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새벽녘, 애타는 울음소리에 설핏 잠이 깼다. 엄마를 찾는 아가가 배고파 보채는 소리일까. 온 신경이 그 소리에 쏠린다. 알고 보니 그건 아기가 우는 게 아니라 암고양이가 님 그리워 내는 소리라고 한다.

다시 며칠인가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어둡고 힁한 아파트 광장을 맴돈다. 암고양이가 또 그러는가 싶어 온 몸에 진저리가 쳐진다. 그런데 어제부터 그 애절한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우연히 마주친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보았더니 새끼 밴 고양이가 그 주범이라고 했다.

“새끼는 낳아야 하고, 날씨는 춥고, 갈 데는 없고, 아마 제 설움에 섧게 울었나 봐요. 저기 담장 밑에 상자를 놓고 그 안에 담요를 깔아주었더니 거기에 들어앉아 있어요”

아저씨가 가르쳐 준 곳을 살펴보았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찬바람만 쌩하니 얼굴을 할퀴고 지나간다. 이튿날, 담장 아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상자 안을 들여다보기에 뭔가 싶어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양이가 드디어 새끼를 낳았나 봐요. 까만 바탕에 흰 줄무늬가 어미를 똑 닮았네요. 어쩜 귀엽기도 해라”

새끼를 낳느라 힘이 빠져 지쳤는지 휴식을 취하는 듯 길게 널브러져 누워 있으면서도 경계의 눈빛만은 매서움을 띠고 있다. 10센티쯤 될까,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앙증맞은 새끼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어미 품에 안겨 있다. 그중 한 놈이 어미젖을 물고 핥느라 여린 머리를 들이미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애처로운지 연민이 솟구친다.

오해했던 마음도 덜어낼 겸 어미 고양이에게 뭔가 먹이고 싶어 집으로 들어와 냄비에 남아있는 고깃국에 밥을 말아서 내려갔다. 허리를 굽혀 고양이 가까이 먹이를 주려는 순간 경비아저씨가 소리치며 달려온다.

“지금은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어미가 무척 예민해 있을 겁니다. 본능적으로 공격할 수도 있어요. 더구나 사람에게 버림받은 고양이라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을 것 같네요. 제가 알아서 줄 터이니 여기다 놓아 주세요”

따뜻한 집에서 사랑받고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버림을 받게 된다면 동물이라고 해서 어찌 마음의 상처가 없을까. 이유도 모른 채 섬기고 받든 주인에게 버림받은 심정을 생각하니 불현듯 측은지심이 솟는다. 버린 것도 모자라 ‘도둑고양이’라는 억울한 이름까지 붙여 부르고 있으니, 이 또한 사람들의 뻔뻔한 만용이 아닐는지.

요즘은 어딜 가나 버려진 고양이들 천지다. 가끔 길 앞을 휙 지나가거나 쓰레기통을 마구 헤집는 모습을 볼 땐 해치려 달려드는 것도 아니건만 싸늘한 경계를 눈빛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 온몸이 움츠러들곤 한다. 고양이는 대체로 깔끔한 습성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그런데 작금의 고양이들은 그 생태적 감각마저 잃어 가는 것 같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살기 위한 본능은 별반 다를 게 없을 터,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어이하랴. 이즈음 고양이의 객체 수가 늘어나는 것을 염려해 환경부에서는 중성화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도 ‘고양에게 먹이 안주기’ 운동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초목이든 그 생명의 무게는 똑같은 것이리라. 사람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 자신의 외로움을 덜고, 즐거운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동물로 하여금 필요한 욕구를 충족했다면 동물 역시 그런 그 주인에게 사랑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래야만 동고동락하는 공생(共生) 관계가 성립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냉혈한의 속물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보면 동물보다 더 잔인하단 생각이 든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애완동물을 좋아해 기르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다해 잘 거두어 주어야 한다. 가깝게 잘해주던 사람이 어느 순간 손익에 따라 상처를 주고 떠났다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동물이 자신을 키워준 주인을 배반했다는 소리는 별반 들어보지 못했다. 아무리 삶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다 하더라도 사는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버린 동물을 병들었다고, 함부로 대하는 건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가 아닌 듯하다.

수필가 박원명화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