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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4千字소설 제35화] 구름을 따는 여인

그녀의 손짓은 간절한 기도의 춤으로 정병국 작가l승인2018.10.25l수정2018.10.2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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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오라버니라는 호칭이 싫지 않았다.

그녀, 칠십이 눈앞이라며 살짝 미소 지었다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벽까지도 장대비를 쏟아붓던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저 구름, 먹고 싶지 않으세요?”

그녀는 아버지가 솜사탕을 사주며 구름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던 거짓말을 지금은 당신이 미국에 사는 손자 손녀에게 한다고 했다.

남산골한옥마을에는 솜사탕 장사꾼이 없었다. 중국 사람들이 고발하는 파륜궁 핍박의 끔찍한 장면 패널이 전시돼 있었다. 그 반대편 쪽으로 가게에서 내놓은 상품과 한복대여점의 남녀 한복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주위를 보았으나 관광지에서 흔히 보는 솜사탕 아저씨는 없었다.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남산한옥마을의 커다란 대문을 지나 소나무 섬이 있는 연못에 다다르자 그녀가 힐끔 쳐다보며 말끝을 접었다. 물 가까이 다가가자 황금 잉어들이 먹이를 주려는 줄 알고 모여들었다. 모래를 조금 집어서 뿌리자 수십 마리의 잉어들이 법석 떨다가 유유히 사라졌다.

“나빠요.”

그녀의 말에 허허 웃었다.

“물고기를 속인 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그냥 심통 좀 부렸어요. 그건 그렇고…….”

그녀를 벤치에 앉혔다. 서너 마리의 비둘기가 다가와 빙빙 돌며 먹이를 찾았다. 과자라도 사 올 걸 잘못했다는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노골적으로 어떻게 살고 싶었느냐, 묻고 싶은데 자칫 상처를 건드리는 질문이 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췌장암과 고혈당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어느 날 문득 인생의 온갖 상처까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왔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이 험난한 세상살이를 참 잘 견뎌낸 목숨에 감사했다. 이런 내 마음만 믿고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게 무엇이냐고 물을 수 없었다.

“오라버니! 궁금하죠?”

마치 내 속을 환히 들여다보듯 묻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난 있죠. 그러니까….”

그녀는 참새 한 마리가 비둘기 먹이를 가로채는 모습에 소리 안 나게 손뼉을 쳤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덕수궁의 연못가에서 참새와 비둘기가 먹이 싸움을 벌이던 광경이 떠올랐다. 까맣게 잊었던 기억이었다. 그날의 전쟁은 몸놀림이 재빠른 참새 떼의 승리로 끝이 났다.

“참새에게 먹이를 빼앗긴 비둘기 말인데요.”

얼마나 황당할까요? 콩알만 한 게 알짱거리다가 냉큼 먹이를 물어갔으니 눈 뜨고 코 베인 꼴이잖아요. 아마 연못에 코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일 거예요. 아! 아닐 수도 있겠어요. 비둘기는 평화의 사도이니까 오히려 배고픈 목숨 하나 살렸다고 흐뭇해할는지 모르겠네요. 오라버니가 한번 물어볼래요?

정말 물어볼 요량으로 비둘기 곁으로 다가가자 우르르 날아오르며 연못을 한 바퀴 돌더니 정자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닭 쫓던 개처럼 지붕 위의 비둘기에게 약 오른 눈길을 던지자 그녀가 벤치에서 일어서며 놀렸다.

“세상에! 그러다가 욕하겠어요.”

“이미 속으로 했어요.”

“뭐라고요?”

“바보. 멍청이. 참새만도 못한 놈들……!”

첫 욕은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줄줄이 이어가면서 목소리가 죽었다. 세상에 태어나 칠십 중반으로 접어들 때까지 나는 내 몫을 얼마나 잘 지키고 살아왔나, 자문할 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손에 쥐여준 것까지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세상살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암으로 죽지 않고 살아나면서 지난날의 상처뿐인 삶도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정말 치욕적이었던 사건까지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됐다.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그녀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렇게 살고 싶었던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복지관의 서예교실에서 만난 그녀는 조용한 듯싶으면서도 적극적인 할머니였다. 초등학교의 방학숙제로 썼던 붓글씨가 서예 공부의 전부라면서도 남다른 솜씨를 발휘했다. 큰 붓보다 작은 붓으로 쓴, A3 한 장의 서간문은 복지관 게시판에 한동안 전시됐었다.

