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30]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너도 고마 절에 가서 중이나 되라 김기은 소설가l승인2017.08.07l수정2017.08.0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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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어느 날 엄마는 술이 잔뜩 취해서 어린 나를 앉혀놓고는,

"너도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자꾸 읊어라. 나무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에게 귀의 하겠다는 뜻이다. 천지신명한테 빌듯이 성심껏 나무 관세음보살을 읊으면 복도 받고 극락왕생한단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 왼쪽에서......."

하고 불교 교리를 한참 설명했다. 나는 싫다 소리도 못하고 몇 시간을 무릎 꿇고 앉아서 들었다. 엄마가 술 취해 그랬던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홀로 자식 키우는 보통의 과부들이 그렇듯 엄마는 자식들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매우 엄격했었다.

"너도 고마 절에 가서 중이나 되라."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면 쭈그리고 앉아 두 손을 모으며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저 교회 다니는 이영희 친군데요, 우리 엄마가 제발 절에 그만 다니게 해주세요. 제 기도 들어주시면 이담에 커서 저도 교회 다닐게요."

내 기도발이 먹혔는지 2년 후 새로 이사 간 집에서는 옆집 아주머니한테 설득당해 교회 부흥회를 따라갔다. 처음엔 한사코 안 가겠다더니,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에겐 가정상비약이 들어있는 고급 구급상자를 준다는 말에 홀딱 넘어간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엄마가 절 보다는 교회를 다니는 것이 멋져 보였다. 중 되란 말도 다신 안 할 테고, 절보다 더 현대적인 냄새가 나는 종교 같았다. 일요일에 성경책을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고 찬송가를 부르면 내 친구 엄마처럼 좀 세련 되 보일 것도 같았다. 학교 친구들 말에 의하면 애들은 교회에 가면 공책이며 연필도 주고, 크리스마스 땐 선물도 준다고 했다. 나도 엄마랑 교회 다니며 그런 걸 받고 싶었다.

그런데 부흥회를 갔다 온 엄마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야, 사람들이 다 신들린 것 같더라. 거 뭐이가, 무당이 굿 할 때, 신한테 한 마디 하면 고수들이 받아서 '그렇지'하고 추임새로 응수를 하는 딱 그거 같다. 목사 양반이 한마디 하면 아멘! 아버지! 하고 응수해야 된다더라. 그 얌전하던 옆집 여편네도 거기 가선 완전히 딴 사람이 되더라. 울고, 몸을 흔들고, 요상하게 떠드는 게 그게 신들린 거 아니면 미친 거지 어디 제 정신이가. 야아, 그리 정신없는 건 나랑 도통 안 맞는다. 두 번 다시 안 갈랜다."

하지만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엄마는 아주머니를 계속 나갔다. 부흥회라 그렇지 평소 땐 그렇지 않다며 계속 졸라댄 탓도 있지만 진짜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선물을 받아오고 어떻게 안 가냐. 사람이 염치가 없잖냐. 선물만 받아먹고 안 나온다고 욕 안 하겠냐. 그만 두더라도 받은 만큼은 다니고 그만 둬야지. 괜히 그걸 걸 받아 갖고 왔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거라, 약통 값 헌금으로 다나갔다."

결국은 그곳도 그만 두었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선물 값은 헌금으로 벌써 다 갚은 거였다. 그러니 이제 미안해 할 필요도 없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날마다 와서 졸라댔지만 엄마의 고집도 여간 아니라서 나중에는 그쪽에서 지쳐 떨어졌다.

또 몇 해가 지나 이번에는 주인집 할머니가 다니는 성당을 다녔다. 그러더니 나더러 툭하면 수녀가 되라고 했다.

“성당도 서양 옷, 동양 옷 모양만 다르지 절하고 똑 같더라. 물건들을 모셔놓는 것도 그렇고, 부적처럼 뭐 지니는 것도 그렇고, 거기다 제사도 지내고, 죽었을 때 하는 '연도'라는 노래도 생긴 게 꼭 회심가랑 똑같다. 절에도 이승 저승 중간에 중위가 있는데 성당엔 지옥이랑 천당 중간에 연옥이 있단다. 어째 그리 닮았을까 몰라. 거기 신부님 수녀님이란 사람들도 스님같이 결혼도 안하고 수행한다더라. 하느님하고 결혼한단다. 마리아도 하느님하고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단다. 참 희한 하지. 어떻게 남편도 없이 애를 낳나“

엄마는 성당이 서양 예수교인데도 불교랑 닮았다며 그게 신기했던지 그곳에서 교리인지 뭔지를 듣고는 매번 내게 얘기해주었다.

“너도 성당이나 다녀라”

아니나 다를까 또 올 것이 왔다. 엄마는 다단계에 가면 걸려들기 딱 좋은 스타일이었다.

"너도 수녀원 들어가서 기도나 하며 혼자 깨끗하게 살아라. 까르멜이라던가, 거기 수녀들은 평생 먹고 자고 기도만 한다는데 얼마나 좋은 일이냐. 나도 그러고만 살라면 세상 편켔다. 결혼해봐야 별거 없다. 자식도 애물단지고, 맘고생하고 혼자 사는 게 상팔자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길을 가다가도 수녀를 보면 그렇게 편히 사나 싶어 유심히 표정을 관찰했다. 그런데 저 수녀님은 왜 기도를 안 하고 나돌아 다니나. 그래도 수녀 복을 입은 모습은 괜찮아 보여 크면 수녀가 돼볼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했었지만, 아무래도 먹고 자고 기도만 하는 건 너무 지겨울 것 같았다.

가을이 되어 삯바느질 일이 많아지면서 엄마는 슬금슬금 성당을 빼먹기 시작했다. 바느질 일이 많을 때는 나에게 '아나뽕'이라는 잠 안 오는 약을 사오라고 시켰다. 밤을 새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천주교 세례를 받기 위해 매주 교리를 배우러 가고, 주일을 빠지지 않고 지킨다는 것은 무리였다.

원래 한복일은 여름엔 일이 없고, 결혼식 많고 명절 많은 가을 겨울에 일이 많았다. 그래서 여름이면 쌀 살 돈도 없어 쩔쩔맸고, 겨울이 오면 일이 많아 소고기국이며 생선도 떨어뜨리지 않고 먹었다. 그 대신 엄마는 내가 사온 각성제 ‘아나뽕’과 두통약 ‘명랑’을 먹고는 환히 불을 켜놓고 잠든 내 곁에서 날밤을 꼬박 새웠다.

주인집 할머니는 시간이 안 나면 새벽미사라도 가라고 했다. 초등학생인 내가 봐도 날밤을 꼬박 샌 엄마에게 그건 할 소리가 아니었다.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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