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재주 없기는 신 여사나 나나 도토리 키 재기였다.

오죽했으면 소묘를 가르치는 선생이 두 어르신은 너무 힘들면 안 나오셔도 된다고 말했을까. 우리는 선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선생은 우리의 반응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난처한 표정이었다가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그날 신 여사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포장마차를 찾았다. 간판만 포장마차지, 아담하게 꾸민 술집이었다.

“어지간히 힘들었던가 봐요. 소묘 선생이.”

신 여사는 미술학원은 머릿수가 곧 돈인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걸 보면 우리가 헛꿈 꾸는 거 같다며 낙담한 얼굴을 했다. 낙심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칠십 넘어 소묘를 시작한 것은 꼭 하고 싶은 일 때문이었다. 그 일을 하려면 반드시 인물소묘를 배워야 했다.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오자 신 여사가 잽싸게 술병을 잡았다. 술자리는 무조건 장유유서라며 어서 잔부터 받으란다. 소묘를 한 달 가까이 배우면서 커피 한번 나눈 적 없는 우리였지만, 술을 권하고 받으면서 잡다한 세상사를 늘어놓다가 다시 소묘 이야기로 돌아왔다.

“정말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닐까요?”

신 여사가 먼저 원점으로 돌아섰다. 그녀의 땅 꺼지는 한숨이 고스란히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에도 교실 뒤 게시판에 그림 한 장 걸려본 적이 없었다. 이마에 여드름이 피던 사춘기 때 여학생에게 보낸 연예편지에다가 장미 한 송이 그려 넣은 기억도 없었다. 그랬던 인사가 고희 넘어 미술학원에 다닌다? 허허 웃음이 터졌다.

“왜 웃으세요?”

“하도 기가 막혀서요.”

“영감님도 그만두고 싶나 보죠?”

고개를 끄떡이다가 바로 가로저었다. 머리는 그만두는 게 맞는다고 소리치지만, 가슴은 아니었다. 오기가 아니라 절실함에 도전한 소묘이므로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든 해낼 겁니다. 예! 그래야 해요. 꼭!”

신 여사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강한 어투로 말하자 그녀가 긴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왜요? 반드시 해내야 할 이유가 뭐죠? 영감님을 그토록 절실하게 하는 그게 무엇인지 털어놓으면 안 돼요? 라는 눈빛을 피해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세를 바로 하며 대답하려고 할 때 신 여사가 먼저 말했다.

“나는요. 내가 왜 소묘를 배우는가 하면…”

마치 큰 비밀이라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는 듯 말꼬리를 죽였다가 이내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그럭저럭이라고 표현한 신 여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어릴 때의 꿈이었던 간호사는 물론 시인에다 트로트 가수도 될 거라고 했다.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을 차에다 싣고 두메산골 마을마다 찾아다니며 연주회도 열어주고, 작은 어촌에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어부들의 혼을 달래주는 한풀이 춤도 출 거라며 행복에 겨운 진저리를 쳤다.

“하고 싶은 게 한 천 가지쯤 되는데 너무 많죠? 그렇죠?”

신 여사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었다가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걸 해내려면 어떤 동작이든 연필로 쓱쓱 스케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재주가 메주니 난감하다고 했다. 아니 차라리 칵 죽고 싶다며 이번에는 대성통곡이라도 할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신 여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쳐다보다가 뒤늦게 껄껄껄 웃었다. 아하!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니 그 모든 걸 그림으로 이뤄내겠다는 계산 아닌가. 시인이든 가수이든 간호사든 동작과 분위기를 그럴듯하게 스케치한 후 얼굴만 자신의 모습으로 그려 넣으면 소원 성취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젊은 미술강사 녀석이 힘들면 안 나와도 된다고 찬물을 끼얹었으니 심정이 오죽하랴.

“있잖아요. 영감님!”

술기가 오른 신 여사의 말투에 힘이 들어갔다.

“혼자 키운 애새끼들 결혼시켜서 싹 내쫓고 이제 모처럼 내 인생 살겠다는데, 그 젊은 선생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날벼락 치는 말을 하냐고요? 늙은이 미치게!”

