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망설이다가 고르고 고른 친구 4명에게 문자를 넣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못 가서 미안해. 넌 혼자 사니까 모르겠지만. 애들 땜에 꼼짝 못 해.”

둘은 그렇게 문자만 보내왔다. 그리고 둘은 왔다. 그 중 하나는 대구로 시집 가 사는 애였다. 그들도 안 온다 해도 내가 서운해 할 처지는 못 되는지라 따지고 보면 고마운 거였다.

친구가 영정을 향해 절을 하고 국화를 한 송이를 집어 기독교식으로 고인에게 제배했다. 그 애가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동안 다른 친구는 향을 피웠다. 가느다란 향연기가 하늘하늘 오르며 엄마의 얼굴을 간질이는지 엄마 얼굴이 웃었다. 원래 엄마 사진은 웃는 사진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보였다. 영정 안에서 노란 저고리를 곱게 입은 엄마다. 그것은 한때 조계사를 다닐 때 입고 다니던 옷이었다. 상상 속에서 향이 코를 간질거린다면 엄마가 재채기를 했다.

한 친구가 묵념하는 동안 다른 친구는 절을 했다. 허리를 굽히며 엉덩이를 뒤로 빼자 그녀의 윗도리가 올라가고, 바지 허리춤이 쑥 내려가면서, 검은 바지 속에 조신하게 숨어 있던 연분홍 팬티가 쏙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한 쪽에 다소곳이 서서 삐죽이 올라온 친구의 분홍 팬티에 시선을 두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속으로 노래를 읊조리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움직였다. 웅얼거리며 입술로 소리가 삐죽 삐져나왔다. 마치 친구의 분홍 팬티처럼. 이내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오빠의 곡소리 때문에 아무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 노래는 엄마의 십팔 번 곡인 ‘타향살이’에 지겨움을 느낀 오빠가 밝은 노래 좀 해보라며 엄마에게 억지로 가르친 노래였다. 하지만 엄마는 늘 앞 소절 그거 하나밖에 못 불렀다.

“하이고, 또 잊어버렸다. 나이 들어 배운 건 희한하게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어물쩍 ‘타향살이’로 넘어갔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그리고 나면 엄마는 예외 없이 눈물을 찍어냈다.

갑자기 엄마의 십팔 번 ‘타향살이’가 부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속으로만 읊조렸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객사다. 평생을 그리 던 고향집에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객사였다.

길주였다. 근처 어디, 그 어딘가에 종가 집 맏며느리가 들어가 있어야 할 시집이 있었고, 그 너머 어딘가에는 딸만 셋인 집안의 맏딸인 엄마의 친정이 있었다. 어릴 적 뛰어놀던 동네어귀와 냇가도 남아 있을 터였고, 아련한 추억도 남아 있을 터였다. 사과나무가 우거진 친정의 과수원 밭에는 늘 스타킹의 달콤한 사과 향내가 맴돌았었고, 여동생들의 웃음소리가 낭랑히 퍼졌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속에는 친정엄마가 있었다. 그 엄마를 그리며 나의 엄마가 눈물을 찍어냈다. 거기에를 가지 못하고 평생 타향을 떠돌던 엄마는 객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찌 아들이 그걸 보고도 호상이라 할 수 있나.

7.

엄마는 길주의 시집 선산에 묻혀야 되는 거였다.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 영기리였다. 엄마가 몸져눕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엄마가 유언처럼 말했다.

“나 죽거든 화장해서 날려버려라. 어차피 고향 선산에 못 묻힐 거 무덤 쓰면 뭐하냐. 통일이 될 것 같으면 뒀다가 고향에라도 뿌리라고 하겠는데, 60년이 넘어도 그 작은 철조망 하나도 못 뜯어내는 것들을 뭘 믿고 기다리겠냐? 그냥 가루로 날려버려라. 내가, 거 뭐냐, 무슨 사막의 모래 바람처럼 휘휘 돌아다니며 찾아보는 게 더 빠르겠다."

나는 한 귀를 흘려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던 거였다.

오빠는 장가가고부터 명절이나 처에가 무슨 행사가 있으면 11형제들이 모여 북적거리는 처가에 가서 연휴가 끝나야 돌아왔다. 외로움을 탔던 탓에 처가에 가서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올케와 사이가 안 좋을 때도 처갓집만은 꼭 쫓아갔다.

그래서 달랑 둘이 남은 엄마와 나의 명절은 더욱 쓸쓸했다. 둘이 방에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해마다 똑같은 TV명절 프로나 멍하니 들여다보며 남은 음식으로 끼니나 때우는 것 외엔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심심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엄마를 모시고 통일동산이며 임진각, 연천 같은 이북이 잘 보이는 곳을 둘러보는 거였다. 그렇게 우리는 명절이면 통일 동산이나 임진각을 향했다.

"저리 빤해 보이는데 못 간다는 게 말이 되냐? 미국도 가고, 그 서슬 퍼런 소련도 중국도 다 가는데, 지구상에서 저기만 못 간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엄마는 통일 동산 망원경으로 북쪽 마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고, 연천 어느 풀숲에서 강 너머 북한 땅을 보면서 망연자실 서있었고,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선 철조망 앞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이까짓 거 망치로 두드리면 금세 부숴버리겠는데 이걸 못 뜯어내서 못가네."

다리 가운데를 막고 있는 철조망 하나 때문에 못 건너가는 것처럼 그걸 붙잡고 오래도록 안타깝게 들여다보았다. "죽었을 거다. 살았어도 과수원 땅이 많아서 그것들이 그냥 안 놔뒀을 텐데, 모르겠다. 나온 사람이 더 고생인지, 남은 사람이 더 고생인지..." 공산당 빨갱이라면 끔찍하게 싫어하던 엄마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굉장한 변화였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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