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4千字 소설 제7화] 혼자 사는 여자

내 몸 하나 잘 건사하면 행복이지 뭐 정병국 작가l승인2017.08.08l수정2017.08.0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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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나와. 지난달 이혼한 시아도 온다고 했어.

올 여름 휴가는 두문불출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지방 출장이라는 거짓말로 일주일 여름휴가를 감춘 채 아파트에 처박혀 하루 한 끼 아니면 굶으며 지낸 마지막 날이었다.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수연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아직 지방이야, 라고 거짓말하려다가 경제 문제로 이혼한 시아도 온다는 문자 덫에 걸려 서둘러 샤워했다.

약속 시각까지는 두 시간 넘게 남았다. 며칠째 질척거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다가 신발장 위의 한 번도 신지 않은 노란색 장화를 내려놓았다. 오늘은 꼭 신고 나가리라 생각하지만, 또 맨발의 샌들로 빗속을 걸어갈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빗물의 감촉이 좋았다. 세찬 빗줄기에 발등까지 치고 올라오는 빗물은 맑은 내(川)를 찰방거리며 걷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빠지게 했다.

약속 시각까지는 여유가 있어 커피를 내리다가 이토 후미코를 떠올렸다. 그녀도 비 오는 날은 나처럼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샌들을 신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지난해 여름휴가는 오사카의 이토 후미코 아파트에서 보냈다. 우연히 명동거리에서 눈길이 마주쳐 살짝 웃어준, 그리고 몇 마디 나눈 인연이 전부인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깔깔거리며 4박 5일을 함께 보냈다. 그녀의 서툰 한국말과 나의 엉터리 일본어가 오히려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동기가 됐다.

후미코는 식당과 편의점 두 곳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서른한 살의 독신녀였다. 방 3개 중 제일 큰방을 미술작업실로 사용하는 그녀의 아파트는 황당할 만큼 가재도구가 없었다. 거실은 방석 하나 없는 빈 공간이었으며, 주방의 식탁은 작은 그릇 몇 개 겨우 놓을 수 있는 원형으로 앙증맞은 화분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다.

후미코의 아파트를 찾은 첫날, 비가 왔다. 지나가는 비려니 했는데 점차 굵어지더니 천둥 번개를 동반했다. 남의 나라 낯선 아파트에서 맞은 비는 두려움으로 밀려왔다. 아파트가 벼락 맞아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마음 졸이고 있을 때 후미코가 거실로 잡아끌었다.

“어때? 이거 입고 나가자.”

바짓가랑이가 너덜너덜 찢어진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 두 벌이 거실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후미코가 눈짓으로 가리킨 현관에는 샌들 두 켤레가 놓여 있었다.

“아!”

세상에! 이럴 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감탄하다가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캐리어에서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 두 벌을 꺼내왔다. 두 켤레의 하얀색 샌들도 청바지 바짓가랑이 끝에 나란히 놓았다. 며칠이지만, 오사카에 머무는 동안 혹 비가 오면 후미코와 똑같이 입고 산책할 요량으로 준비한 선물 중의 하나였다.

“오! 맙소사!”

후미코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격하다가 와락 안겨 왔다.

“우린 천생연분이다. 사랑해!”

그녀의 호들갑에 맞장구치며 등을 토닥이다가 밀어냈다. 내가 준비해 온, 그리고 네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자는 손짓과 눈짓을 보내기 무섭게 후미코는 알몸이 됐다. 조금은 살이 오른 그녀 몸매는 여자의 눈에도 짜릿한 유혹에 빠질 만큼 육감적이었다.

“그만 봐. 빨리 나가자.”

후미코의 재촉에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샌들을 신으며 우산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녀가 투명한 우의를 입혀주었다.

“태풍이야. 널 지구 밖으로 날려 버릴지 몰라.”

후미코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였지만, 세찬 바람은 불지 않았다. 빗줄기가 굵어졌다가 이내 가늘어지고, 멈추는가 싶으면 다시 와르르 퍼붓는 변덕 심한 비였다. 우의를 때리는 빗소리가 빗줄기의 변덕에 따라 우리의 수다와 웃음소리도 달라졌다. 연인처럼 팔짱을 끼고 빗물이 질퍽거리는 곳만 골라 디디며 걷다가 우의 모자를 벗었다. 혀를 내밀어 빗방울을 받았다.

“후미코! 빗방울이 맛있어. 달아!”

