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글쎄 뭐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 마지막으로 효도하는 셈 치고 서운치 않게 두둑하니 넣어 드리세요.."

그가 '마지막'을 강조했다.

"형편대로 성의 것 하세요. 고인이 서운하지만 않게, 정성이죠, 정성"

다른 한 사람이 얼른 수정했다.

"노잣돈이 두둑해야 저승사자한테 구박받지 않고 저승길을 편하게 가요."

먼저 번 사람이 다시 '두둑이'를 강조했다.

저승길에서도 돈이 있어야 구박 안 받는다는 말이 어쩐지 서글펐다.

나는 작은 방으로 뛰어 들어가 지갑을 열며 얼마짜리를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동전부터 시작해서 천 원, 만 원, 오만 원 권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저승 노잣돈이 얼마가 필요할지, 두둑하다는 것이 얼마를 말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동시에 다시는 못 볼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돈 몇 푼을 갖고 계산하고 있는 나 자신이 참 한심하게 못돼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남편도 없이 삯바느질로 고생하며 우리 남매를 키워주신 어머니가 아닌가. 비록 가난했고 남들처럼 많이 가르치진 못했지만 그건 엄마 탓이 아니었다. 뿌리가 없어서였다.

"당사주보니까 너희가 나무는 좋은데 뿌리가 없더라. 그러니 아무리 기를 써도 되나 말이다. 나무로 치면 뿌리를 북에 묻어 두고 윗동만 이래 남쪽으로 떨어져 나와 있는 건데, 그러니 나무가 잘 되나"

또 어떤 때는 그랬다.

"조상이 한이 맺혀 구천을 떠돌아서 되는 일이 없는지, 제삿날을 몰라 그러나. 왜 이리 사는 게 힘들고 되는 게 없나 모르겠다. 어쩌다 뿌리도 없이 장돌뱅이처럼 돼서 남한테 우사나 당하고......, 그냥 북에 남아있었으면 우세스럽지나 않지 과수원 땅만 해도 그게 어디가."

하고 오빠가 사업을 망해먹었을 때도 그랬다.

이승에서 지친 엄마가 저승길이나마 편하려면 얼마를 드려야 할까.

그때 올 캐가 거실에서 내가 있는 방안에 대고 작게 소리쳤다.

"뭐하고 있노? 그냥 지폐 작은 거 한 장 갖고 빨리 나온나. 성의라 안 카나."

지폐란 말에 엉겁결에 5만 원 권을 한 장 꺼내들고 엄마가 계신 방으로 달려갔다.

엄마의 화장한 얼굴을 그때 처음 보았다. 예쁘게 분칠한 얼굴로, 옥색 고운 명주옷을 입고 팔을 모우고 다소곳이 누워계셨다. 곱게 치장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시는 듯 했다. 보고 싶은 얼굴이 너무 많아 울고 싶지만 화장이 지워질까봐 울음을 참으려고 이를 앙다물고 계셨다.

"자, 어머니 보셨지요. 마지막 인사하고 얼른 노잣돈 넣으세요."

돈을 넣고 나니 적어서 고인이 서운해 할 까봐 신경이 쓰였다. 서운치 않게 넣으라고 했는데. 금강산도 약속도 못 지켰는데 저승길 노잣돈이라도 듬뿍 넣어드릴 걸.

"됐어요. 뚜껑 닫습니다."

돈을 넣기가 무섭게 이상하게 두 사람이 서두르며 날 밀어내고 부산스럽게 해동했다. 얼떨결에 밀려서 밖으로 나왔다. 돈 넣느라 정신이 팔려 우는 것도 잊어버렸다가 못 박는 소리를 들으며 가족들은 그제야 울었다. 마치 돈이 아까워 우는 사람처럼.

올케는 자기 돈도 아니면서 오만 원이 다 타버려 영 아까운가보다. '그 돈 나나 주면 떡이라도 사먹지'하는 바람에 급기야 난 웃었고, 오빠는 입 좀 다물라며 급기야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말했다.

"너는 돈 밖에 모르냐? 참 대단하다. 지금 어머니 화장하고 있는데 ......."

"내가 누구 때문에 이래 됐는데, 돈, 돈, 모든 것이 돈이다. 태어나려 해도 돈,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돈. 짐승 새끼 아닌 다음에야 돈이 없으면 태어나지도 살지도 죽지도 못 한다. 첫 애 사산한 것도 돈 아끼느라 의성 친정 가있다가 그리 됐다. 아들이었는데.......서울서 큰 병원만 갔어도 살았다."

그 옛날 엄마가 첫 애는 친정에서 낳는 거라며 며느리를 의성 사돈댁으로 보내버렸었다. 시골이라 산파를 불렀는데 기가 탯줄을 감고 나와 큰 병원으로 옮기다 죽었다. 아들이라고 했다. 올케는 그 일이 한이 맺힌 듯 엄마한테 화날 때 마다 두고두고 말했다.

“그때 내를 친정에만 안 보냈어도 대는 안 끊겼을 거 아닌교. 산부인과 다니는 돈 아깝아서 보낸 거 내도 다 압니더.”하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생각하려하면 그놈의 돈 때문에 자꾸 맥이 끊겼다. 얼마짜리로 엄마를 치장하고, 얼마를 넣어 드리고, 얼마짜리 관에 넣고, 얼마짜리에 계시게 할 건지를 슬퍼하다 말고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사양을 선택해야 하니 뭐가 이따윈지 싶다. 가난이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거라던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엄마, 그 돈 안 탔다. 관 속에 없다. 내가 봤는데 아저씨들이 돈 꺼내가더라."

작은 조카가 제 엄마 옆에 와서 소곤거렸다.

"진짜가?"

"응, 내가 똑똑히 봤다. 관 뚜껑 닫으면서 후딱 꺼내서 주머니에 얼른 넣더라."

"아이고, 어쩐지. 딴 맘이 있어서 자꾸 넉넉히 넣어라켔구나. 아따. 빠르데이. 난 옆에 내 지키고 있으면서도 못 봤네."

"그럼 됐네. 타서 없어진 것 보다 낫잖아."

엄마의 노잣돈을 뺏어갔다는 것은 화가 났지만, 올케가 더 말하지 못하게 내가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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