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호상이라 웃어도 된다더니.

‘빈말로 설운 양 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하던 정인보의 '어머니'란 시가가 머리를 스쳤다.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처음 그 시를 접하고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났다.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맨 앞에 앉은 나더러 정인보의 어머니를 읽어보라고 시켰다.'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라는 구절을 읽는데 울컥 하며 그만 목이 막혔다. 참으려할 수록 더 슬퍼졌다. 결국 다 못 읽고 멈춰버렸다. 반 친구들이 눈이 휘둥그레져 쳐다봤다. 선생님은 그냥 앉으라고 했다. 식은 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말아 드시던 엄마가 떠올랐다.

결혼해서 분가해 뒷집에 세 들어 살던 오빠는 퇴근하면 집을 들러 엄마를 보고 들어갔다. 귀가가 늦으면 엄마가 차려 준 저녁을 먹고 가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 택시 사고를 내고 면허 정지로 쉬면서 올케랑 관계가 안 좋았다. 오빠가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여자문제까지 생기자 집에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올케의 이혼 얘기가 나왔고, 술에 취해온 오빠는 바로 뒤에 있는 자기 집을 두고 단칸방 우리 집에서 자고 가곤 했다. 그런 오빠를 위해 엄마는 늘 아랫목에 밥 한 그릇을 묻어놓았다. 술이 떡이 된 오빠는 오바이트를 하고 밤을 새며 바느질을 하는 엄마 옆에서 골아 떨어졌다. 그 아들이 오지 않는 늦은 밤이면 수도 없이 시계를 봤고, 밥이 식었을까 싶어 수도 없이 이불 속에 손을 넣어 밥그릇을 만져보았다.

"밥 그릇 발로 차지 않게 조심해서 잘 자라"

오빠를 기다리던 엄마는 내 이부자리를 펴주면서 주의를 주었다. 혹시라도 그 밥을 엎었다가는 엄마한테 무슨 사단이 날지 몰랐다. 나는 불룩 나온 부분을 피해 조심스레 다리를 웅크리고 자야했다.

그런 다음날 그 밥은 어김없이 '식은 밥'이 됐다. 그런 밥이 날마다 밀려버리면 몇 일새에 노란 바탕의 빨간 장미꽃무늬가 찍힌 양은 밥통에 하나 가득 됐다. 그런데도 엄마는 아침이면 새 밥을 해서 내 도시락을 쌌고, 남은 밥으로 상을 차려주며 어서 먹고 학교에 가라고 내쫓았다. 방문을 나설 때쯤 엄마는 부엌에서 차가운 밥통을 들고 들어서며 "밥맛도 없는데 물 말아서 식은 밥이나 한 술 떠야겠다."하고 중얼거리고는, 대접에 뜨거운 맹물을 부어 양은 밥통에서 꾸덕꾸덕 굳은 찬밥을 푹 떠서 물에 넣고는 수저로 꾹꾹 말았다.

그 시를 읽기 전, 찬밥은 당연히 엄마가 몫이고, 밥맛이 없어 뜨거운 물에 말아먹는 줄 알았다.

어느 때는 그 밥이 쉬었다. 엄마는 양은 밥통에서 쉰내 나는 그 밥을 대소쿠리에 쏟아 넣고 수도꼭지에 대고 빨았다. 내가 버리라고 해도 "빨아서 끓여 먹으면 된다."하고 고집했다. 나는 그 찝찝한 것을 내게 주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아!"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엄마가 그 밥을 먹는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그런 엄마가 좋을 리 없었지만 빼앗지 못했다. 속으로 그저 탈이나 안 나길 빌 뿐이었다. 그 쌀은 엄마의 바느질로 밤샘 일로 산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고단함 때문에 엄마는 늘 두통약과 신경통약을 달고 살았다. 날마다 삭신이 쑤신다고 했다. 엄마는 오빠가 외박을 하면 매우 불안해했다.

"밥은 열군데서 먹더라도 잠은 한 군데서 자라고 했다. 정 집에 들어가기 싫으면 나가서 자지 말고 여기 와서 자라. 처자식 집에 두고 엄한데서 자다가 뭔 난리라도 터지면 어쩔라고 그러냐?"

아직도 전쟁 때를 잊지 못했다. 그 한 군데 잠자리 중 반이 우리 집이었고, 열군데 밥 중 중 하나도 우리 집이었다. 그래서 올케는 엄마가 아들을 끼고 산다며, 둘이 연애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무이가 맨날 끼고도니 저 모양 아닌교. 그마, 모자가 둘이 살지 뭐한다고 결혼은 해서 엄한사람 고생시키나 몰라, 내는 이혼만 해 주면 지금이라도 아아들 데꼬 갈 거구마. 애비들리면 그래 전하소."

"알았다, 저녁엔 오면 알아듣게 말해서 바로 보내마."

그런 날은 엄마가 오빠한테 밥도 안 차려주고 등 떠밀어 제 집에 들여보냈다. 그리고는 오빠의 밥을 부엌으로 내갔다.

나는 오빠의 마른 곡소리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왜 눈물도 설움도 없이 애써 우는 걸까? 엄마가 자신 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끼니를 식은 밥과 쉰밥으로 때웠는지 그는 꿈엔들 알릴 없다.

문상객들은 오빠의 곡소리와 낯선 광경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세상에 굴건제복을 착복하고 발목에 행전까진 맨 우중중한 전통 상복을 차림의 상주가 어디 있나. 게다가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로 각목 같은 작지를 짚고 곡까지 하고 있으니 생경스럽다 못해 황당했을 것이다. 더더구나 빈소가 장례식장이 아닌 아파트 거실이라니. 말하자면 엄마의 시신이 들은 관이 그 작은 거실의 병풍 뒤쪽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여름이니 이틀만 지나도 그 안에서 부패될 터였다. 나는 그게 제일 걱정스러웠다.

오빠의 집은 황금동의 17평짜리 주공 임대 아파트 1001호였다. 나는 오빠 집주소를 볼 때마다 황금동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고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실에 병풍을 둘러 쳐놓고 영좌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일본의 우동가게에 걸려있을 것 같은 모양의, 장의’라고 쓰인 등을 아파트 현관문 밖에 걸어놓고, 난생 처음 해보는 장례를 그 흔한 상조회사에도 맡기지 않고 달랑 장의사만 불러 시신만 수습하고는 오빠랑 새언니 둘이서 해나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엄마가 병원에서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올 문상객이 없기 때문이었으며 가장 큰 마지막 이유는 장례비용을 한 푼이라도 덜 들이기 위해서였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