몇이고, 좀 알면 또 어떻노.”

“어무이가 일 하느라 바빠서 좀 맡긴 거다. 모르면서 함부로 말해 쌌지 마라. 들으면 상처받는다.”

어릴 때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교복을 입은 언니들과 성당도 가고 버스도 타고 했던 기억, 어떤 아주머니니 손을 잡고 걷던 기억, 어딘 가 가봤던 것 같아 물어보면 엄마는 몰랐다. 양 쪽에서 두 아줌마의 손을 잡고 창경원을 걷던 기억의 정체들이 비로소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 데자뷰 같은 상황들이 나는 어릴 때 꾼 꿈인 줄만 알았다.

“잘 타더나?”

"옷인데 잘 타지 그럼, 만날 잠자다가 가고 싶다카시더니, 소원대로 주무시다 가셨으니, 기분 좋다카며 훨훨 날아가셨을 거다. 아까 태워 보내면서 미움도 서로 다 풀었다. 그만하면 살 만큼은 사셨지, 눕어 지내면서 좀 더 살면 뭐 하노, 잘 치렀다. "

"치렀다"를 나는 "치웠다"로 알아듣고 깜짝 놀라 올케를 쳐다봤다. 곰곰 생각하니 '치렀다'를 잘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장례를 치른 게 아니라 해치운 것만 같았다. 어머니 흔적을 어서 치우려고 후다닥 해 치운 것 같은 느낌.

"그래, 앞으로 잘 될 거다. 어무이가 하늘에서 도와주겠지."

오빠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오빠가 울적해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상이 끝나고 집에 와서 부터였다. 엄마가 누워 있던 텅 빈 방을 둘러보더니 내내 그 방을 나가지 못하고 거기에만 머물렀다. 잠도 그 방에서 혼자 잤다.

“당신은 무섭지도 않나”

올케는 무섭다며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 쪽은 아예 시선마저 피했다. 그런 오빠 때문에 나는 선뜻 가겠다고 하지 못하고, 열흘 가량을 더 머물렀다. 그러는 동안 지나간 일들이 하나씩 새록새록 떠오르며 후회가 밀려왔다.

금강산에 못 간일부터, 지난 주 엄마를 보러오지 않은 일, 엄마 아플 때 팽개치고 도망간 일 등등. 긴 연휴가 있던 지난 설날엔 오빠 집에 가서 내일만 하다 왔다. 오빠 식구들은 처가에 며칠 가있고, 나는 방에 누워 있는 엄마를 방치한 채로 사사 원고 교정뭉치를 보고 있었고, 가져간 책을 읽었다. 밤에 다른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엄마가 당신 방에서 불렀다.

“너도 무섭냐?”

처음엔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했다.

“옆에 자다가 내가 죽을까봐 무섭냐?”

“아무리........”

“그럼 왜? 냄새나서 그러냐?”

“아니, 책 보잖아요. 잠도 안 오는데 여기서 멍하니 뭐해”

“그래. 괜찮다. 나가서 너는 네 할 일 해라. 난 잘 테니까.”

“그러세요.”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잘게. 할 일 마치면 여기 와서 자라.”

“아이, 참.......”

“근데 너 맨날 그렇게 밤새냐?”

“마감할 일 있으면 그래야지, 어떡해요”

“잠 안 오는 약은 먹지마라. 몸 다 상한다.”

“네.”

나는 나와서 방문을 꽉 닫았다. 그리고 그날 거실에 엎드려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빠가 와서 올라와버렸다.

자다간 게 정말 좋은 걸까? 나라면 혼자 있는 방에서 자다가 저승사자를 맞닥뜨린다면 놀랍고 무서워 미리부터 혼이 쑥 빠져나와 버릴 것 같다.

“지랄한다. 소설 쓰나?”

올케한테 내 생각을 말하니까 어이없어 했다.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 하지만 돈이 궁했고, 소설은 내게 한 푼도 줄 의향이 없는 듯 보였다. 사사를 썼고, 기사를 썼고, 장애인들의 수기를 대신 써주는 일을 했다. 남의 인생에 끼어들어 이야기를 받아내고 녹음하고, 옮겨 쓰고, 그럴 듯한 거짓말을 얹어 흡족하게 그들의 인생을 꾸며주었다. 돈 맛을 안 창녀같이 아무래도 이제 조신하게 소설은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쓸 것도 없다. 우리자체가 소설이고, 드라마다”

엄마는 내가 소설가가 되겠다고 하자 그러고 말렸다.

“내 얘기만 해도 소설이 열권이다.”

그런데 그 말이 내 얘기이기도 했다. 그 소설이 막장 삼류가 될까봐 두렵다. 소설이라면 결론이라도 그럴 듯 맺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가줘야 말이지. 맘 내키면 언제고 제 가고 싶은 데로 달아나버리며 꼴통을 부리는 게 인생 아닌가.

“엄마 갈게요. 언제 또 올지 몰라요.”

열쇠를 돌려 납골당 문을 닫고 돌아서 나왔다.

한참을 가다 고개를 돌리니 저만치 콘크리트 괴물처럼 엎드려있는 납골당 건물이 보였다. 가슴 한쪽이 뻐근했다. 어쩌면 나는 다시는 여기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앞쪽으로는 언덕으로 잘 닦인 푸른 잔디가 깔려있었다. 대리석으로 멋지게 꾸며놓은 가족 봉안 묘며, 깔끈히 다듬어진 산소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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