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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3회] 서로의 죽음을 담보로 선택한 ‘동행’

암 입원실 복도 한 바퀴 144미터에의 도전 정병국 작가l승인2020.09.29l수정2020.09.29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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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암 환자 입원실로 올라가고 싶었습니다.
만 13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받던 입원실의 창가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바깥세상보다 복도를 걷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면회시간인데도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일반병원과 암병원의 1층 연결 복도 750미터 왕복을 반복하며 2008년 1월 중하순 그날을 회상했습니다. 15일 여명 전에 수술실로 갔으니 아마 18일쯤이 맞을 겁니다. 병상에서 스스로 일어나 암병원의 입원실 복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

췌장암에 갑상선샘까지?
암 진단에서부터 수술까지 엄연한 현실인데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 꿈이야. 생시의 나와 아무런 관계없이 악몽에 시달리는 거라며 도래질 하다가 입원실 출입문을 노려보았습니다.

저 문을 나가야 해.
정신없이 바빴던 하루의 피로를 소주로 풀던 곳, 그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습니다. 그 순간 극심한 통증과 현기증 속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차라리 태질하며 대성통곡하고 싶었으나 물고 늘어졌습니다.
숱한 삶의 질곡에서도 이 악물고 견뎌냈는데 이 악몽에서 무너질 수 없다는 오기로 겨우 정신을 추스르다 한 줄기의 작은 빛 ‘긍정’에 기대였습니다. 그 빛은 지금의 모든 걸 인정하며 함께 가는 ‘동행’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행’은 절반의 긍정이었습니다.
2020년 9월 23일 지금은 100% 긍정이지만, 13년 전 당시에는 아니었습니다. 내가 버리면 암 네가 죽고, 네가 버리면 내가 이승을 떠난다는 묵언의 약정으로 첫 동행의 시도는 입원실 복도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습니다.

입원실 복도의 한 바퀴 거리는 144미터.
건강한 사람의 보통 걸음으로 1분 안팎의 거리이지만, 저에게는 어마어마한 도전이었습니다.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쓰러져도 기어코 해낸다는 집념으로 병상에서 내려섰습니다. 몹시 같잖은 표정의 암도 따라 내려서며 어서 앞장서라고 손짓했습니다.

암과의 첫 동행.
한 시간의 그 첫 걸음을 시(詩)에 담았습니다.

‘첫발을 내딛던 날’

수술 후 중환자회복실에서
일반 입원실로 내려온 다음날
보행보조기 옆에 뿔대를 나란히 세운다

지켜보는 암환자와 보호자들
중년남자가 다가와 출입문 밖까지 도와주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괜찮겠어요

고개를 끄떡이며
바라보는 긴 복도 앞에서
심호흡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가슴이 찢어지고
불타는 통증
주저앉는 몸 안간힘으로 세워
두 번째 걸음을 뗀다

일백사십사 미터 복도 한 바퀴
한 시간 만에 정복한 후 입원실에 쓰러지자
터지는 박수와 환호성
살았다는 눈물이 뜨겁다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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