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66]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밤을 보내고 갔나봐 김기은 소설가l승인2018.07.11l수정2018.07.1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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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나는 대답하지 않고 무조건 앞으로 걸었다. 밖을 나오니 갑자기 할 말이 다 사라져버렸다. 어둠이 우리의 이야기를 다 삼켜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그가 내 가방을 흘끗 보더니 안에 든 것이 뭐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름한 건물 위쪽에 ‘여관’이라는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먼지로 찌든 건물이었다. 건물 입구 간판 아래로 거미줄과 날 파리인지 하루살이들인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보였다. 건물 입구로 좁은 나무 계단이 가파르게 위로 뻗쳐있었다. 나는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컴컴한 계단 안을 두리번거렸다.

“왜요?”

그가 눈이 커다래지며 나를 쳐다봤다.

“자야죠. 길에서 밤새요?”

한발 한발 발을 올릴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공포 영화 속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공포는 공포였다. 그와 함께 그곳을 들어선다는 것이.

다 올라가니 입구에 목욕탕의 돈 받는 곳처럼 불 켜진 쪽문이 있었다. 안에서 중년의 뚱뚱한 아주머니가 고개를 삐죽 내놓고 밖을 둘러보더니 둘이냐고 물었다. 소설 <비계덩어리>가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마에요?” 하고 묻고는 아차! 했다. “방 있어요?” 하고 먼저 물었어야 했는데, 영화에서 보면 그랬다.

지갑을 꺼내려는데 가방 안의 커다란 항아리 때문에 지갑을 찾기 힘들었다. 그가 나를 만류하며 돈을 냈다.

방 호실을 찾아 복도 끝을 향해 걸으면서 그가 물었다.

“근데, 그거 뭐예요. 내가 잘못 봤는지 몰라도 무슨 단지 같은 같아 보이 던데.”

“맞아요.”

“무거우면 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

“싫어요.”

나는 내 가방으로 향하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뭔데요? 뭐 고추장이나 된장 아니에요?”

귀찮아서 그렇다고 할까 하다가 그런 거짓말은 엄마에 대한 모독 같아 사실대로 말했다.

“유골항아리에요!”

“진짜요?”

그가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걸 왜 갖고 다녀요 어디 안치하던가 해야지.”

“그만 말해요 부정타요”

“세상에! 오빠에요?”

“엄마요.”

그는 아무래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이리 저리 갸우뚱거렸다.

방 안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한눈에 봐도 싼 티가 확 풍기는 낡은 화장대 하나, 침대 하나 그리고 침대 옆의 바닥에 놓인 휴지통, 기다란 옷걸이 두개가 달랑 있을 뿐이었다. 하얀 커버를 씌운 침대 옆에 안자 꺼억! 꺽! 하고 우는 소리가 났다.

끼익- 끽하고 슬픔을 삼키는 소리 같기도 했고, 뱉어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가 가슴에 와 닿아 나는 자꾸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소리를 냈다. 그는 방 안에 선 채로 내 행동을 가만히 처다 보았다.

“사실 저는 좀 당황스러워요.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뭘요?”

“아니, 그게...”

나는 벌렁 드러누웠다. 침대 머리맡 벽에 거울이 붙어 있었고, 유성 싸인펜 같은 걸로 누군가 삐뚤삐뚤 낙서를 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벽지 여기저기도 볼펜으로 된 낙서투성이였다.

“이 밤이 지나면 나는 떠나가야 한다? 사랑을 하자,”

그 아래는 또 다른 글씨로 “꿈을 차자? ㅋㅋ, 댑다 개유치하다 이거, 누가 썼지? 무식하게 맞춤법 다 틀렸네.”하고 써져있었다.

내가 글을 읽으며 웃어대자 그도 침대 위로 올라와 낙서들을 들여다보았다.

“시도 써놓고 갔네요. 애잔하네.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밤을 보내고 갔나봐”

“그러게요.”

“창녀가 써놓고 갔을 수도 있어요.”

내가 다시 중얼거렸다.

갑자기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예전에 오빠 사업이 조금 돌아가던 때 2층 양옥집 아래를 통째로 전세 산 적이 있었다. 우리에겐 호강이던 때다. 현관 옆에 작은 방이 하나 남아, 엄마가 방 하나를 월세로 놓았다. 거기 살던 젊은 여자가 알고 보니 창녀였다. 그녀는 방안에 전화기 한 대를 놓고 하는 일 없이 뒹굴다가 전화가 오면 후다닥 화장을 하고 차려입고는 나갔다. 여관에서 부르는 거였다. 하루에 몇 번씩을 나가기도 했고, 하루 종일 못나가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그녀는 나랑 친했다. 나는 언니라고 불렀다. 가끔 자신의 화장품과 매니큐어를 꺼내 화장을 해보라고도 주기도 하고, 화려한 원피스를 빌려주기도 하고 반짝거리는 하이힐을 빌려주기도 했다.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그것들을 좋아라하며 입고선 영화관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러면 남자들이 따라오며 집적거렸다. 내가 예뻐서 그러는 줄 알았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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