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향 詩수다 45화] 철 지난 바닷가의 행복

[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여요.”

그렇게 북새통이었는데…

어느 해 여름 거제도에서 외도까지 작은 배를 타고 여행한 적이 있었다. 승객이 많아 종일 쉴 새 없이 배를 운행한다.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고단함을 참으며. 그러나 팔월 중순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가해진다는 선장의 그 말이 왠지 짠하고 서글프게 들려왔었다.

그래서 올해는 휴가기간을 피해서 조금 느즈막이 가기로 했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한 바퀴 돌기로 했는데, 역시 휴가철이 지난 후라 해수욕장마다 한산하고 조용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국적인 풍경들을 멋지게 선물해 주는 동해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철 지난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짭조롬한 바람과 가을을 맞이하듯 푸른 하늘의 풍성한 흰 구름은 설악의 줄기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만큼 사람들의 감성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다. 사람보다 자연을 찾아 떠난 이번 휴가의 며칠은 정말이지 몇 년 만에 꿀맛이었다.

약속 없어도 행복하게 다가오는 가을의 손길처럼.

약속 없는 길 위에서

소리 내어 읽을 약속 하나 없는 날
벼처럼 익어가는 불혹의 감성을 따고
저녁 이슬 그치도록 멈추지 않는
긴 학 울음소리 하나 듣거든
사랑아
하얀 꽃들이 울컥 가을앓이 하는
찻집으로 오렴

햇빛과 바람이 영역을 표시하는
과실밭 비밀한 곳에서
실하게 익은 붉은 살들이

갈참나무 길을 따라 연애를 걸어오고
멀리서 추근대는 저녁 석양마저
사랑하고 싶을 것이리

해묵은 솔밭 사이로
능소화빛 노을을 한 움큼 쥐고 깊어가는
가을의 손길이 순간
풍성한 고독으로
약속을 걸어올 것이리

시인 박소향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의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