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저녁 늦게까지 올케 친정 오빠랑 언니, 남동생이 같이 왔다갔고, 올케 친구가 서울서 셋이 한꺼번에 다녀갔다. 그리고 오빠 친구인 동관이 오빠가 다녀갔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던 오빠의 군대 동기이자 절친이었다. 의대를 다녔는데 자취생이다 보니 우리 집에 와서 하숙생처럼 아침저녁으로 들락거리며 밥을 달고 먹었다.

“내가 니 아이스케키 사먹으라고 돈도 주고 그랬는데, 니 생각나나?”

동관이 오빠가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웃어댔다.

요즘 같은 시대라면 어쩌면 아직은 인생을 반 도 더 살수도 있는, 젊었다면 젊은 나이인데,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커다란 세퍼트를 줘서 키우던 일, 목마 태워줬던 일,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 치료해줬던 일, 오빠들이랑 수영장에 갔을 때 장난하느라 나를 물에 빠뜨려 물을 먹인 추억하며.......

“아이고, 니 귀엽어가 놀리느라고 우리 친구들이 물에 빠뜨리고 안 그랬나. 장난 한다고 거꾸로 뒤집어가 물 좀 먹였더니 니 죽는다고 울고불고 난리쳤다 아이가. 참 귀여웠다.”

동관이 오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겨 빙그레 웃었다. 아직도 생각하면 우스운 모양이었다.

“생각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끔찍했던 기억을 절대로 잊을 리가 없었다.

계속 되는 동관오빠의 추억담에 까마득했던 어린 날의 일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내가 기억한 어린 시절은 힘들고 지루하기만 한 날들만 있던 거 같았는데, 동관 오빠를 통해 들으니 그 시절이 즐겁게 느껴졌다. 나는 왜 그런 즐거운 추억들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던 걸까? 언제나 나는 안 좋은 것만 기억했다. 오빠가 수영장에 데려가 놀던 일도 즐거운 기억보다는 공포만 기억했다. 그 후로 나는 물만 보면 무서웠다. 공중목욕탕의 욕조도 무서워할 정도였다. 얼마나 물이 무서워 긴장했던지 공중목욕탕 물에서조차 발을 못 딛고 허우적거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조만간 수영을 배워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쪼맨했던 게 이렇게 몰라보게 컷나. 길에서 봤어도 모르 지나칠 뻔 했다.”

“큰 기(게) 아이라 이젠 늙었다 늙었어.”

올케의 말에 한꺼번에 조카들까지 합세해 모두 와르르 웃었다. 이곳이 빈소가 맞나 싶었다. 동관 오빠는 바쁜 일이 있다며 곧 일어났다.

“얼마 주고 갔노?”

문상객이 나가면 올케는 그 사람이 시야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쪼르르 둘째한테 가서 물었다. 친정 남동생이 부조를 받다가 문상객이 너무 없어 그만 집에 가버리는 바람에 둘째 조카가 부조금을 받아 챙겼다.

“십만 원”

“그만하면 됐다. 잘 한 거다. 옛날 어무이한테 밥 얻어먹던 정 보고 찾아온 거지. 아빠야 그 친구한테 뭐 한 게 있나? 만날 돈이나 꿔달라 카고, 친구들한테 오직 귀찮게 했으면 그 많던 친구들이 다 도망가고, 죽었다케도 아무도 안 오겠노. 느그 아빠라카면 다들 이를 간다. 이를 갈어.”

“그랬어?”

“생각해봐라. 사업한다고 가계수표 끊어서 만날 부도내고, 어디 한두 번 말아 먹었나? 빚내서 택시라도 몰아보라고 면허내주면 사고내고, 보험회사 넣어주면 실적 낸다고 빚만 잔뜩 지고 6개 만에 나오고, 트럭 몰다 사람 치어 빚내서 합의금 물어주고, 하이고 참 징글맞다 징글맞아.”

언니의 타령이 시작되었다.

새벽녘에야 셰익스피어가 왔다. 제사를 마치고 온 모양이었다.

“누고?”

제단에 향을 꽂고 있는 그를 보며, 올케가 눈짓을 하며 입모양으로 물었다. 이름을 듣기나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응~, 저, 팀장”

나는 더듬거리며 얼버무렸다.

“팀장? 니 보험하나?”

“아니, 회사 사사 맡아서 쓰는데, 거기 팀장님.”

거짓말이란 시작 할 때나 힘들지, 일단 뱉어서 틀을 정하고 나면 그 다음은 술술 채워지는 거다.

“사사가 뭔데?”

“회사 역사”

“별놈의 역사도 다 있다. 나라 역사도 안 읽는데 회사 역사를 누가 읽노.”

작게 말하는 데도 들렸던지 조용히 하라며 큰 조카가 툭툭 쳤다.

그가 절을 마치고, 상주인 큰 조카한테 예의상 몇 마디를 하고 물러서나오자, 올케가 나서서 최대한 표준말을 구사하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아이고, 팀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먼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았지요. 흐흐.”

“예? 예, 아닙니다. 당연히 와 봐야지요.”

다행이 그는 눈치가 빨랐다. 나를 슬쩍 보더니 알아서 받아넘겼다.

상대의 억양에서 경상인 걸 확인한 올케는 이번엔 마음 놓고 경상도사투리를 확 터버렸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