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살 수 있을까요?”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대기 중이라는 여자가 소리 없이 웃었다. 어쩌면 울상을 지었는데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여자의 눈길을 피해 복도 밖 동산으로 고개를 돌렸다. 푸른 소나무 한 그루 없는 동산에 겨울의 해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알몸으로 차가운 바람을 맞는 나무들이 진저리치고 있었다.

“저 살 수 있겠죠?”

여자가 다시 물었다가 대답이 없자 빠르게 말했다. 있잖아요. 췌장암 환자는 거의 다 죽는대요. 수술해도 소용없대요. 의학적 통계로는 90 몇 %가 죽는다니까 결국 다 죽는 거잖아요.

“입원실 암환자와 보호자들이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녀의 ‘정말 그런가요?’라고 덧붙인 물음에 일어서다가 주저앉았다. 일반병동과 암병동을 잇는 긴 통로 창가에 의자와 작은 탁자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환자복의 그녀가 빈 내 앞자리에 앉으며 묵례를 했다. 일반병동에서 채혈한 후 지루하게 복부 CT촬영 시각을 기다리던 나도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미안하다고, 나는 괜찮다고 고갯짓으로 소통한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암병동과 일반병동을 오가는 복도는 분주했다. 의사와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 문병이나 업무로 방문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간간이 외국인들도 지나갔다. 병원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일까? 모두의 표정이 어둡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간혹 무리 지어 희희낙락의 모습으로 지나가면 눈살이 찡그려졌다.

“문병 오셨나 봐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그렇다고 거짓말하려다가 그녀의 환자복을 바라보며 천천히 도리질했다. 우연히 마주 앉은 그녀였으나 무엇인가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도 환자예요.”

“정말이세요?”

“어쩌면 이쪽 병동으로 올지 몰라요.”

왼쪽 암병동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암병동을 바라보다가 오른쪽의 일반병동으로 고개를 돌리곤 한참동안 눈도 깜빡거리지 않았다. 긴 머리를 쪽 찌듯 틀어 붉은 머플러로 묶은 그녀에게 쏟아지던 햇살이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나타났다. 손바닥으로 햇살을 받으며 그녀의 턱이 참 예쁘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살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환자를 바라보며 미모부터 살피는 자신에게 던진 한심한 웃음이었다.

“왜 웃으세요?”

여자는, 삼십 대 중반쯤의 그녀는 얼굴을 바로 하며 빤히 쳐다봤다.

“웃은 게 아니라…….”

말을 잇지 못하고 이번에는 한숨에 실소를 실었다. 그러자 여자가 조금은 발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한심한 거죠? 그렇죠?”

“그쪽이 아니라 내가 한심해서요. 앞뒤 상황도 못 가리는 남자라.”

암병동에 입원할지도 모를 사람이 중병환자의 심정을 헤아려주지 않고 미모에 젖어 감탄하는 자신이 어처구니없어 터진 탄식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제가 예뻐요?”

“미안합니다.”

“남자들은 아픈 여자에게 더 홀린다면서요?”

여자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췌장암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의사의 진료 설명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임신이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그녀는 왜 부모와 형제자매가 아니라 임신이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의사의 췌장암 진단에 죽음을 예감했을 것이다. 여자에게 가장 소중한 새 생명 하나 탄생시키지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는 절망 앞에서 임신부터 생각한 것은 여자의 본능일는지 모른다. 죽음과 새 생명의 잉태는 극과 극의 충돌이지만, 여자에게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앞으로 임신할 기회조차 없다는 절망일 것이다.

“전에는…….”

탁자에 두 손을 올리더니 기도하듯 깍지 꼈다.

“전에는 임신할까 두려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운이 좋아 살아난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임신이라고 말하는 여자를 외면하며 복도의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일반병동으로, 암병동으로 엇갈려가는 저들은 죽음 앞에서 살아난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저마다 이루고 싶은 꿈을 종이에 적어 복도에 깔아놓으면 함박눈이 내린 것처럼 눈부시겠지. 어쩌면 신이 머무는 세계보다 더 아름다울지 모른다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CT촬영 예약 시각까지는 한 시간 더 기다려야 했다.

CT촬영에도 불분명하면 조직검사를 할 겁니다.

의사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나 표정에서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는 것을 예감했다. 진료실을 나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정말 아프세요?”

그녀가 내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아주 건강한 모습이에요. 혹시 절 위로하려고 환자라고 거짓말한 거 아닌가요?”

“아픈 거 맞아요.”

손목시계를 보여주며 복부 CT촬영 시각을 알려주었다.

“의사가 조직검사도 할지 모른다고 했어요.”

탁자에 세웠던 두 팔을 거둔 그녀가 이번에는 팔짱을 꼈다. 잠시 창밖 동산을 바라다보더니 어떻게 나뭇가지에 마른 잎 하나 안 걸려 있느냐며 고개를 돌렸다. 마치 겨울철의 메마른 동산 풍경이 내 잘못인 것처럼 못마땅한 표정이었다가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괜찮을 거예요.”

그녀의 괜찮을 거라는 말에 고맙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괜찮지 않은 상황이지만, 췌장암 수술을 해야 하는 그녀의 위로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가 미안해서였다. 괜찮을 거예요, 내게 한 그 말은 어쩌면 자신에게 한 위로일는지도 모른다. 수술해도 예후가 좋지 않아 사망률이 높은 게 췌장암이었다. 그녀도 주치의로부터 설명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병원에 온 거 가족들에게 감췄나 봐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물어봐도 돼요? 왜 말하지 않았는지.”

또 고개를 끄떡였다.

“착한 남편인가 봐요. 자상한 아빠이고.”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착한 남편도, 자상한 아빠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가장은 더욱 아니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최선 다하면서도 늘 불안해하는 평범한 중년 남자였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직장마저 떨려 나올 기미를 눈치 챈 아내에게 건강이 심상치 않다고 차마 말할 수 없어서였다. 다행히 만약을 대비해 들어놓은 생명과 암 등 보험이 있어 아내 모르게 검진받는 중이었다. 혹시 몰라 보험사를 찾아가 병으로 사망할 때 받을 수령금액도 확인했다. 물론 이것 역시 아내에게 비밀로 했다.

“이쪽도, 저쪽도…….”

암병동과 일반병동 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끝을 삼켰다. 어느 쪽이든 가서는 안 되는 공간이었다. 오진이었다는 의사 사과도 기대할 수 없는 몸 상태에 화가 났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무력감에 빠질 뿐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녀의 앞뒤 생략한 질문에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라고 대답하며 녀석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늘 저녁에는 남매와 양념치킨 파티로 즐거운 시간을 갖기로 한다. 녀석들이 원한다면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노래방으로 가족 모두가 가기로 한다.

“애들 얘기에 얼굴이 금방 밝아지셨네요.”

“아! 그런가요?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보기 좋아요. 부럽고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시집갔으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겠지요, 라며 통로로 한 걸음 나섰다. 그녀가 향한 곳은 암병동이었다.

“저 있는 곳을 넘보지 마세요.”

그녀가 웃으며 내민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요. 완치될 거예요. 말하려 할 때 그녀가 손을 빼며 나를 비껴갔다. 고개 숙인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돌아섰다. 일반병동으로 가는 긴 통로에 엇갈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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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