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59]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뭐라카노? 아라비아? 고모 니 이 상황에 개그 하나? 김기은 소설가l승인2018.04.16l수정2018.04.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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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얘기를 하려해도 옆 사람들 때문에 일단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납골당이라는 게 참 그랬다. 성묘도 할 수 없겠고, 고인이 좋아하는 커피도 놓아드릴 수 없고, 절도 할 수 없고, 고인을 떠올리며 얘기도 할 수 없고, 그저 서양식으로 기도나 묵념만 하고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도둑고양이처럼 다녀 가야되는 식이다.

"할머니 천국에 계실까?"

조카가 밖을 나오며 물었다.

"아라비아 사막을 걷고 계셔."

내가 말했다.

"뭐라카노? 아라비아? 고모 니 이 상황에 개그 하나? 아라비아가 아니라 차라리 아라리고개를 넘어간다케라. 어무이 지금 아리랑 열 두 고개 넘어서 저승 사자캉 서천서역국 걷고 있다."

그런 말이 나오니 의외였다. 올케는 경상도 의성 출생이라지만 예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랐어도 그녀는 전통과도 거리가 멀었다. 나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다고 시집와서부터 지금까지 늘 내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한 것도, 시누이로 여겼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시어머니의 딸이 아닌가.

전통과 예를 아는 여자라면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아가씨'라 부르라면 불러야 했다. "지금이 어떤 시댄데 조선 시대 소리 해쌌노? 내 조카보다도 어리고만."하고 발끈했다. 이젠 이름대신 고모라고 불러 줄 때가 많지만 아직도 급하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런 올케가 아리랑 고개며 서천 서역국이니 저승사자니 하고 말하니 의외였다.

제삿날이면 올케는 그랬다.

"없는 살림에, 무슨 놈의 제사는 달거리 돌아오듯 돌아오노. 시집올 땐, 월남해서 일가 친척도 하나 없고 달랑 세 식구가 다라 캐서, 그거 하나 좋다켔더니,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외가 제사까지 줄줄이 지낼 줄 누가 알았노? 어무이 돌아가시면 그 다음날로 나는 교회 다닐 기다. 죽으면 끝이지, 저승에서 달력 들다보고 있다가 죽은 날 되면 제사 밥 먹으러 온다는 게 말이나 되나? 살면서 자기 생일도 못 챙겨먹고 사는데 죽은 사람이 지 죽은 날 뭐 좋다고 손꼽아 기다리겠나."

한 번은 제사 준비를 하며 엄마가 그랬다.

“나 죽거든 다 절에다 올려라. 에미 너도 교회 다니고 싶으면 다녀라. 교회 다니면 제사 안 지내도 된다더라. 아들도 없고 조개비만 있는데, 그 제사 누가 이어 가겠니. 대도 다 끊기고 조상 제사도 끊길 판에 조상 볼 낯도 없다. 교회를 다니던 네 마음대로 해라. 이래 안 지내나 저래 못 지네나 마찬가지다. 없는 살림엔 제사도 짐이다. 나 살았을 때만 하고 나 죽거든 끝내라. 나도 화장시켜서 뿌려라.”

“혼이고 뭐고 다 타버려 아무것도 남는 게 없으면 좋겠다. 언젠가 화장하는 걸 봤더니 빗자루로 재를 쓸어선 쓰레받기에 담는데 저기에 무슨 혼이 있겠나 싶더라. 죽으면 한 줌 재 밖이 아니더라. 끝이다. 죽어서 혼이라도 남으면 친정엄마 손잡고, 시어머니 손도 잡고, 우리 여자끼리 훨훨 돌아다니려고 그랬는데. 다 살았을 때 산사람이나 하는 생각이다. 혼이고 뭐고 사람으로 사는 게 징그럽다. 바느질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허고 많은 그 넓은 땅덩어리 다 놔두고 왜 이 좁고 한 많은 땅에 태어났을까. 사람이 아니면 뭐가 좋을까하고. 사막 안 있냐. 그 사막에 모래가 돼서 사는 게 제일 낫겠더라.”

"왜요?"

내가 물었다.

"확 트인 그런데서 바람타고 날아다니며 살아보고 싶다."

"미국 가이소, 거가 땅도 넓고 젤 살기 좋다 캅디다. 내도 거 가서 살고 싶습더."

올케가 옆에서 그랬다

"미국도 싫다. 안 갈란다. 미국 소련 그놈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갈라진 거 아니냐. 어디로 갈지 생각 좀 해봐야 겠다."

엄마는 마치 당장 여행이라도 가자는 것처럼 말했다.

"할머니 유럽으로 가세요. 거기 진짜 멋있어요."

뒤 늦게 나타난 조카도 가세해서 끼어들었다. 아마 여행을 가겠다는 걸로 알아들었나보다.

"그만 좀 해. 다들 왜 그래? 누가 세계여행 떠나?

"참, 고모 니도...... 이러면서 한 번 웃는 거지 뭘 그 카노. 고모하고는 우스개소리도 못한다."

"웃자고 하는 소리 아니다."

기분이 상한 듯 정색을 하며 뱉어내는 엄마의 그 말에 모여 있던 가족 모두의 웃음기 어린 얼굴에서 웃음이 싹 가셨다.

“바다도 확 트였잖아.”

“싫다. 물은 묶여서 싫다. 모래가 되서 사우디아라비안가 하는 사막으로 갈 거다."

"할머니 사우디아라비아는 안 좋아요. 전쟁도 많고. "

큰 조카가 말했다.

"일 없다. 난 널찍한 사막에 모래가 될 거니까."

“누가 어무이 모래 만들어 준답디까.”

올케 말에 모두들 또 웃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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