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기억 속의 풍경을 끄집어내서 현재의 삶을 위무하는 시집이 나왔다.

윤순철 시인의 첫 시집 ‘모란이 핀 창가에서’가 도서출판 우포에서 발간됐다.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인생사 늙어가서 비로소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추억과 회한을 가늠할 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이는 추사의 ‘세한도’로 확대되고 김시습의 ‘世路의 末’과 닿아 있어 공자의 말보다는 매월당이 구미를 당기게 한다.

자칭 이 세상에 행세할 시인의 형편이 아니다. 후드득 소나기에 허겁지겁 묶어서 갈무리한 풀더미처럼 흩어진 세월, 인생의 난삽함 그 풀더미를 뒤져 한 두 줄 찾은 것이 이 시집에 가까스레 들어간 시편들이다. 이어 싱싱한 것도 못난 것도 있다. 부끄럽지만 내 체온이 남아있는 것이기에 견디어 본다고 윤순철 시인은 자서에 적고 있다.

윤 시인의 시를 읽으면 담담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매끈하게 문맥이 잡힌다. 그만큼 그의 시편들은 연륜이 묵은 내면에서 오래 굴곡지고 우려낸 흔적이 역력하다.

길게 드리운 줄기/허리가 어딘가//문디 가시나/머릿결에도 엉덩이에도/헤픈 웃음이 걸려있다//빗방울 입맞춤에/도리질 하며/바람에 고개 돌린 옆모습은/천생 엇질 가시나//떨어진 꽃잎은/조잘조잘 쏟아놓던/앞집 가시나 잔소리다 –<능소화> 전문-

그의 시편들을 읽고 있으면 괜스레 쿡쿡 웃음이 튀어 나온다. 시 ‘능소화’에서도 애증이 도사린 앞집 가시나 와의 행태를 경쾌하고도 재미있게 잡아낸 것이다. 능소화의 애절한 전설이 경상도 가시나의 정서로 변용되고 있다.

어쨌든 그의 시를 단숨에 읽게 만들고 담백하기도 하고, 초창기 질박한 창녕 사투리로 매만져 감칠맛 나는 시풍과는 조금 변화가 보이긴 하지만 시맥엔 순박함이 묻어난다.

이번 시집의 특징은 대체적으로 시의 가락이 긴편이고 옛 살던 마을의 옛 지명이 드러나고 과거 친구들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상실감과 뒤엉킨 묘한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해 그 시절의 지명과 그때의 실명들을 들추면서 상처투성이의 현실을 추억의 힘으로 위무하고 있는 듯 하다.

시편들은 현상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그의 섬세함처럼 그 이면에 숨은 미세한 내적 파동을 감지 못하는 이들에겐 언어 나열로 보이기도 한다. 그의 시어는 부드럽게 보이지만 내면의 강한 의지가 시의 틀을 지탱하고 있다. 문맥 속에 본의를 깊게 숨겨 시적 은유의 이해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쉽게 다가서지 못할 이유도 된다.

내가 기억하는/제일 먼저 죽은 사람//부처도 알기 전에/예수도 알기 전에/제일 먼저 죽은 사람//나의 유일신//젖고파 울어도 되고/보고파 울어도 되고/소리쳐 불러도 되는 사람//내가 제일 먼저 안 사람 -<어머니‧1> 전문-

누구보다도 일찍 여의게 된 엄마에 대한 모성부재에 따른 반동형성이 의식 깊숙이 드리운 그에겐 유년시절 악동기질이 스며들었고 여성성 보상행태와 거나한 술로써 몸을 상하게 만들기도 했으리라. 어린 시절에 떼를 쓰며 무엇이나 다 요구할 수 있는 본능적인 욕구의 상실이 팍팍한 삶에 던져진 윤시인에겐 더욱 민감한 부딪힘이라 본다.

초등학교 친구인 남상보(사업) 씨는 '감성어린 초등학교 시절 어버이날만 되면 우린 붉은 카네이션을 상투적으로 만들었으나 그는 하얀 카네이션을 만들어야 했던, 그래서 우리에게 그의 아픔은 더욱 부각됐고 그의 아픔을 염려했던 반 전체의 공동체적인 기억이 있었다. 그런 아픔이 그에게 세상에 대해 더 민감한 관계양상을 감지하게 됐으리라 본다.'고 회고했다. 아마 그런 감정들이 그에게 시를 쓰게 한 원천이 아니었을까도 가늠해 본다.

윤순철 시인은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창녕문학>, <한맥문학>으로 등단했고 현재 창녕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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