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박소향)

[골프타임즈=김효진 작가] 누구나 소풍이라 함은  설레고 기대가 넘치는 일이라, 필자도 그런 느낌에 충만했던 그 날 내 얼굴을 기억한다.

더구나 초등학교 저학년인 그때는 소풍을 간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칠 정도로 기대에 부푼 철없는 어린아이였으니 오죽 더했겠는가.

그런데 소풍날 당일 아침에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평소 순하디 순한 동생이 같이 가겠다며 떼를 쓴 것이다. 그간 전혀 하지 않던 바닥에 누어 생떼를 부리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엄마는 미리 약속이 된 듯 달래는 척 하면서, 내게 넌지시 데리고 가면 안 되겠냐고 권유하였다. 처음에는 펄쩍 뛰며 안 된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할 수 없이 한번만 데려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녀석은 신이 나서 자기가 먼저 나서며 빨리 가자고 채근까지 하였다. 소풍 장소는 평소 여름철 우리 놀이터였던 송진소(沼 )언덕이었다. 그곳은 언덕이라 하기엔 꽤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었고,  밑에는 시퍼런 소가 있었다.

여름철이면  꼭 두 세 명의 희생자가 나오는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어른들은 꼭 거기만은 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곳이었지만, 어린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놀았다. 

소란스러운 점심시간이 지나고 가장 기대에 부푼 보물찾기 시간이 되었다. 동생은 먼저 일어나 나서더니, 바닥의 돌도 뒤집고 하며 두 개나 찾아내는 게 아닌가. 

보물찾기 상품이라야 그저  학용품 일색 이지만, 그래도 동생에게는 첫 상품 이었다. 나한테는 맡기지도 않고 조그만 제 손으로 꼭 움켜지고 절대 놓지를 않았다. 

웃으며 떠들던 시간도 지나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학교에서 약 2km 떨어진 장소라 오전에 올 때는 그럭저럭 잘 걸어 왔었다. 그런데 김밥을 먹으며 잘 놀던 동생이 잠이 오는지 꾸벅 꾸벅 졸더니,  급기야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반장인 내가 친구들을 인솔해 출발을 해야 하는데, 동생을 깨우려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완전히 잠에 빠져버린 동생은 빙긋이 웃기까지 하며 꼼짝도 하지를 않았다. 

결국은 옆에서 지켜보던 담임선생님이 동생을 들쳐 업고 가자고 하셨다.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예쁘고 밝은 데다, 그날따라 예쁜 새 옷에 굽 높은 구두까지 신고 있었다.

어린 내 생각에도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동생 녀석은 편안한 얼굴로 업힌 채 출발을 하였다.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은 우리 삼형제 중 제일 통통한 편이었다.  완전히 잠이 들어 늘어진 상태니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을까. 비포장 시골 소로길을 2km나 되돌아오다가 마지막에는 선생님의 구두 굽도 부러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동생을 깨워 강의 좁은 외다리를 건너야 했다. 동생은 다리 앞에서 무서워 안 간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호순이가 자기 등에 업히라며 등을 내밀었다. 호순이는 학교를 늦게 들어온 다섯 살 많은 누나였다. 

그길로 집에 가서 어머니께 오늘 소풍 가서 있었던 일을 푸념 삼아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미안하다며 다음에 만나면 꼭 인사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사흘 뒤 어머니는 미장원에서 마주친 선생님께 백배 사죄하며, 그 인사로 그날의 파마 값을 대신 냈다고 하셨다.

이제는 동생도 같이 늙어가는 터라 그 때 그 일 얘기를 하면 자기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이영숙 선생님, 늘 환하고 따뜻한 성격의 예쁜 선생님은 지금도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

작가 김효진은
시와수상문학 시와 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수상문학 작가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꾸준한 문학 사랑으로 많은 문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저서 사집 ‘새벽 별을 걸고’ 2023년 제1회 정병국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