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야야, 통일을 안 바라는 사람이 어딨냐? 그리고 중국은 모르겠지만 미국이 그런 걸 왜 막냐? 미국은 우리 편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혼자 공부해서 대학까지 가더니, 똑똑한 줄 알았더니 왜 그렇게 티미하냐.(바보 같냐)"

"칠십을 사시고도 몰라요? 엄마처럼 북에서 피난 온 노인네나 탈북자 말고, 가진 자들은 통일 같은 거 절대 바라지 않아요. 나머지는 관심도 없고요. 생각해봐요, 통일되면 증권 곤두박질칠지 모르고, 실업자 넘칠지 모르고, 화폐 종이쪽 되고, 경제 쪽박 나고 정치는 난리도 아닐 텐데 기득권자들이 바라겠냐고요. 염병할 놈의 통일은 초등학생들이 학교 글짓기에서나 부르짖는 소리예요."

나는 괜히 삐딱하게 흥분하면서 엄마가 아프다는 것도 잊고 막 떠들었다. 아니 화가 나서 소리쳤다. 세상을 향해. 힘 있는 자들을 향해."

"그게 무슨 소리냐, 통일이 되면 합심해서 더 잘되는 거지, 나라가 왜 망해."

"그 잘사는 서독이 어떻게 됐는데요."

나는 독일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통일이 안 되겠냐.”

엄마가 돌아누우며 중얼거렸다.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그 전에 핵폭탄 날아와서 이 땅이 작살날지도 모르는데 무슨, 돈만 있으면 이 땅을 뜨고 싶어 정말........”

"벨 없는 소리 그만 하고 나가라."

“나갈 거예요! 이방에서 쾌쾌한 냄새나서 죽겠어.”

결벽증이라 할 정도로 깔끔한 엄마였는데, 엄마에게서 냄새가 났다. 딸도 아닌 며느리가 잘 씻겨줄 리가 있겠나 싶어 불만스러웠지만 나또한 엄마를 씻긴 적은 없었다.

그 즈음 엄마는 툭하면 전화를 걸어 내게 그런 식으로 올케를 욕하고 일러바쳤다.

“걔가 나더러 이 요 밖으로 나가지 말란다, 죽으면 깔았던 요것만 돌돌 말아서 버리면 된다고. 그게 할 소리냐?”

그렇다고 내거 올케한테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나 역시 살가운 딸은 아니었으니까. 욕하고 구박해도 거두고 살피는 것은 며느리밖에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그러면 고모가 데려가서 모셔! 딸은 자식 아니가” 하고 소리칠까봐 두려웠다. 그러고도 남을 여자였다. 안 그래도 전화만 오면 자꾸 올케 흉을 보는 통에 화가 난 올케가 엄마 머리맡의 전화기를 발로 차서 부숴버렸다고 했다.

엄마는 언제 싸웠느냐 싶게 '응~응~'하며 웅얼거렸다. '타향살이'를 부르고 있었다.

“치매 왔어요? 갑자기 노래는.”

그것은 내가 엄마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잠시 후 엄마는 잠이 들었고, 나는 일을 핑계로 인사도 없이 올라와 버렸다. 사람이 한 치의 앞일도 모른 다는 것은 비극이다. 앞날을 염두에 두고 살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시작보다는 마무리에 정성을 들일 것이다. 그 후에 올케가 한번 내려와 보라고 전화를 했지만 나는 차일피일 미루고 가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주에는 “다음 주에나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말한 ‘다음주’가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은 엄마의 장례식을 위래 난 것이었다.

"엄마!"

엄마가 지내던 방 안에 허겁지검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나를 확 밀쳐냈다. 나는 멈칫 했다. 섬뜩한 기운이 나를 더 이상 앞으로 못나가도록 막아섰다. 아무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머리에 달고 살아도 죽음이라는 이름의 기운이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영혼은 육체에서 다 빠져나와 이미 저 멀리 어디론가 가버린 거 같았다. 시신에는 숨결도 영혼의 흔적도 느낄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운동 나가면서 인사하려고 열어보니 이미 가셨더라. 편하게 주무시다가셨다.” 그러는 오빠의 말과는 달리 표정은 왔던 곳으로 편히 돌아간 것 같지가 않았다. 어디 낯선 곳으로 억지로 끌려간 것 같았다.

“자는 듯이 죽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 말을 자주 했다.

드라마에 오면 “아이고 엄마!” 하고 통곡부터 하던데 나는 이상하게 울음이 안 나왔다. 그냥 놀랍고 두렵고 당황스러웠다. ‘엄마를 살려야하지 않나’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하고 소리치며 엄마를 마구 흔들어대고도 싶었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엄마가 두려웠다. 이를 앙다물고 굳어버린 표정이 무서웠다. 너무나 말라서인지 꼭 미라 같았다. 정말 그랬다.

오빠가 멍 하니 서 있었다.

"아이고~ 어머니!" 하고 소리치며 울어야 하는데 우린 모두 계모를 보내는 전처자식처럼 울지 않았다. 아들도 딸도 손녀들도 어쩔 줄 몰라 하며 멀뚱멀뚱 서있었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어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우습게도 엄마와 앙숙이었던 며느리가 시신 앞에 엎어지며 "아이고, 어무이요~"하고 잠깐이나마 우는 모습을 보여 고인 앞에서 구겨진 체면을 조금이나마 만회했다.

오빠는 주무시다가 편하게 가셨으니 복이라고 또 그랬지만, 복인지 아닌지, 편하게 갔는지 불편하게 갔는지 그건 누구도 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거였다. 이를 저리 앙다물고 있는 것은, 고통을, 울음을 참은 게 아닐까.

“호랑이도 죽을 때가 되면 지 태어나 살던 굴로 찾아간다는데.........”

문득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의 굴은 함경도 길주에 있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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