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모를 일입니다. 날씨만큼이나 사람의 마음도 변덕스러운 것 같습니다. 안보면 궁금하고, 생각나서 보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폭포처럼 쏟아내고 싶어집니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이 오면 오래지 않아 몸은 지치고 마음은 힘들어 그저 혼자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없을 때 귀하고 그리워지는 게 사람의 심사던가요. 아이들이 가고 텅 빈 집안을 맴돌며 적막한 쓸쓸함에 젖습니다. 방금 전 복닥거리던 가족의 따뜻한 훈기를 되새김질하면서.

자식들과 떨어져 산지도 10년이 다된 지금, 가끔 한 번씩 오가는 것에 익숙할 만도 한데 마음은 여전히 자식들을 놓아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반가움에 겨워 허둥대곤 합니다. 음식을 뭘 해줄까 오기 전부터 고민하며 몇날며칠 시장바구니를 끌고 오르내립니다.

그 옛날 내가 자식들 셋을 데리고 친정집 갔을 때 ‘잘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흐뭇하다’시던 어머니의 애틋한 모정이 내게 전이 된 듯합니다. 어머니가 아이 셋을 낳으라고 내게 강요한 게 아닌데도 내가 힘들 때마다 투정하듯 애들 셋 키우느라 죽을 것 같다며 친정 가서는 어린것들을 어머니에게 죄다 떠맡기고 나 편 한대로 지내며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다며 늙은 어머니를 부려 먹었으니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지금 내가 어머니 나이가 되어 보니 알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키워 시집 장가보내고 나면 부모로 할 일을 끝마친 것 같은 속 시원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자식들이 한 번씩 온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어 언제쯤이나 오는지 현관문에 눈이 가고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우르르 한 무더기 들이닥치면 텅 비어 고요하던 집안은 이내 장터처럼 시끌벅적 뿌듯한 즐거움이 술렁입니다. 신이 난 듯 이방에서 저 방으로 통통 뛰어다니며 참새 떼처럼 재잘재잘 대는 어린것들을 보고 있으면 얼굴 가득 벙싯벙싯 웃음이 피어납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가고나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음기 환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도 말문을 닫아건 듯 입을 굳게 다문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시켜 놓습니다. 남편의 그런 모습이야 항상 보고 살아온 터라 그러려니 싶은 게 별로 불편하거나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나는 나대로 긴장이 풀린 무료함에 기운이 쏙 빠져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와 누워 휴식을 취합니다. 마치 전쟁이 끝난 후의 후유증(後遺症)처럼 집안은 정체모를 침묵에 묻힙니다.

한 숨 돌린 후, 침묵을 깨우듯 몸을 억지로 일으켜봅니다. 한 해가 다른 듯, 나이 먹는다는 걸 몸이 먼저 반응하는지 무겁고, 쑤시고, 결리고 온 몸에서 스트라이크가 일어납니다. 어수선한 집안을 치워야 하는 것도 내 몫이니 치울 수밖에요. 아이들도 오면 오는 대로 이런저런 준비로 힘들 것이고 갈 때도 제 자식들 챙겨 옷 입히고 보따리 챙기느라 남은 부모걱정 할 새도 없습니다.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부담 주기 싫어 웬만히 힘들고 아픈 것은 내색조차 않습니다.

설렁한 집안의 분위기를 내몰 듯 방마다 전등불을 켭니다. 달그락 달그락 아이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데워 저녁상을 차립니다. 냉장고에 몇 가지 반찬들을 꺼내 보지만 윤기도 먹음직스럽지도 않습니다. 남편도 나도 쓰디쓴 입맛을 달래며 묵묵히 젓가락만 오갑니다. 이럴 땐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한다는 게 야속하기만 합니다.

수필가 박원명화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