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오빠는 사업 부도로 빚쟁이들을 피해 다니는 상황인지라 빈털터리 신세니, 올 친구들도 초대할 거래처 사람들도 없었다.

엄마는 평소에 객사하기 싫다며 편안히 내방에서 가고 싶으니 병들어 죽게 생겼으면 병원에 넣지 말고 집에 놔두라고 했다. 북에서 월남한 피난가족이라 남한에 친척이 없으니 괜히 큰 장례식장 필요 없다고 집에서 하자고 한 것은 새 언니였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였다.

나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엄마도 몸이 안 좋고부터 1년 전부터 오빠 네가 있는 대구로 내려가 있는 바람에 부고를 알릴 데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무슨 이순신이나 되는 거처럼 평소에 내가 죽더라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유언처럼 말했다.

“번잡스럽게 여기저기 괜히 알릴 것 없다. 누가 오면 다 나중에 너희들 빚이다. 사람 부르지 말고 조용히 치러라.”

입버릇처럼 늘 그랬다.

엄마의 빈소 역시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집에서 하는 것이라,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는 없이 마음 놓고 쉴 수 있어 그건 좋았다.

오빠의 각별한 친구, 옛날 거래처 사람 등이 띄엄띄엄 몇 명이 다녀갔을 뿐, 돈과 관련되어 원수가 돼 버린 대부분의 친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촌 당숙 스님이 왔고, 여대생인 큰조카 친구가 둘 왔고, 그리고 엄마 아는 사람 한 명, 올케 형제들과 친구, 그리고 내 친구 둘이 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하도 이사를 다니고 전학을 다녀 외돌토리로 지내던 것이 몸에 배었다. 방세가 오를 때마다 싼 방으로 싼 방으로 옮겨 갔다.

중, 고등학생 때는 가난한 집안 형편이 알려지는 게 싫어 아이들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에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고 있었다. 사교성 없는 게 그러한 삶 탓인지, 내성적인 성격 탓인지 나도 알 수 없다. 아마 그 둘이 합쳐진 걸 거다. ‘3년만 버티면 헤어질 애들이다. 팔자 좋은 그 애들이랑 어울려 나를 비굴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중학생 때 겪었던 굴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반 애들과 이야기를 하며 걷던 중 갑자기 한 애가 떡볶이 집에 들어가자고 했었다. 그 아이는 안에서 떡볶이며 만두 등 이것저것을 시켰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다 먹고 나자 일어설 때 쯤 계산서를 보여주었다.

“우리 얼마씩 내야 되지?”

그때 내 주머니 속에는 뜯어 쓰고 남은 학생용 회수권 두 장 뿐이었다.

“이거라도 줄까?”

“됐어. 돈도 없으면서 왜 따라와.”

그 애가 사겠다는 건 줄 알고 따라간 거였다. 하지만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더 우스워질 것 같았다.

돈이라는 건 예고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참 당황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껍데기를 채울 수 없는 대신 나는 안으로 채워나갔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돈 들이지 않고 내 친구가 되어줬다.

책은 가난한 나를 자신처럼 도도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은 “쟤는 책밖에 모른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나의 가난을 책 속에 숨길 수 있겠구나’하고 안심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헤진 낡은 부대자루 속의 포도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것이었다. 고시공부 하던 엄청 똑똑하지만 가난한 오빠친구가 미쳐버린 것도 그것 때문이다. 가난하고 너무 똑똑하면 미치기 십상인 것이다. 너무 많은 모순이 보여 울분이 감당할 수 없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사람들 나를 두고 자기 얘기를 잘 안 한다는 둥, 겉으로만 사귀고 마음을 주지 않는 냉정함이 있다는 둥 하며 쓴 소리를 했다. 직장을 옮기고 퇴사를 해도 남모르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가는 날까지 조용히 있다 소리 소문 없이 떠났다. 나를 좋아해서 잘해줬는데 배신감을 느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면 나는 웃었다.

‘멍청한 것들’ 속속들이 알아서 뭘 어쩌자는 건가. 알리고 싶지 않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기꾼이 아니라면,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는 거다. 왜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판단하는지, 난 그들의 그런 멍청한 행동이 종종 짜증스러웠다.

남자관계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너무 오래 사귀었어. 그만 만나야겠어.’하고는 불현 듯 상대를 떠나버렸다. 몸을 섞고 친해지면 슬슬 두려워졌다. 그러고 나면 상대는 내 집안 형편을 헤집어 보려고 했는데, 그 구질구질함을 말하는 것이 싫었다. 차라리 모든 기억을 잃고 과거도 잃고 제로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친구라고 해봐야 몇 명 되지도 않았다. 그나마도 정말 친구라 할 수 있는지 아닌지도 모호했다.

엄마 상을 당했을 때 올케는, “니도 어디 알릴 때 있으면 다 알려라.”하고 재촉했다.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수도 없이 뒤적거렸다.

친구라고 번호는 저장되어 있지만 어느 하나도 어머니 부고를 전해도 될 만큼 그다지 친한 사람 같지 않았다.

새 둥지만한 집안 한 쪽에 영정을 안치한 썰렁한 장례의 그 초라함을 주변의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인다는 것도 싫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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