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4千字 소설 제2화] 수연이의 둘시네아

연극무대가 있는 커피전문점 저랑 해요 정병국 작가l승인2017.06.13l수정2017.06.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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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그녀가 찾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녀, 오수미는 수연의 친언니로 장례식장에서 잠깐 얼굴을 본 게 전부였다. 그것도 함께 문상을 간 친구들 틈에서 힐끔 보았을 뿐이다. 1년 전 여름, 수연의 장례 발인 전날이었다.

“미안해요. 불쑥 찾아와서.”

착한 사람들은 2인용 탁자가 3개뿐인 작은 커피점이라 그녀가 앉을 공간이 없었다. 손님 대부분이 티켓 아웃이라 자리의 불편을 못 느꼈었다. 그러나 그녀와 서서 이야기를 나눌 틈조차 없자 착한 사람들은 환상의 커피 향을 즐기는 곳이 아닌 앞을 가로막은 절벽 같았다.

“곧 교대죠?”

“예! 반시간 남았습니다.”

그녀는 커피점 앞 공원에서 기다리겠다며 나갔다. 또박또박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왜 찾아왔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짚이는 게 없었다. 그녀가 곧 교대죠 했을 때 무심코 반시간 남았다고 대답했지만, 의문의 꼬리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알바 바리스타로 일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수연이가 교통사고로 잘못된 후 한동안 방황했다. 무작정 돌아다니는 여행으로 깊은 상처를 추스르다가 최근에 일을 시작한 것이 알바 바리스타였다.

오후 5시 전후는 손님이 뜸할 시간대인데 오늘은 아니었다. 계속 줄이 이어졌지만, 그 틈에서 카페라떼 두 잔을 챙겨 공원으로 갔다. 벤치에 앉은 그녀에게 말없이 건넸다.

“수연이가 좋아하는 커피네요?”

그녀의 물음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벤치 끝쪽에 앉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뛰어가고, 산책 나온 할머니가 반려견에 끌려갔다.

“저 할머니 넘어지면 어떡하죠?”

그녀의 말에 할머니를 지켜보았다. 반려견의 목줄이 길게 늘어났다가 줄어들곤 했다. 힘에 부친 할머니이지만, 용케 넘어지지 않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괜찮을 겁니다.”

밑도 끝도 없이 괜찮을 거라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하늘 한 조각 볼 수 없었다. 어느 나무에선가 매미가 울다가 이내 그쳤다.

“수연이와 약속한 게 있어요.”

“……?”

“동생이랑 함께하기로 그일 말이에요.”

벤치에서 일어나며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는 척했다. 그녀가 말하는, 수연이랑 함께하기로 한 그것은 이제 소용없는 일이었다. 산산이 조각난 꿈이었다. 그 꿈을 새삼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교통사고가 난 그날, 수연의 바리스타 시험에 합격한 기쁨도 그 꿈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졌다.

오빠!

나 합격했어. 내일 회사 그만둘 거야.

계속 통화 중이라며 보내온 문자가 수연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캡처한 그 문자를 수연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읽으며 말하곤 했다.

수연아! 미안해. 그 꿈 포기해서.

내가 일어서자 그녀도 일어났다. 할 말이 많은 눈치였으나 애써 참는 표정이었다. 공원을 나오자마자 헤어졌다.

“전 약속이 있어서…….”

거짓말이었다.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는 내게 그녀의 잔잔한 웃음이 다가왔다. 그 웃음이 수연이와 너무 똑같아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돌아섰다.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또 찾아올 것 같다는 예감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예감대로 그녀는 며칠 동안 오후 5시 10분 전에 찾아왔다. 그때마다 거짓 핑계로 빠져나갔다. 그녀가 왜 매일 찾아오는지 모르지만, 무엇인가 모르게 부담스러운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친자매, 동생의 남자였던 사람을 찾아오는 그녀의 발걸음에 쐐기를 박으려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자주 오는 집입니다.”

