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십대 시절 유난히 꽃과 들풀을 좋아하는 언니가 있었다. 눈이 작아 웃기라도 하면 그나마 작은 눈이 보이질 않아  실눈이라고 놀리곤 했다.

“지금쯤은 쌍꺼풀 수술을 해서 커졌을지도 몰라.”

천방지축 야산을 돌아다니며 강아지풀과 갈대도 꺾고, 모르는 들풀과 꽃에는 이름도 붙여주곤 했지. 

만화 속 주인공처럼 맑고 신비로웠던 그 언니의 이름은 '성숙'이었다. 성은 생각이 안 나고. 어찌 오랜 세월 잊지 않고 이름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다시 봄이 왔다. 성숙 언니 좋아하던 꽃들이 곧 만발할거야. 들꽃처럼 작다고 예뻐해 주던 나는 덕분에 시인이 되었지. 

“어른이 되어서도 한 동네 같이 살자”며 막연한 희망으로 약속했는데… 문득 지금 뒤돌아보니 모두 사라져버렸어. 어느 순간인지 바람과 함께 말이야.

언젠가는 모두 떠나겠지. 계절이 바뀌는 동안 사람들의 옷자락도 잊어지겠지만, 그래도 언니는 가끔 생각이 날거야. 

빈 나무껍질에도 봄은 다시 찾아오고, 우리가 헤맨 산과 들에 피어나는 꽃망울이 여전한 것처럼 말이야.

봄은 여전히 나를 찾아와 

봄은 여전히 나를 찾아와 
낯익은 기억으로 부풀어 오르다가 
솜털에 날린 바람 한 자락 
옆자리에 툭 떨궈놓고 간다 

나부(裸婦)의 살결처럼 물오른 산야에 
가지의 입김 푸르게 살아나면 
태초의 첫날처럼 
얄미운 꽃잎 환히 피어나겠다 

봄은 그렇게 나를 찾아와 
괜시리 없는 눈물 만들어 주고 
이름 모를 풀꽃 하나 
허전히 눈물샘에 깃들이게 한다 

그 봄날 나도 
사랑 꽃씨 한 알 네 가슴에 묻어 
나 없는 한 동안도 
여전히 봄이오면 피어나게 해야겠다

박소향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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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소향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의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