남편을 사별하고 두 아이와 사는 딸에게 쓴 편지였는데, 붓글씨 솜씨만큼이나 내용과 문장력도 뛰어나 복지관 노인들의 스타가 됐다.

“딸은 어디에 살아요?”

연못 벤치를 벗어나며 불쑥 묻자 그녀는 지구 반대편에 산다고 했다. 얼굴 본 지가 오 년이 넘었다고 했다. 사위가 살아있을 때는 일 년에 한 번씩은 다녀갔는데 지금은 휴대폰의 동영상으로만 만난다며 기와집 하나를 가리켰다.

“저렇게 구중궁궐의 아닌 작은 기와집을 그렸어요.”

어른 가슴 높이의 돌담 옆에 대추나무가 있고 마당은 사람이 다니는 길만 빼고 온통 꽃밭인 그런 집 말이에요. 그런 기와집은 도시에도 얼마든지 있잖아요. 오후, 쪽마루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면서 출근한 남편과 학교에 간 아이들을 기다리는 저를 상상하며 결혼했거든요. 그것도 스물한 살에요.

“그 양반이 떠난 지 벌써 사십오 년이 넘었네요. 차 한 잔 마시는 행복도 안 주고요.”

걸음을 멈춘 그녀가 화단의 술패랭이꽃 앞에 쪼그려 앉았다. 짙은 자색 꽃잎의 끝부분이 부챗살처럼 갈라지면서 핀 꽃을 새끼손가락으로 살짝살짝 건드리다가 일어섰다.

“쟤 말이에요.”

그녀는 술패랭이꽃을 쟤라고 불렀다. 쟤는 너른 들판이 아닌 화단에서의 결혼생활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라고 물었다가 곧바로 취소했다. 할망구가 참 희한한 생각을 다 한다면서도 스스로 대답했다.

“아마 늘 깨소금 같을 거예요.”

결혼생활이 깨소금 같을 거라는 말에 폐암으로 먼저 간 마누라를 떠올렸다. 신혼 때 놀리던 호칭이 죽어서도 그렇게 불렸다. 지금도 여보, 당신이라는 부름보다 더 편한 마누라는 어땠을까? 우여곡절이 많았던 가정사, 그 속에서 작은 종지의 깨소금이라도 맛보았을까?

“오라버니! 언니에게 잘해 주세요.”

나 싫다고 먼저 간 사람에게 뭘 잘해줘요, 되물으려다가 윤 씨 가옥의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한 무리의 중국 요우커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옆 한옥도 국내외 관광객으로 붐볐다. 그녀가 또 고개를 저어 소나무숲으로 향했다.

그녀는 소나무숲의 나무의자에 앉을 때까지 침묵했다. 천천히 걸으며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거나 잡초 속의 야생화를 살펴보기도 했다.

“내가 왜 일찍 결혼했는지 고백할까요?”

그녀는 현모양처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제2의 신사임당 욕심까지는 아니지만, 그러나 결혼 초 틈틈이 수채화를 그렸다고 했다. 시도 썼다. 조상님들의 태교에 관한 책도 구해 부지런히 읽었다. 첫 아이를 임신의 기쁨도 잠시,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자 모든 것이 무너졌다.

“뱃속 아이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어요. 결국 오늘날까지 살아 있네요.”

아주 짤막하게 지난 삶을 들려준 그녀가 손녀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렸다. 비록 동영상이지만, 재롱떠는 손녀와 눈을 맞추다 보면 살아있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에 피식피식 웃는다고 했다.

“정말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로 살고 싶었는데……오라버니! 저 웃기죠?”

벤치 가까이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맴돌다가 사라지자 그녀가 일어섰다. 흰 나비는 누군가의 영혼이라는데 어쩌면 남편일지도 모르겠다며 나비가 사라진 쪽으로 걸어갔다. 이미 다 지난 세월의 아픔이지만, 그래도 위로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청상과수에 유복자 엄마를 만든 남편을 나쁜 사람으로 욕하며 위로할 수도 없었다.

“우리 솜사탕 먹으러 갑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하늘의 구름을 가리키며 솜사탕 먹으러 가자고 불쑥 말했다. 솜사탕 파는 곳을 아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젓자 짐짓 난감한 표정이었던 그녀가 두 팔을 뻗었다. 까치발로 하늘의 구름을 따 솜사탕 만드는 손짓은 마치 간절한 기도의 춤처럼 느껴졌다.

그 춤사위로 가을의 해가 지고 있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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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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