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잠깐의 궁금증을 뒤로 하고는 이내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들었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을 했는데 가슴만 무거울 뿐 이상하게 슬프지는 않았다. 그냥 어느 상갓집에 가듯 덤덤했다.

“어디까지 가세요?”

고개를 돌렸다. 그가 깨어있었다.

“동대구요”

“아!, 고향집 가시는 거예요?”

“아뇨.”“그런, 무슨 일로? 아, 실롄가요?”

“아뇨. 장례하러 가요.”

나는 별거 아닌 듯 빠르게 대답했다.

“아!, 누구 아는 분이 돌아가셨나 봐요.”

이 남자는 왜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을까?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가 실례한 거면 죄송해요. 아직 한 시간이나 더 가야 되는데, 옆에 나란히 앉아서 말도 안하고 있으면 좀 거북하기도 하고 심심하잖아요. 저 나쁜 사람 아니거든요. 이런저런 얘기나 하면서 가면 덜 심심하니까. 여쭤본 거예요.”

그는 서울말을 하고 있었지만 명백한 경상도 억양이었다. 고향이 상주라고 했다.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아!”

그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를 못했다. 얼음땡 놀이의 술래 짓이라도 하는 거 같았다. 그러다 한 5분쯤 흘렀을까?

“근데요, 이런 말씀 드리긴 죄송한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 간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럴 땐 상을 당했다고, 상을 당해서 간다고 해야 되지, 자기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 간다 하면 안 돼요. 그런 말은 다른 사람이 당한 상에 조문하러 갈 때 쓰는 말이에요.”

“근데 그쪽은 어디 가세요?”“네, 아버지 제사 가요.”

“아, 그쪽 아버지 저승에서 오시다가 우리 어머니랑 어쩌면 저승길에서 서로 마주치셨을 수도 있겠네요.”

“저기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농담하면 안돼요, 그건 불효에요.”

나는 불효라는 말에 무안해져 입을 다물었다.

그랬는데 이번엔 또 오빠의 죽음이다.

“제사 가시나 봐요?” “와!, 어떻게 알았어요?”

“그때 아버님 제사 가신다고 했잖아요. 저희 엄마 상당했을 때. 어제가 엄마 제삿날이에요.”

“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 열차시각을 확인해 보았다. 같은 열차였다. 뭔가 삼류 막장드라마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미리 예매했는데 집에서 프린터가 안 돼서 개표소에서 표를 받아왔다고 했다.

10분 후에 6시 40분발 KTX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와 내가 탈 열차였다. 나는 그의 표를 뺏어들고 매표소로 뛰어가 두 장을 내밀고는 옆에 같이 앉을 자리로 열차표를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나란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근데 오늘은 어쩐 일로 가세요?

“오빠가 어제 죽었데요. 아참, 오빠 상을 당했어요.”

“아이고!”

그가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어서 들어가요.”

“어떻게 저를 볼 때마다 상을 당하세요.”

“그러게......”

우리는 개찰구를 지나 마구 뛰었다. 뛰다보니 웃음이 나왔다. 로또가 당첨될까? 되었으면. 제발 오빠 도와주세요. 1등 되면 조카들 모른 채 안 할게. 세 번호를 똑같이 할 걸 그랬나. 뛰면서, 죽은 오빠보다는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뭣 때문인지 희죽 희죽 자꾸 웃겼다.

이번에도 그가 창가자리였지만 나에게 양보했다. 그는 앉은 채로 재킷을 벗어선 탁자를 젖히고 그때처럼 반 접어선 올려놓았다. 남방이 꽤나 낡아보였다. 확실히 지난번보다 행색이 후줄근했다. 신변에 혹은 삶에 불운이 있지 않고는 그럴 리가 없었다. 직장인이라면 한 해 한해 지남에 따라 직장에서 지위가 올라가면서 차림세가 더 고급스러워지고 세련되어 지는 거였다. 증권을 하다 쫄딱 망했거나, 자식 사교육비로 쩔쩔매느라 쪼들리거나보다 아님... 그런데 오빠는 언니보다 더 오래 살 것처럼 말하다니 왜 그렇게 빨리 죽었나.

그가 옷을 뒤적거렸다.

“옷 주세요. 여기 옷걸이 있는데 걸게요.”

“아니 됐어요. 이게 편해요. 근데 뭐 이런 게 다 있어요? 나는 매번 제사 때, 그쪽은 매번 상을 당해서 만나니까, 드라마작가 만날 욕했는데 진짜 이런 우연이 있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안 그래요?”

“매번은 아니고 두 번짼데.”

“어쨌거나, 두 번이라도 신기하잖아요.”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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