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코로나 펜테믹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지하철은 언제나 만원이다. 노약자 좌석은 물론 임산부 배려 석도 비워 있을 때가 없다. 특히 출퇴근 시간 때는 자리가 나기 무섭게 저마다 앉으려는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편히 앉아가고 싶은 마음이야 누군들 없을까. 새도 앉을 자리를 보고 앉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아무리 힘들고 피곤하다 해도 앉아야 될 자리와 앉지 말아야 할 자리는 최소한 지켜야 마땅하다.

임산부 배려 석에 뚱뚱한 중년의 여자가 앉아있다. 몇 정거장 지나 앉아 있던 여자가 내리자 눈치 볼 사이도 없이 한 남자가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한다. 70대쯤이나 되었을까. 자리에 앉아마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남자가 통화하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남자를 에워싼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정 방향에 서서 그 남자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조용하던 전철 안이 그 남자의 목소리로 시끄럽다. 핑크색 배려좌석에 앉아 있는 것도 못마땅하려니와 마치 자기 집 안방처럼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주위의 바늘 같은 눈길에도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통화하는 걸 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못 본 것을 본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하다.

때마침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분홍색 의자는 임산부를 위한 자리이오니…’방송을 못들은 건지, 아예 들을 생각도 없는 건지, 귀가 어두운 것인지 여전히 큰 소리로 통화를 한다. 그 남자의 안하무인격 행동을 보고도 못마땅한 눈치를 보내면서도 누구 하나 한마디 해주는 사람이 없다. 나 역시 마뜩찮기는 마찬가지면서도 차마 뭐라 할 용기가 없다.

그냥 제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귓속을 틀어막고 싶다. 사람들마다 시시각각 표정들이 변해간다. 처음에는 귓속으로 들어와 지글대는 소리에 짜증나고 화났다가, 나중에는 머리가 허옇도록 어찌 저리 사는 가 싶은 게 측은지심마저 들어 차라리 못 본 척 시선을 거둔다. 어쩌다 마주 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나 역시도 늙어가는 처지라 괜스레 민망한 마음에 입 꼬리를 살짝 들어 쓰디쓴 웃음을 짓는다. 그 남자의 전화통화가 길어지니 사람들은 체념으로 기운 듯 저마다 하던 일에 몰두한다.

사람들 대부분 나를 평가하는 일에는 관대하고 너그럽지만 남을 바라보는 눈은 차갑고 냉정하다. 하지만 우리의 불행은 내 얼굴을 나 자신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부끄럽게 않게 살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른이라 하여 무조건 존경받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 아이가 되기보다는 어른노릇 하기가 더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 상대의 결점과 나의 이점을 저울에 달아보고 그 다음 어찌 살지를 거울삼아 배운다. 하지만 누구든 자기 잣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누구나 독생자요,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인 것이다.

수필가 박원명화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