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영희 시인]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이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두 달여 전쯤 아이가 결혼한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망연한 소식을 듣고 보니 지난 5월, 초등학교 동문 체육대회 때 눈도장 찍어 두었던 모습이 선연하게 앞으로 다가와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부고의 내용과 이름자에만 시선이 머물러 마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길을 잃으며 흘러가던 시간의 '언제' 그랬냐는 듯 계절을 불러와 머리를 일깨워 주곤 합니다.
가을의 임무를 맡은 계절이 '언제인가' 노란 은행잎 위에 깨알처럼 적어두었던 말들을 꺼내들고 '네가 한 말'이라며 보여줍니다.

'상처 없는 사랑은 없고 이별 없는 만남은 없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자주 겪는 일이라는 듯 웃음이 새고 맙니다.

그리움으로 머리를 감는 일은 많았어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살았던 숱한 말들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네요. 고향과 초등학교는 지독할 정도로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부름입니다.

그래서 가끔 지독하리 만큼 가슴앓이를 합니다. 그곳에 남은 이들은 우리를 기다리며 살 텐데, 먼저 간 이들과 어울려 잘 살고 있을 것으로 여기며 울렁이는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어디는 벌써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가을은 벌써 끝자락을 들이밀며 소란스럽게 떠드네요. 새색시 걸음으로 사뿐히 다가오더니 어느덧 치맛자락 밟히며 사라질 가을 속을 걸어 봅니다.

가을 단상

시간을 잃어버린 길 위에 서서
하늘을 향해 휘돌아 올라가는
뽀얀 먼지 안에서
가을을 본다

푸른 물 짙게 번져가는 하늘가에
지난 더위에 지쳤던 하얀 구름
몸살을 앓다 돌아누운 세월
한숨 돌리며 쉬는

무성하게 이는 바람 움에서 옷깃 여미며
수줍게 몸단장을 끝낸 이파리들이
조막손으로 잡아 둔
가을을 본다

적막한 햇살 뒤에 숨어 있던 기다림은
마음 줄에 어깨를 걸고
앞섶에 매달려 색색의 터를 잡고
앞다투어 일어서고 있는 그리움

한 올 두 올 풀어도 괜찮을
그런 가을을 본다

시인 박영희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디지털 삽화가, 칼라맨, 캘리그라퍼. 출판편집 디자인 팀 ‘지소사’의 팀장, 시와수상문학 운영위원장으로 문학사랑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박영희 시인은 필명 ‘지소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우연처럼 뜬금없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