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너희를 가르칠 형편이 안 된다. 대학을 보낼 수 없으니 실업계가서 빨리 취직해서 동생도 가르치고 그래라”

아빠의 설득으로 대학의 꿈을 접었지만, 아빠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절대 접을 수 없었을 거다.

그 해에 나는 야간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들어갔다.

큰 조카는 그 후 돈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돈을 벌고 모았다. 나는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공부하면서도 칭찬은커녕 졸지에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올케와 오빠, 조카들, 심지어 엄마까지 내 졸업식 날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무능한 오빠를 위해 희생하기 싫었다.

희생은 그동안 살면서 겪은 고생으로 충분했다. 나도 내 살길을 찾아야 했다. 작가라는 직업이 굳이 대학원까지 가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옛날의 수모 때문에 학벌에 대한 열등의식이 강했다.

큰 조카는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다. 통장으로 따박따박 입금된 월급으로는 제 아빠 말처럼 동생 등록금을 대고, 가족 생계를 담당했다. 은행에서 퇴근한 저녁이면 레스토랑에 가서 서빙을 하며 자기 용돈을 벌었다. 그렇게 벌은 돈이라 아까워서 그 흔한 햄버거 하나 안 사먹었다. 그러면서도 돈을 모아 제 엄마 옷을 샀다. 대학을 못간 한에 아빠에 대한 원망 때문인지 아빠 물건은 단 한 번도 사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의 사라졌다 해도 전전긍긍하지 않았고, 아빠의 죽음에도 조금도 설워하지 않는 거 같았다.

나 역시 오빠의 죽음이 서럽기보다는 불행히 살다가 떠난 한 인간의 삶이 안쓰럽고 아플 뿐이었다.

엄마는 대가 끊겼다고 한탄했지만 내 생각엔 조카들이 모두 딸인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딸이기 때문에 가난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었던 거다. 천만 다행이게도 모두 칼 대지 않고도 충분할 만큼 예뻤다. 신데렐라라 까지는 아니라도 그 정도 인물이면 괜찮은 남자 만나 좋은 데로 시집가지 않을까 싶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유족대기실에 기다리고 있었다.

“저 쪽에 편의점도 있고 식당도 있더라. 편의점에 가서 마실 거라도 좀 사 온나”

“엄마! 옆 사람들 욕한다. 그냥 좀 있어라.”

옆쪽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서 올케는 지겹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했다.

“뭐 이래 오래타고, 덩치가 커서 오래 걸리나보다. 저번에 어무이는 금방 끝났던 거 같은데.”

몇 번을 그러다가 드디어 올케가 전광판을 올려다보고는 끝났다며 가자고 했다.

화장을 하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화구 앞에서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던 사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올케는 큰 애를 밀치며 가서 유골함을 받아오라고 했다.

“나 혼자?”

“네가 맏상제 아이가. 네가 가야지. 그러면 이혼 한 내가 갈까? 앞에 가서 받아오기만 하면 된다.”

큰 애는 머뭇머뭇 내키지 않는 듯 하며 화구 앞쪽으로 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하얀 면장갑을 낀 손으로 흰 보에 싸인 유골함을 안고 나왔다.

“다 끝났다. 가자 이제”

올케가 앞장섰고, 큰 애는 멈칫멈칫하며 유골함을 안고 따라 붙었다.

“엄마 이건 어떻게 해?”

“그래 같고 어디 불편해서 들고 다니겠나. 뭐 사무실가서 무슨 비닐 봉다리(봉지)라도 하나 달라케라.”

막내가 사무실로 달려갔다 오더니 봉지가 이것 밖에 없댄다며 검정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편의점에 종이봉지 파나 가 볼까?”

“됐다 마. 뭐한다고 돈 없애노. 큼직해서 잘하면 들어가겠네.”

올케랑 큰 애가 검정 비닐봉지를 벌려 유골함을 넣었다.

“딱 맞다. 하하하, 우예 그래 딱 맞노.”

“이제 오빠의 유골은 마치 쓰레기처럼 검정 봉지에 담겨 큰 딸의 한 손에 들렸다.

“이제 좀 낫제. 그렇게 들어야지, 불편하게 우예 안고 다니노?”

“근데 엄마, 이거 어떡하게? 집에 가져가게? 어따 뿌려야 되는 거 아냐?”

“그라게, 우야노?”

나는 엄마가 계신 납골당을 떠올렸다.

“납골당에 안 모셔? 엄마 옆에 두지. 엄마 돌아가시고 만날 찾아갔다며.”

“납골당 돈이 얼만데, 누가 거길 찾아간다고 거기 갖다 놓노. 고모가 여기까지 내려와서 찾아다닐기가. 이혼한 내가 옛날 서방 보러 찾아 갈까, 그렇다고 서울에 있는 애들이 찾아다니겠나? 어차피 쟤들은 나중에 시집가면 여기 오지도 못한다.”

“그래도…”

“저 아저씨 저기 가네. 저 아저씨 빨리 따라가서 갖다줘라. 저 아저씨가 끝까지 다 알아서 해준다 캤다. 자기 산도 있다더라. 거기 뿌려 달라카면 된다. 놓칠라 빨리 뛰어가서 주고 온나.”

일을 다 마치고 저만치 가고 있는 상조회 아저씨를 보며 올케가 큰 애한테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유골을 생판 모르는 남한테 주노. 납골묘 안 쓰려면 어디 산에다 뿌리던지 해야지.”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