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관은 촛불로 분노한 민심 앞에 실패를 반성 못하는 집권당의 부끄러움과 마치 군주된양 갑질하는 야당 당수의 후안무치도 꼴불견이다.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 지구촌의 공통된 문화인데 올해 우리나라는 예외인 것 같습니다. 기대하며 지켜보자는 말로 새해인사를 대신하는 친지가 많습니다. 아마도 대통령탄핵심판으로 인해 올해 나라의 큰 방향이 정해지지 않아서인가 봅니다. 딱한 마음에 오늘은 금도(襟度)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금도(襟度)’란 흉금과 도량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한 사람의 마음과 그릇이 크다는 뜻입니다. 간혹 넘지 말아야할 선 곧 ‘금도(禁度)’로 오용되지만 이런 한자어는 사전에 없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승리할 때도 있고 패배할 때도 있습니다. 승리했을 때는 남을 포용하거나 용서하는 아량이 있어야하고, 패배했을 때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중국의 춘추시대 때 일입니다. 제(齊)나라의 포악한 군주 양공(襄公)이 시해되고 국외에 망명 중인 그의 아들끼리 보위를 다툴 때 공자 규(糾)를 모셨던 관중은 훗날 환공(桓公)이 된 공자 소백(小白)을 활로 쏴 거의 죽일 뻔 했습니다.

먼저 제나라로 돌아와 보위에 오른 환공은 자신을 보필할 인재가 급히 필요해서 포숙아(鮑叔牙)에게 재상을 맡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포숙아는 자신의 그릇이 관중만 못하니 제나라가 패업을 이루려면 관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제환공은 결국 관중을 재상에 등용하였고, 그의 보필로 마침내 춘추시대 최초의 패업군주(霸業君主)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해할 뻔한 정적(政敵)을 등용한 환공이나 자기보다 그릇이 크다며 친구를 천거한 포숙아 모두 대단한 금도를 갖춘 인물들입니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신하의 직언을 용인한 금도를 지닌 군주였습니다. 특히 위징(魏徵)에게 각별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세민은 형 태자 이건성(李建成)과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현무문(玄武門)의 정변을 일으켜 형을 제거하고 아버지 고조(高祖) 이연(李淵)에게서 양위를 받아 제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위징은 이건성의 측근 막료로 선수를 쳐서 이세민을 죽이자고 여러 번 건의했던 인물입니다.

정변에 성공한 후 이세민은 위징(魏徵)을 잡아들여 자신들 형제사이를 이간질했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나 위징은 움츠려들지 않고 이건성이 자기 말을 들었다면 오늘과 같은 치욕은 없었을 것이라고 되받아쳤습니다.

위징의 담력과 식견을 높이 산 당태종은 그를 중용했지만 위징은 여전히 당태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언을 해댔습니다. 얼마나 사사건건 당태종과 맞섰는지 화가 치민 당태종이 위징을 죽이고 싶다고 토로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간언을 용인해 당태종은 중국역사상 손꼽히는 명군으로 추앙받습니다.

자신의 실정(失政)을 야당의 발목잡기와 자신이 속한 집권당 내의 배신자 탓으로 돌렸던 대통령, 그리고 이를 맹종하는 세력 일색의 엉터리 공천으로 총선을 망친 집권당은 목하 몰락 중입니다. 더욱 가관은 촛불로 분노한 민심 앞에 잘못을 반성하는 금도조차 상실한 태도입니다. 대통령은 시종 변명으로 일관하고 집권당은 부끄러움을 잃었습니다. 폭력 없이 촛불로 시민혁명을 이룬 국민들의 금도에 일말의 경의를 느꼈다면 이처럼 후안무치하진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일주일 전에 제자에게서 학점을 올려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공과목인데 수업태도가 성실하지 못한 것은 차치하고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데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답안지 모두 백지에 가까워서 낙제점인 F를 주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느긋하던 제자가 다급했는지 문자와 메일로 집요하게 선처를 호소하다가 급기야 전화까지 건 것입니다.

제자는 필자과목의 F학점으로 인해 학사경고를 받아 중요한 자격이 취소되게 생겼다며 학점을 올려줄 당위성을 역설했습니다. 제자의 처지가 딱했지만 필자가 반문했습니다. “자네가 나라면 자네에게 학점을 줄 수 있겠냐? 자네가 최순실의 딸 정유라이고 나는 모(某)여대 교수인가? 자격이 안 되는 학생에게 마구 학점을 남발하게?” 필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제자는 자신이 무리한 부탁을 했다며 사과하고 곧장 전화를 끊었습니다. 제자는 비록 F학점을 받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싹싹하게 인정할 줄 아는 금도가 있었습니다.

지난 몇 주간 F학점 제자의 식견만도 못한 인사들을 많이 봤습니다. 버티기로 일관하는 집권당의 특정 세력은 물론이요, 국회청문회와 특검수사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미꾸라지 인사들이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었다니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올해에는 조기 대통령선거로 나라가 거의 반쪽으로 갈릴 것입니다. 한 집안 식구끼리도 정치적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한 솥밥 먹으며 원수가 되진 않습니다. 이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금도입니다. 새해엔 반대 의견을 용납하는 금도를 발휘하길 축복합니다. 다시는 이 나라에 반대파 블랙리스트니 뭐니 작성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차별대우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놓고 문화융성을 표방했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장창호 칼럼 보러가기➧장창호의 문화 단상

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