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저기 오른 쪽 맨 끝 쪽 막다른 방이요.”

“거긴 108호실이에요.”

“아니 그 옆”

“거긴 창고고........”

“분명히 109호실이었는데, 망자가 김광남”

“김, 광, 남이라.... 그런 사람은 우리 장례식장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명단에 없어요.”

“뭐라고요! 분명 좀 전에 거기 있었어요.”

어찌어찌 헤매다가 다시 방을 찾는다. 109호라는 명패가 뚜렷이 붙어있다. 안에는 영정만 하나 달랑 있고 아무도 없다. 상제는 나 하나다.

“잘 갔다.”

올케 때문에 상상이 깨졌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고생 하고 사느니 잘 죽었다는 건지, 좋게 죽었다는 건지.

“편하게 갔다 카드라.”

“...........”

“요양원에서 위급하다고 전화가 와서 내려왔더니 벌써 갔더라.”

“요양원?”

“거(거기) 들어 간지 한 몇 달 됐는 갑더라. 교회 목사가 하는 요양원인데, 거기 목사가 느그 오빠같이 갈 데 없는 부랑자들을 데려다가 돌보는가 보더라. 어예 그리 착하노, 천당 가겠다 그제(그치) 오빠가. 대소변도 못 가리고 옷에 싼 채로 길바닥에 누어있는 걸 그 목사님이 즈그 요양원에 데려간 거다. 병도 치료 해주고 그랬는 갑데. 대구 수성공원에서 발견했단다. 누가 영등포에서 봤다카더니 잘못 봤던 갑다. 대구에 있었으면 누가 봐도 봤을 텐데 우예 안 띄었는가 몰라”

“영등포에 있다 다시 내려가셨는지도 모르지. 사람이 갈 때가 되면 옛날에 살았던 곳으로 온데잖아. 여기서 아빠가 젊어서부터 오래 살았으니까, 고향이나 마찬가지잖아.”

조카가 끼어들었다.

“지랄한다. 미구 같이 니는 아는 것도 많다”

올캐가 씩 웃고는 다시 오빠 얘기를 했다.

“가족들한테 안 알리고 싶어 해서 연락 못 했다카더라. 지도 양심은 있는지, 미안한 건 아는 갑제. 거기 오는 사람들 다 지가 싫다카면 캐묻지 않는 단다. 올 때부터 많이 안 좋았단다. 그런데 엇 저녁에 숨이 답답하다 카더니 밤에 갑자기 숨을 못 쉬고 고통스럽어 하더란다. 그래갖고 급히 119불렀는데 병원으로 옮기다가 죽었다카데. 목사님이 손으로 눈을 감기고 기도도 해줬는갑데. 소지품에서 쪽지 보고 전화했다더라. 쪽지에 ‘큰딸’이라고, 경이 폰 번호를 적어놨던 갑더라. 편안한 얼굴로 갔단다. 죽기 전에 교회도 믿었다카이 천당까진 몰라도 좋은 데 갔을 끼다. 마음 쓰지 마라. 이제 나도 밉은 마음 없다. 지도 살아보려고 했는데 안 풀리니 그리된 거고.”

오빠의 마지막을 들으니 새삼 마음이 착잡했다.

“내 당신한테 맺힌 거 다 풀었다. 당신도 내한테 맺힌 거 있거들랑 다 풀고 저승에 가서 아들(애들)이나 잘 보살펴주소, 그랬다. 느그 엄마 팔자도 그렇고, 지팔자도 내팔자도 그렇고, 느그 오빠 말마따나 악연이었던 갑다. 그래도 그만하면 잘 갔다. 마지막에라도 좋은 목사 만나서 치료도 받고, 보살핌 받다가, 하느님도 믿고 복 있게 안 갔나. 길에서 죽은 건 아이니까 가슴 아파 할 거 없다. 목사를 봤는데, 참말로 얼마나 인상이 좋은지 모르겠더라. 여기도 왔다갔다. 와서 또 기도도 해주고, 그카지마라 캐도 부득부득 부조까지 하고 가더라.” 올케의 긴 설명이 끝나고, 비로소 눈물이 났다.

아들과 엄마의 장례식이 똑 닮았다. 두 사람은 전생에 부부가 아니었을까. 오빠가 죽은 것은 둘을 잇고 있었던 질겼던 끈이 떨어져서다. 엄마가 오빠를 못 잊어 데려갔는지도 모른다. 엄마 때 오빠는 “아이고” 하며 곡을 했었다. 오빠의 길은 그저 고요하고 적막하다.

“고모, 안 졸려?”

큰 조카가 불쑥 뱉어낸 말이 황당했다. 멀뚱히 큰 애 얼굴을 쳤다보았다. 환하게 웃는다.

“한 숨자. 우리도 자다가 일어났어. 앉아 있어봤자 할 일도 없어. 끝 방이라 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편하게 누워서 자도 돼.”

“됐어. 대낮에 뭘 자.”

“괜찮다 눕어라. 새벽부터 기차타고 오느라 피곤할 거 아이가. 원래 이런 땐 한쪽에서 잤다 깼다 한다. 우예 24시간 내내 앉아서 지키고 있노.”

“그래 고모, 누가 오는 소리 나면 얼른 일어나면 돼, 잠들면 내가 깨워줄게 걱정 마.”

막내 조카가 예의 그 싹싹한 목소리로 생글거리며 거들었다.

“아이고, 되다. 난 눕을란다. 어젯밤에 동생차타고 내려와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느라 한 숨도 못 잤다.”

“음식은 누가 다 장만했어?”

“상조회사 안 불렀나. 이런 거 대주는데 다 있다. 음식 값이 얼마나 비싼지, 이까짓 음식, 떡이랑 전, 국, 다해봤자 이깟 것 몇 푼이나 되노, 돈 아깝어 죽겠다. 아줌마도 쓰라켔는데 올 사람도 얼마 없으니까 안 쓴다 켔다. 할 일도 없는데 뭐한다고 맨시로(괜하게) 멀뚱멀뚱 세워놓고 돈 주노. 미쳤다 아이가. 우리가 하면 되지. 말만한 딸이 셋씩이나 되는데. 안 그렇나.”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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