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짐승들의 축제

[골프타임즈=박하 작가] 사실 함봉호가 경험한 신문배달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중에 안 내용이지만, 은사 시인은 함봉호의 신문사 핍박 사건을 듣고 바로 그날 저녁 지인에게 전화한 것이다. 유명화가였던 지인은 그걸 곧장 신문사 사장에게 직접 통보했다. 그들은 동향인으로 서로 친분이 두터운 데서 일이 쉽게 진행됐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던 시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함봉호 구제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함봉호는 한참 후에야 그 비밀의 경로를 파악했다. 처음에는 은사 시인이 신문사 사장과 직접 아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시간이 지난 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함봉호는 나중에 그 비밀을 화가로부터 들어 알았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사람들은 흔히 “백도 실력이다”고 말한다. 그 진리는 인류가 태동된 무렵부터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지속될 터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기업 홍보실 두 곳과 은사 시인의 출판사 편집장을 마다하고 원호지청의 추천으로 신문사에 입사한 함봉호가 살아남은 연줄도 엄연히 실력이라면 실력일 수 있다.

그런 반면 구본하는 보다 완벽한 백으로 입사한 당사자였다. 그는 이른바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하는 안기부의 연으로 들어왔다. 당시 각 신문사마다 담당하는 안기부 직원의 입김은 충분히 입사를 좌우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신문사와 신문 내용을 감시했으니 그런 힘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구본하는 그것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음흉하게 감추었다. 그 대신 그는 오히려 모호한 패를 꺼내들었다. 사주(社主)와 같은 성을 가졌다면서 은연중 자신을 드러냈다. 그가 자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주가 배 다른 아이를 낳았다고 흘리며 다녔다. 보통 사람들은 사주가 외동딸만 낳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사주 역시 사람인 관계로 바람을 피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개 권세가 집안의 남자들이 작은마누라를 두는 것은 다반사였다. 대를 이어 사내아이를 낳기 위해 첩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구본하는 그런 말을 함봉호에게 흘렸다. 하지만 함봉호는 그 말을 혼자만 들었을 뿐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내용이어서 일축해 버렸다.

마침내 판매국에서 사업국 출판부로 자리를 옮긴 함봉호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살판이 났다. 이미 신문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시인 은사에게 책 만드는 일을 배운 탓에 제격이었다. 더욱이 그가 처음 맡은 『수요공급 살인사건』은 소설책이었기에 의기양양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이미 소설을 많이 써본 경험이 큰 밑천이었다.

그는 종이 원고지에 깨알같이 쓴 원고를 받아들자마자 거침없이 빨간 펜으로 고치기 시작했다. 기실 거칠 것이 없었다. 그 책을 맡다가 준 배창호 참사는 함봉호가 고친 문장을 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물론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아무튼 그는 실력으로 인정받으며 출판 일에 몰입함으로써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잘났어도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꿴 이상 주변인과 어울릴 뿐 부서만 벗어나면 껄끄럽게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사업국과 가까운 사무실이 위치한 관리국 직원들과 눈이라도 마주칠 때는 서로 어색했다.

입사할 때 관리국에서 유일하게 상대했던 이동수 과장은 판매국에서 근무했으므로 거의 부딪칠 일이 없었다. 다만 정작 만났어야 할 진짜 담당자인 총무부장이나 과장은 오히려 자주 부딪쳤다. 같은 층에서 일하다보니 화장실에서 조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면 어색하게 인사해야 하는데 그들은 어정쩡하게 웃음으로 대했다. 한마디로 미안하다는 뜻일 게다. 문제는 신문사 사장이 사주와 연관된 가족이 아닌 관계로 그다지 큰 힘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사장 임기만 끝나면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는 위치였다. 원래 신문사를 창간했던 사주는 이미 몇 년 전에 지병으로 타계한 이후여서 실세인 미망인 가족이 똬리를 틀고 지켜보는 판국이었다.

그래도 함봉호는 그런 데 상관없이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해서 남들이 10년 걸려야 탈까 말까 한 성실상은 1년여 만에 수상했다. 그가 출판한 책은 판수를 거듭하며 잘 팔려 나갔다. 또한 사내 체육 동호인 모임에도 참석하기 시작했다. 암울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함께 어울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는 사내 테니스대회에 처음 출전해 감투상을 받을 만큼 운동신경이 출중했다. 사실 탁구는 제법 쳤지만 테니스는 라켓조차 처음 잡아봤다. 사내 탁구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실력만 믿고 덤벼든 것이 먹혀들었다. 그 모든 원천은 몸이 빠른 결과였다.

테니스는 스피드 게임이었기에 어느 정도 기본기만 익히면 우승까지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테니스는 탁구와 달리 따로 시간을 내 배우고 익혀야 해서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탁구는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에 틈을 내 쳐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뿐 아니라 함봉호는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사내 바둑대회에 나가서도 4강에 들 만큼 뛰어났다. 사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만능이었다. 전부터 해왔던 사내체육대회가 없어져 그럴 기회가 없었지만 그는 사내 축제를 내심 기다렸다. 하지만 해마다 치르는 전국 언론인 탁구대회에 나가보면 그 역시 높은 벽에 부딪치며 한계를 맛보았다. 사내 최고의 실력이라도 더 넓은 데 나가면 출중한 고수들이 많았다.

그와 함께 함봉호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돋보이는 주인공이 되었다. 출판부에 들어와 단행본뿐만 아니라 창업주 추모록과 사보에 이어 주간지까지 창간하다 보니 부득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혼자서 2명의 아르바이트 여대생을 채용해 시험판 주간지를 만들었다. 실제로 그 후 한 중앙 일간지는 그가 만든 주간지와 경쟁하기 위해 30여명의 인원으로 창간하기도 했다.

결국 그런 성공에 대한 질투로 인해 잠시 주간지를 떠났던 함봉호는 다시 돌아왔다. 그가 없이는 도저히 주간지 창간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가 합류하자 잘 돌아가기 시작했다. <계속>

박하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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