후미코는 우의 모자를 벗지 않았다. 오히려 모자를 챙겨 쓰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단지를 빠져나와 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빗줄기를 뚫고 줄기차게 치솟는 분수대 주변의 벤치도 비어 있었다. 숲이 잘 우거진 공원의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분수대의 벤치에 앉았다.

“청승맞지?”

후미코가 물었다.“뭐가?”

내가 되묻자 후미코는 코를 찡긋하며 대답했다.

“비오는 날의 분수.”

“그게 왜?”

“분수는 해가 쨍쨍해야 무지개도 품는데, 쟤는…….”

후미코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처럼 빗속의 분수는 청승맞았다. 또 앞뒤 상황도 모르고 허우적거리는 것만 같아 그만 쉬게 해주고 싶었다.

“쟤는 꼭…….”

후미코가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쟤가 후미코, 너 같다고? 그 말 하고 싶은 거지?”

“맞아.”

“왜?”

“바보니까.”

네가 바보라고? 혼자 한국을 휘젓고 돌아다닌 네가? 그림은 어떻고? 가을에 합동전시회도 갖는다며? 이렇게 자기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여자가 바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핀잔주자 그녀는 내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바보 맞아. 사랑하는 남자가 결혼하자는데 거절하고 혼자 살잖아. 지레 겁먹고 혼자 아르바이트로 사는 여자, 그거 청승맞은 모습이잖아.”

후미코는 누구의 아내로 산다는 게 두렵다고 했다. 아이를 낳아 멋진 사람으로 길러낼 자신도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돈 버는 재주가 없어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조차 뒷바라지할 능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했다.

“난 있지. 평생 혼자 살 거야.”

잠시 멈췄던 비가 다시 추적추적 내렸다. 벗고 있던 우의 모자를 썼다. 모자를 때리는 빗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일어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공원 쪽으로 걸어오다가 본 주점이 생각나 후미코의 팔을 잡아당겼다.

“후미코! 나도 오래전에 혼자 살기로 했어.”

주점의 창가 자리에 앉으며 불쑥 말하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웃지 마. 정말이니까.”

“알았어. 그 말 믿을게.”

우리는 혼자 살 수밖에 없는 동병상련의 친구가 되어 술잔을 비웠다. 아침에 눈 떴을 때 두 여자는 한 이불 속의 알몸이었다. 후미코가 그만 마시자며 일으켜 세운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그 후의 시간은 캄캄했다.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다만 숙취처럼 머리와 가슴을 아프게 하는 소리가 아득한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혼자 산다는 거, 그거 절망 맞지?

후미코도 울고, 나도 찔찔 눈물 짰던 첫째 날과는 달리 둘째 날부터는 깔깔거리며 돌아다녔다. 후미코가 편의점과 식당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면 밤늦도록 오사카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가슴에 남은 것은 ‘혼자 산다는 거, 그거 절망 맞지?’라는 말뿐이었다.

이토 후미코의 카톡에 안부를 묻는 문자 끝에 ‘혼자 산다는 거, 그거 절망 아니지?’ 덧붙이고 샌들에 우의를 입고 우산 없이 아파트를 나섰다. 후미코의 한글과 한국어 실력이 일 년 전보다 훌쩍 늘어 문자를 주고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

아니. 절망 맞아.

후미코의 답신에 재빨리 반박했다.

혼자 사는 게 얼마나 자유스러운데.

후미코도 재빨리 반박 문자를 보내왔다.

그게 자유라고? 무능력해서 포기한 거잖아.

무능력해서 포기한 거라는 그녀의 직격탄에 대응할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부부로, 엄마로,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살 자신이 없어 포기한 결혼. 그것은 넘을 수 없는 절벽이었다.

내 몸 하나 잘 건사하면 행복이지 뭐. 안 그래? 후미코!

후미코의 답은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 대답은 듣지 못할 것이다. 후미코는 내가 억지 부린다 싶으면 답을 주지 않았다. 며칠 지난 후 뜬금없이 밥 잘 먹고, 술 잘 마시고, 건강 하자는 안부를 챙기곤 했다.

작은고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아와 수연이가 손을 흔들었다. 두 여자는 이미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들 곁으로 걸어갈 때 카카오톡 문자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연이어 터졌다.

후미코였다. 그녀는 어린이 놀이터의 시소에 앉아 뛰어노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셀카 사진도 몇 장 전송했다.

애들 참 예쁘다. 유괴할까봐.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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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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