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꼭 가야 하니?”

소영은 세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가면 안 돼?”

소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밤늦은 아파트단지 앞의 거리는 한산했다. 간간이 택시가 멈추고 취객이 내려 비틀걸음으로 사라졌다.

소영은 세미에게 그만 일어서자는 눈길을 던졌다. 손님이 없는 한산한 찻집, 주인은 여성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언제 돌아오니?”

세미가 물었다.

“몰라.”

“여행 코스는?”

소영은 담배에 불을 댕기는 세미를 바라다보았다. 그녀는 천정을 향해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충고하는데……정신 차려. 남자와의 여행은 함부로 가는 게 아니야.”

“왜?”

“몰라서 묻니?”

세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소영은 웃었다.

“생각해 봐. 너흰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잖아? 결국 미친 여행으로 끝날 거야.”

세미의 말에 소영은 다시 웃었다.

인호 씨는 직장이 없었다. 그러나 걱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일 년 동안 무위도식하라고 했다. 돈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구경하라고 했다. 그는 부모의 말대로 국내는 물론 외국여행도 자주 떠났다. 그러다가는 며칠씩 집에서 두문불출하기도 했다.

인호 씨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성수역에서 시청 방향으로 가는 전동차에 나란히 앉았다. 그게 인연이 되어 커피를 마셨고, 다시 며칠 만에 술자리로 발전했다.

“난 그를 꼭 차지할거야. 필요하다면 섹스도 상관없어.”

소영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바보짓이야. 그깐 사랑놀이 좀 했다고 평생을 책임질 남자가 어디 있니? 섹스는 그냥 섹스일 뿐이야.”

“꼭 그럴까? 난 아니라고 믿어. 자신 있어. 두고 봐.”

사실 소영이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여행하며 밤마다 알몸이 되어 뒹굴었다는 것만으로 여자의 모든 것을 보장받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말대로 섹스 여행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지금은 무슨 수를 쓰든 그의 몸과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난 그를 놓칠 수 없어.”

소영은 세미로 하여금 그와의 여행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못하게 못을 박았다.

“알았어. 행운을 빌게.”

세미가 마지못해 입을 다물자 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부터 여행을 떠나려면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는 가벼운 차림으로 떠나자고 했지만, 소영이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야 낮에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둘만의 공간인 밤에는 여자로서의 매력과 유혹으로 그를 감탄시키고 싶었다.

소영은 스스로 알몸이 되어 그의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손길로 속살이 비치는 잠옷과 속옷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여자의 자태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에게 여행의 매일 밤마다 견딜 수 없는 유혹의 옷을 벗기게 하고 싶었다.

세미와 헤어진 소영은 캔 맥주 세 통을 샀다. 퇴근 후 곧바로 피부마사지를 다녀왔어야 했다는 후회감에 샤워를 정성껏 했다.

밤이 늦어 망설이다가 스마트폰의 꽃미남을 눌렀다.

“저예요. 소영이.”

알몸의 소영은 경쾌하게 말했다.

“아직도 안 잤어?”

소영은 그의 목소리에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왼손의 스마트폰을 재빨리 오른손 쪽으로 옮겼다.

“잠이 안 와요.”

소영은 어린아이 투정부리듯 말했다.

“잠이 안 온다고?”

“그래요. 아마 여행 때문인가 봐요. 기분도 이상하고…….”

소영은 의도적으로 여행을 걸고 넘어졌다.

“인호 씨와의 여행은 뜻밖이잖아요.”

“가만! 나와의 여행이 두렵다는 뜻인가?”

소영은 그렇다고 대답하려다 아니라고 말했다. 그가 만에 하나, 두려우면 가지 말자고 하는 날에는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저…….”

소영은 목소리를 낮췄다.

“저……. 지금 이리로 오면 안 돼요?”

소영은 여행을 핑계로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그 순간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지금 소영이 아파트로?”

그는 매우 놀라는 투로 되물었다.

“내일 아침 함께 떠나면 편하잖아요. 기다릴게요.”

그가 침묵하는 동안 소영은 초조했다. 침대에 살짝 걸터앉았다. 그의 숨소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전해져왔다.

“소영아!”

그가 불렀다.

“얘기해요.”

“너 오늘밤 이상하다. 어디 아프니?”

소영은 그의 말에 은근히 짜증이 났다. 그러나 애써 감추며 상냥하게 말했다.

“빨리 와요.”

소영은 당연히 와야 한다는 말투로 재촉했다.

“빨리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그가 배면을 깔았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그 말을 곱씹으며 물었다.

“왜요?”

“친구들이 와 있어.”

“보내면 되잖아요.”

“여행을 함께 떠날 친구들이야.”

소영은 귀를 의심했다. 둘만의 여행이 아닌 떼거지 여행이라니 기가 막혔다.

소영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침대 위에 챙겨놓았던 각양각색의 속옷을 종이비행기 날리듯 던지기 시작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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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정병국 性풍자 콩트는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