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하는 음유시인 조동진, 오랜 투병 끝에 71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명복을 비는 대신 그의 노래를 듣는다.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라라라 라라라라~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가객(歌客). 사전에서는 가객을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또는 노래를 전문적으로 부르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 가객에게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색깔이 분명한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수”라는 의미가 덧붙여진다.

가객에게는 그들만의 팬이 존재한다. 인기의 부침에 따라 옮겨 다니는 철새 팬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르며, 사랑하는 골수팬들이다. 조용필이 그렇고 고(故) 김광석이 그랬다. 그리고 28일 새벽 우리 곁을 떠난 조동진도 가객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객의 노래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노랫말이다. 그들의 노래 가사는 한편의 시(詩)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음유시인(吟遊詩人)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울고 있나요 / 당신은 울고 있나요 / 아 그러나 / 당신은 행복한 사람 / 아직도 남은 별 / 찾을 수 있는 / 그렇게 아름다운 / 두 눈이 있으니 / 외로운 가요 / 당신은 외로운 가요 / 아 그러나 / 당신은 행복한 사람”

1979년 조동진이 발표한 노래 ‘행복한 사람’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는 그가 가요계에 들어와 정식으로 발표한 정규 앨범 1집의 머릿곡이다. 지금도 50, 60대 장노년층이 노래방에서 가장 즐겨 부르는 이 노래는 어느 시인의 표현보다도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일하는 도종환 시인이 2007년 발표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중에서 ‘이 세상에는’이란 시와 ‘행복한 사람’을 비교해 보면 조동진이 왜 가객이며 음유시인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 외로움이 있습니다 / 이 세상에는 아무와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 아픔이 있습니다 / 마음 하나 버리지 못해 이 세상에는 /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 당신은 그 외로움을 알고 있습니다 / 당신은 그 아픔 그 그리움을 알고 있습니다 / 다만 먼 곳에 계신 당신을 생각하며 /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기다림으로 / 살아가는 세월이 있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조동진의 또 다른 히트곡 ‘작은 배’를 보자. 1972년 양희은의 목소리를 통해 발표된 이 곡은 원래 고은 시인의 동명의 시에 그가 후렴구를 붙여 작곡한 노래이다.

“배가 있었네 작은 배가 있었네 /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 배가 있었네  작은 배가 있었네 /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 라라라 라라라라 / 라라라 라라라라 / 라라라라라 / 작은 배로는 / 떠날 수 없네 멀리 떠날 수 없네 /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이 노랫말에 대해 시인인 대구일보 권순진 객원논설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조동진이 친구의 부모님이 경영하던 서울 정릉 ‘청수장’에서 그곳에 자주 놀러왔던 고은 시인으로부터 건네받은 것이 바로 이 ‘작은 배’ 노랫말이다. 그는 얼마 후 이 짤막한 시에다가 아주 단순한 멜로디를 붙였다. 그러니까 엄밀하게는 ‘고은’ 작시라고 해야 온당할 것이나, 그게 시로 발표된 것이 아니고 반복구가 있어 일단 조동진 작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고은 시인의 ‘작은 배’와 조동진의 ‘작은 배’의 차이는 1절과 2절 사이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라라라 라라라라~”의 반복구를 조동진이 삽입했을 뿐이다. 시인의 시낭송과 가수의 노래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응교 시인은 그의 저서 ‘사회적 상상력과 한국시’(소명출판)에서 “시적 연출은 ‘상징’과 ‘이야기’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본래 시였던 노래 가사의 표현술도 ‘상징’과 ‘이야기’로 이루어진다.”라며 그 예로 “시인 고은의 작사 ‘작은 배’(조동진 노래)를 들 수 있다”라고 했다. ‘상징’의 시를 ‘이야기’로서의 대중가요로 바꾸기 위해 후렴구를 사용한 조동진의 가요작가정신을 말한 것이다. 조동진을 ‘음유시인’으로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좋은 시를 쓰는 순간 그 사람이 시인이다. 그런 관점에서 노래가사를 시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그런 형태의 상이 있다면 수상자로 마음속에는 조동진을 품고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가객 조동진이 오랜 투병 끝에 71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권순진 시인은 그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조동진은 시인이다. 천상 음유 시인이다. 그 음유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노래와 시가 지상에 남아있는 한 ‘아주 멀리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명복을 비는 대신 그의 노래를 듣는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많은 문인들이 아쉬움을 보인 때가 있을까. 이제 한번쯤 되돌아보자. 유명 연예인이라고 으스대지 말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노랫말(작사)이 기억되고, 불릴 수 있는 노래가 지금 대중가요계에 얼마나 있는가를. 음악시장이 변화하고 대중의 취향이 바뀐다고 해도, 먼 훗날을 기약하는, 예능인이 아닌 가수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객의 출현을 기대한다.

윤상길 컬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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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윤상길은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