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새벽에 오시느라고 시장하실 텐데 뭐 좀 드이소.”

배고프지 않다고 한사코 싫다는데, 제사를 마치고 온 걸 알 리 없는 올케는 부엌으로 가서 손수 떡이며 편육이며 홍어회 같은 음식을 챙겼다. 언제 담아 놓은 건지 접시 위의 떡이며 홍어회의 위가 바짝 말라있었다. 올케는 그것들을 손으로 전부 홀라당 뒤집은 다음 내왔다. 좀 전 보다는 촉촉해져 있었다.

“이 홍어회가 보긴 이래도 저희 친정언니가 직접 만들어놓고 간 기라 맛있십더, 함 드셔 보이소. 이런데서 파는 거랑 다릅니더.”

여자들끼리만 5명이 모여 있는 썰렁한 빈소가 이상했던지 그는 자꾸 고개를 돌려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빈소의 초라함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나마 새벽에 와주서 얼마나 다행이었다.

“새벽이라 조문객이 없어서 쉬라고 다 집으로 보냈어요.”

“죄송합니다. 너무 새벽에 와서”

아무래도 그 자리가 어색했던지 그는 이내 일어섰다. 아침에 운구 나갈 때 다시 오겠다는 것을,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언제 올라가실 건지, 괜찮으시면 같이 올라가요.”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조문까지 해준 사람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럼 올라가시기 전에 전화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원 앞까지 그를 배웅했다.

“밤이라 그런지 좀 썰렁하네요. 밤샘하는 사람도 안 보이고”

“저희가 월남 가족이라 그래요. 게다가 오빠 상황이.......얘기했잖아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 고향이 상주라고 했지요.”

나는 언니가 준 주민등록등본의 본적 난에 적혀있던 ‘경북 상주’를 떠올렸다,

‘혹시.......’

나는 등본을 꺼내 그 사람을 아느냐고 보여주려다가 그냥 삼켜버렸다. 상주라면 큰 지역이 아니니 이름만 되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뭐라고 둘러댄담. 아니, 그보다도 아직 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참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니, 제 이름을 모르세요?”

“죄송해요. 제가 셰익스피어로만 기억해서.”

“진짜, ‘우째 이런 일이’네. 저 최경수에요. 볕경, 빼어날 수.”

“아버님 성함은요?”

“저희 아버지요? 최 치자 국자, 나라 ‘국’이에요. 할아버지가 커서 나라를 다스리라고 그렇게 지으셨데요. 그런데 나라는 못 다스렸지만 공무원은 했어요.”

“공무원요? 무슨 공무원요?”

“간첩 잡는 공안 수사관이어셨어요. 그 옛날엔 진짜 저희 아버지 이름만 되면 빨갱이든 아니든 다 벌벌 떨었데요. 근데 저희 아버지 이름은 왜 물어 봤어요?”

“그냥.........”

나는 막장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돌대가리 같았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저런 우연이 말이 되냐, 저걸 글이라고!”

그런데 삶이라는 건 때로는 막장 보다 더 막장으로 치닫고, 막장보다 더한 우연도 있다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 글이라는 게 어차피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라면 그런 개 막장 같은 이야기도 쓸 수 있는 거라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그가 눈치체지 못하게 슬쩍슬쩍 그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넓적하고 둥근 콧망울, 둥근 얼굴, 전형적인 남방계 얼굴이다.

오빠와 엄마는 콧대가 길고 오똑하며 얼굴도 갸름하다. 전형적인 북방계 얼굴이다. 하지만 나는 코가 뭉툭하고 얼굴이 둥글었다. 조카들도 제 아빠와 할머니를 닮아 코 선이 길었다. 엄마는 내 코를 갖고 주먹코라고 놀렸다. 나는 엄마를 닮지 않은 그런 내 코가 항상 마음에 걸렸다. 콧등을 잡아 올리면 좀 나아질까 싶어 어릴 때부터 콧등을 손가락으로 잡아 세우던 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거울 앞에 서거 콧등부터 잡아당겼다. 하지만 유전적 형질이 그런다고 바뀔 리는 없었다.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오빠는 엄마를 닮았고 나는 아버지를 닮았나보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말한 그 아버지는 북에 있는 오빠의 아버지였다.

그와 헤어져 빈소까지 무슨 정신으로 돌아왔나 모르겠다.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올케가 딱딱거렸다.

“야, 팀장이라 카는 게 부조가 그게 뭐꼬. 봉투가 하도 얇아서 수표를 넣었나 했더니 달랑 3만 원이다. 허우대는 산만한 게 멀쩡해 갖고 참, 덩치 값도 못한다. 원래 그리 자린고비가?”

“응, 사는 게 좀 어렵나봐”

“차도 없이 기차타고 왔다 카데, 서울서 왕복 기차비만 해도 얼마고, 겨우 3만원 부조 할라고 여까지 왔다카나? 참 나, 내같으면 그럴 바엔, 기차비로 부조나 하고 말겠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 참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 하하하”

다 오빠 탓이다. 오빠가 준 가난이 염치도 잡아먹은 거였다.

조카가 들고 있는 부조 봉투를 보니 ‘최경수’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올케가 눈치 첼까 싶어 얼른 봉투를 빼앗았다. 돈을 이미 꺼내고 없었다. 봉투를 내 바지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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