또 거짓말했다. 술을 좋아하지만, 혼자 마시지 않았다.

“오늘은 또 무슨 거짓말하려나, 궁금했어요. 그런데 겨우 혼술 핑계라……너무 궁색해요.”

“예……?”

“날 피하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인제 그만 둬요.”

출입문 밖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당장에라도 비를 퍼 붓을 것 같은 시커먼 구름이 엉켜 있었다. 바람도 불었다. 거친 바람은 아니었지만, 행인들이 하나같이 찡그린 표정으로 지나갔다.

수연이는 굵은 빗줄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비가 쏟아지면 달려나가 온몸으로 맞곤 했다. 다행히 얇은 옷 속의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흠뻑 맞지 않고 되돌아오곤 했지만, 쿡쿡 웃으며 지켜보기에는 민망한 행동이었다.

“수연아! 언제까지 아이처럼 그럴 거야?”

“늙어서 죽을 때까지.”

“정말?”

“응!”

“그래? 그럼 포기다.”

“날 포기한다고? 오빠가?”

온몸에서 부서지는 빗방울의 감촉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 없다는 수연은 “글쎄? 차라리 1분 후에 새 우주가 창조된다고 말해. 그건 믿을게.” 라며 생글생글 웃었다.

“술 안 마셔요?”

그녀가 손등을 살짝 건드리며 말하지 않았다면 계속 수연이와의 추억 속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민망함에 술병부터 집어 들려고 했지만, 이미 그녀가 들고 있었다. 말없이 잔을 내밀었다.

“참 못됐죠?”

매일 찾아와 많이 부담스러웠을 거라고 덧붙인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부담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지금도 그렇다고 말하자 이번에는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랬을 거예요.”

처음으로 그녀의 눈을 바라다보았다. 영락없는 수연의 눈이었다. 언니랑은 눈 코 입 모두가 쌍둥이 같아. 키 말고는. 내가 반 뼘쯤 커. 언니는 그게 늘 다행이라고 했어. 동생에게 예쁜 옷을 안 뺏겨서 좋다나. 문득 떠오른 수연이의 말을 그녀에게 들려주자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 입, 그렇게 막고 싶어요?”

“예.”

솔직하게 대답했다. 입을 막는 게 아니라 앞으로 절대 찾아오지 마라, 못 박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까지 말할 수 없어 술잔을 비운 후 넘치게 따랐다.

“저는 어제를 생각하지 않아요. 오로지 내일만 생각합니다.”

이미 수연이를 잊었으니 나를 위로하려 찾아오지 말라는 의미였다. 또 일 년 전에 죽은 연인 때문에 괴로워할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술만 마셨다. 그녀도 이쪽의 기분을 이해했는지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하지만…….”

세 병째의 술이 바닥났을 때 그녀가 뚫어지게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하지만, 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동생과의 약속을 지켜야 해요.”

“수연은 죽었어요. 그래도 지켜야 할 약속인가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비어 있는 두 개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자매간의 약속에 절 끌어들이지 말아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칼로 자르듯 말했다.

“지금 내가 바이스타로 일하는 것은 수연이 때문이 아닙니다. 의연한 나를 찾는 과정입니다.”

“글쎄요? 정말 그럴까요?”

그녀는 갑자기 쾌활한 표정으로 바꿨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화제를 바꿔가며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다음 날 일어났을 때 그녀와 나눴던 이야기들이 토막이 났다. 온전하게 기억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던 기억에 휴대폰을 열었다. 그녀로부터 문자와 사진이 와 있었다.

둘시네아.
수연이가 지은, 작은 연극무대가 있는 커피전문점 이름이에요.
사진은 둘시네아의 모습이고요.

상민 씨를 찾아냈을 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만약 커피 바리스타가 아닌 다른 일을 했다면 크게 실망했을 겁니다.
두 사람의 꿈이었던 연극무대가 있는 커피전문점, 저랑 해요.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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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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