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54]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20년까지는 올려 달라 소리 안 해서 좋네 김기은 소설가l승인2018.02.12l수정2018.02.12 18:2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그런 줄 알았으면 천 원짜리나 넣을 걸, 괜히 만 원짜리 넣었다. 정가에서 한 푼도 웃돈 같은 거 없다켔는데도, 느그 오빠가 잘 해달라고 나중에 얼마 집어 주더라. 그러고도 또 챙긴 기가. 식구들 거 다하면 얼마고? 고모 니는 5만원 넣고 오빠도 만 원짜리 몇 장 넣던데, 경아 넌.......,"

올케가 이번엔 조카들이 넣은 돈 까지 해서 손가락을 꼽아 헤었다.

"차라리 병원해서 하는 게 나았을 뻔 했다. 병원엔 뒷돈 하나도 없다 카던데."

대기실에 있는 3시간 동안 올케는 지겹게 끝도 없이 돈 얘기를 이어 갔고, 순서 됐나 전광판 잘 보라며 수도 없이 시간을 확인했다.

화장이 끝난 뒤, 오빠가 유골함을 안고 큰 조카가 영정사진을 안고 우리는 차를 타고 납골당으로 향했다.

"아이고 노인네도 참 박복하지, 평생 셋방살이 못 벗어나더니 죽어서도 눕을 땅하나 없이 또 세 사네. 그래도 20년 전세라, 20년 까지는 올려 달라 소리 안 해서 좋네."

올케가 또 이상한 소리를 했다. 납골당 대여료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엄마는 생각 없이 씀벅씀벅 아무 말이나 내뱉는 그런 올케를 싫어했다. 나도 정말 지겨웠다. 그 지겨운 소리가 듣기 싫어 엄마는 단칸 셋방을 얻어 따로 살았었다. 하지만 병이 나니 결국 처남이랑 사업한다고 대구로 이사 간 아들을 따라갔다.

올케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엄마는 아들 곁에 있고 싶어 했다. 핏덩이 아들과의 피난살이가 유별난 집착을 만든 거 같았다. 올케나 나나 모자간의 그 유별난 집착을 싫어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결코 흥분할 줄 모르는 엄마의 그 독한 절제력을 끔찍하도록 싫었고,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로 가슴을 콕 찔러놓고는 차갑게 침묵해 버리는, 찬바람이 휭휭 부는 그 성격도 싫어했다.

“누가 이북사람이 원래 독하다.”

올케가 그랬다.

소심한 나는 그 화를 안으로 삼켰고, 흥분 잘하는 올케는 자기의 화에 빠져 악을 쓰고, 길길이 날뛰며 나오는 대로 온갖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 조차 잊어버렸다.

“이 요에서 한발 짝도 나오지 말고 그 안에만 가만히 누워있으소. 죽으면 요만 도르르 말아서 내다버릴 거구만.”

엄마가 이빨 빠진 고양이처럼 되어버리자 올케는 복수를 하듯이 온갖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그 동안 쌓인 분노를 다 쏟아냈다. 그래도 누워있는 시어머니의 대소변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옷에 변을 흘리면 갈아입히고 닦아내고 빨고 하는 것은 올케였다. 돈이 없으니 요양원에 보낼 수도 없었고. 외아들이니 어디 미룰 곳도 없었다.

오빠 가족이 서울에서 엄마 가까이 살 때였다. 올케가 의성 친정아버지 8순 잔치에 가야한다며, 엄마가 몸이 아프니 사흘 만 엄마 옆에 있으라고 했었다. 그때는 그래도 지팡이를 짚고 걷기도 하고 기어 다니며 움직였다.

방에 들어서니 거대한 산처럼 우뚝 앉아있던 엄마는 한 마리 새우처럼 구부리고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왔냐.”

엄마가 몸을 돌려 눕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요강 좀 비워라”

방안에 요강이 있었다. 화장실이 마당에 있어 힘들어 못 간다는 거였다. 영등포 달동네의 다 쓰러져가는 오래된 주택 집이라 화장실이 재래식이었다. 화장실에 요강을 비우고 닦을 때마다 나는 꽥꽥거리며 구역질을 해댔다. 그러며 구시렁거렸다.

“지팡이 짚고 화장실 가면 되지 냄새나게 방에다 요강이 뭐야......”

느낌이 이상해서 뒤돌아보니 엄마가 방문을 열고 그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할 정도로 찬바람이 도는 표정이었다.

“걸레 좀 가져와라”

엄마는 방안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먼지를 닦으라고 했다. 닦아놓으며 또 저기를 닦으라고 하며 끊임없이 시켜댔다. 원래 결벽증 같은 게 있었던 엄마였다. 어릴 땐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방바닥 비닐장판을 하이타이를 풀어서 수세미로 닦던 사람이었다. 초등학생인 나더러도 주말이면 책가방이며 신주머니, 필통, 책받침, 실내화, 운동화 등을 모든 학용품을 몽땅 마당에 쏟아놓고 다 빨라고 할 정도였다.

“닦았다는 게 왜 그러냐. 먼지가 뽀얗다. 하나를 하더라도 좀 야무지게 제대로 해라.”

엄마가 짜증 섞인 잔소리를 쏟아냈다. 걸레를 집어던지고 가버리고 싶은 걸 꾹꾹 참았다. 몸은 병들고 작아졌어도 엄마의 기세는 조금도 시들지 않았었다. 세삼 올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 드셈이 없었으면 못 견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내가 암 걸려 죽어도 벌써 죽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내가 그 말을 하니 올케나 얼씨구나 하고 맞장구를 쳤다. 자기가 그렇게 퍼붓지 않았으면 벌써 못 견디고 나갔거나 죽었을 거라고.

올케가 친정에서 돌아온다는 날, 나는 도망치듯 내 원룸으로 돌아와 버렸다.

하지만 올케는 그날 오지 않았다. 내가 와있어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단다 그런데 내가 가고 그날 오전에, 엄마가 쓰러지셨다. 올케랑 오빠는 옆집 여자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올라왔다.

나는 엄마가 입원한 한방병원을 찾아갔다. 내가 사다준 참외며 케익, 요플레 때문에 탈이 났다고 했다. 정신을 잃고 바지에 온통 설사를 해놓았더란다.<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골프장TF전략사업기사제보광고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50-5 태호빌딩 505호  |  발행·편집인 : 문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문정호  |  전화 : 02-2277-7371  |  팩스 : 02-2277-1480  |  이메일 : master@thegolftimes.co.kr
제호명 : 골프타임즈  |  문광부등록번호: 서울 아 02033  |  사업자등록번호 : 202-16-92335  |  통신판매업사업자번호 : 제2012-서울중구-0827호  |  출원번호 : 40-2012-0016887
골프타임즈는 상표법에 의거하여 특허청에 상표(국,영문)등록이 되어있습니다.  |  골프타임즈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 보호를 받으며 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2018 골프타임즈.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