‘늙은이 미치게’라는 격한 말에 옆자리의 젊은 남녀가 신 여사와 나를 힐끔거렸다. 앞의 말은 듣지 못하고 뒷말만 들어 오해했는지 달갑지 않은 눈초리를 던졌다.

“영감님! 우리 미술선생을 불러내 따질까요?”

“뭐라고 따져요?”

“우리가 그렇게 미술 재능이 메주냐고 닦달하자고요.”

“사실인데 어떻게 화를 내요?”

사실이라는 말에 당장 선생에게 전화할 것 같았던 신 여사가 금방 풀이 죽었다. 심통 난 아이처럼 입술만 삐죽거리다가 반쯤 남은 잔을 비웠다. 그녀가 잔을 권하기 전에 술부터 따라주며 물었다

“그래서 그만둘 건가요?”

그만 둘 거냐는 물음에 신 여사가 손사래 쳤다.

“그만두다니요? 천만에요!”

“그럼 됐어요. 난 또 혼자 남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신 여사는 어제도 밤늦도록 딸년이 쓰던 방을 말끔히 비우고 그림 그리는 작업실로 만들었다고 했다. 문 한 가운데 ‘신옥희 아틀리에’라고 써 붙였다가 ‘소원성취원’으로 바꿨단다.

“소원성취원. 어때요? 멋지죠?”

신 여사의 당호가 멋지지 않느냐는 물음에 아파트를 떠올렸다. 방 하나를 미술학원 등록 전에 그림 작업실로 만들었다. 화가처럼 이런저런 화구들을 갖춘 것이 아니라 달랑 이젤 하나만 세워놓았다.

대학 졸업 후 기업체 취업을 포기하고 한옥 대목수를 따라다녔다. 전국 여기저기를 떠돌며 한옥 짓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제법 한옥 목수로 대접받았지만, 떠돌이 생활이라 결혼을 놓쳤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혼자가 됐고, 피붙이는커녕 아내조차 없는 늙은이가 됐다.

육십 중반에 교통사고로 목수 일을 내려놓자 외톨이가 됐다. 자식도, 할망구도 없는 독고노인에게 아파트단지의 어린이놀이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휴식공간이었다. 정신없이 뛰어놀며 웃고 소리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해가 언제 지는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자기에게 오라고 소리치는 젊은 부부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내가 결혼했다면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고 있겠지…

처음 느낀 피붙이 하나 없는 외로움의 아픔이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가족사진 한 장 걸려 있지 않은 아파트는 폭염의 여름에도 한기뿐인 공간이었다. 숨 쉴 때마다 허연 입김이 풀풀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아 밤늦도록 밖으로 나돌았다.

“영감님! 내 말 듣고 있어요?”

신 여사가 손등을 툭 치며 큰소리로 물었다. 깜짝 놀라 쳐다보자 취기 가득한 목소리로 거듭 물었다.

“영감님은 왜 그림을 배워요? 그림 배워서 뭐하려고요? 화가가 소원이냐고요?”

술 몇 잔에 취한 신 여사에게 화가가 꿈이었다고 대답하며 일어섰다. 그녀가 계산하겠다는 고집에 양보하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영감님! 꼭 화가가 되세요. 모레 봐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돌아선 신 여사를 지켜보다가 소리쳤다.

“그래요. 모레 미술학원에서 봐요. 신 여사!”

그녀에게 왜 얼굴 소묘를 배우는지 입 다문 것이 미안했다. 결혼했다면 어떤 여인을 만났을까. 핏줄을 이었다면 어떤 모습일까. 또 손자 손녀는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다가 인물 소묘를 떠올렸다. 상상이지만, 아내와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과 손자 손녀의 얼굴을 그려 벽에 걸고 싶었다. 까르르 까르르 자지러지게 웃는 손자 손녀의 얼굴로 아파트를 가득 채우고 싶어 미술학원에 등록했는데 말하지 않았다.

모레 미술학원에서 만나면 그 말부터 하리라, 다짐하며 목을 뺐다. 신 여사의 모습은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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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