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딸아이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며 주말에 인사하러 와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결혼할 연령기여서인지 귀가 번쩍 열릴 만큼 반가운 희소식입니다. 기대랄까, 내가 그럴 일도 아닌데 공연히 가슴이 설레기까지 합니다. 새 식구가 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처음이라 낯선 풍경의 궁금증을 한껏 자아냅니다.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배우가 연상되는 미남형은 아니지만 남자다운 다부진 외모와 몸에 밴 듯한 단정함은 오래전부터 익숙했던 사람처럼 금방 편안한 친화감이 느껴집니다. 이런저런 몇 마디 대화를 해보니 자신만이 추구하는 가치관도 뚜렷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야무져 보입니다. 이런 청년이라면 내 딸을 맡겨도 좋을 성 싶습니다. 부자도 좋고 화려한 스펙도 좋지만, 인간적 체취가 느껴지고, 내 딸만을 사랑해 주는 남자라면 그보다 더한 신랑감이 어디 있을까 싶어 얼른 기분 좋게 허락을 했습니다.

큰딸을 살림 밑천이라 하듯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며 위풍당당히 자라기를 바랐지만 위로 오빠, 아래로 동생에게 치여 내내 희미한 사랑만 먹이고 키웠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원래도 허약한 체질인데다가 어려서 감기를 줄 창 달고 살아서인지 지금도 환절기만 되면 천식으로 번져 고생을 하는 걸 보면 못난 어미 탓인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늘 동생의 본보기가 되라고 일러서인지 기대에 어긋남 없이 제 앞가림에 충실해 부모 걱정 끼칠 일 없이 바르게 자랐습니다. 그렇듯 착하게 자랐으니 성실하고 반듯한 사람을 만난 게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결혼 행은 급행열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상견례는 결혼할 당사자들과 양가 어머니 둘이서 만났습니다. 안사돈을 처음 본 순간, 내 상상은 꿈인 듯 사라지고 서울하고도 강남에 사는 분답지 않게 소소한 배려와 인심 좋은 후덕함은 마치 다정한 이웃을 만난 것 같이 편안합니다. 사돈의 인품을 견주어 보노라니 내 생각이 얼마나 순수하지 못하고 이기적인가를 뒤늦게 깨닫습니다.

결혼한 지 10년, 사위와 큰딸, 그리고 손자 둘에 손녀까지 같이 있는 모습은 나무랄 데 없는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행복의 구성원으로 좋은 가정의 기준 같다고나 할까요. 처음 보았던 기대치에 어긋남 없이 다섯 식구가 알콩달콩 사는 걸 보면 행복의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전하는 속담에 의하면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고 했던가요? 사돈이란 조심스럽고 불편한 관계의 의미에서 이런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 속담은 먼 옛날 전설이 될 만큼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돈만큼 가까운 친인척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나누고 살고 있으니 촌수의 관계는 무용지물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즈음 사돈 간에도 격의 없이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큰딸이 잘살고 있는 걸 보면 사위를 키운 그분들의 살아온 삶의 빛깔을 가늠하게 됩니다. 바깥사돈이 봉사 일을 열심히 하시는 것도 내가 배워야할 부러움입니다. 사돈과 큰길 하나 사이를 두고 가깝게 지내고 있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푸근한 이웃집의 인정처럼 과일도 가져다주시고 시골 다녀왔다며 참깨, 들깨, 호박, 무, 배추 등등 온갖 농수산물을 수시로 가져다주시곤 합니다. 좋은 사돈을 만난 것도 사위를 잘 둔 복이지 싶습니다.

수필가 박원명화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