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2퍼센트 스틸 컷

[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웃픈’ 또는 ‘웃프다’라는 표현은 ‘웃기면서 슬프다’라는 뜻으로 표면적으로는 웃기지만 실제로 처한 상황이나 처지가 좋지 못하여 슬플 때 사용된다는 신조어이다. ‘편견’으로 인해 상식의 잣대가 고장 난 영화 제작 현장 안에서 벌어지는 ‘웃픈’ 사건들을 은유로 오늘의 부조리한 현실 세계를 통렬히 파헤친 문신구 감독의 새 영화 <2%>(2퍼센트)가 완성돼 곧 관객을 만난다.

<2퍼센트>는 2019년 영화 <원죄>로 유바리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춘사국제영화제 특별상 수상, 일본 아타미국제영화제 개막작 선정, 뉴질랜드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등,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문신구 감독이 3년 만에 내놓는 장편영화다. <원죄>에서 그는 “하나님은 나를 심판하고 나는 그 하나님을 심판한다”라는 다소 오만한 내용으로 소외계층과 종교의 갈등을 스크린에 담았는데, <2퍼센트>에서는 “2%는 0%가 아니다”라며 ‘끄트머리 삶’의 희망을 노래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생존확률 2%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41살 영화감독 정문정(허지나)이다. 문정은 영화 입문 17년 만에, 그것도 이름만으로도 대박이 약속된 국민배우(남명렬)가 주연배우로 출연을 약속한 작품으로 감독 데뷔 기회를 잡는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국민배우가 종적을 감춘다. 크랭크인이 내일인데, 제작진 모두가 방방곡곡 그를 찾아 나서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문정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연배우 없는 영화 촬영을 시작한다. 감독의 어이없는 촬영 강행에 제작자는 투자를 철회하고, 스태프도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난다. 문정의 생존확률 2%의 삶의 시계는 더욱 빨라진다. 과연 이 영화는 완성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영화의 제목 <2퍼샌트>의 모습이 그려진다. 문정은 이렇게 외친다. “2%는 0%가 아니다”라고.

사람들은 편견을 배척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편견에 사로잡혀 산다. 대체로 편견은 확률 게임의 산물이다. 공정과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거짓과 불합리가 분명한데도 확률이 높은 쪽(힘 있는 쪽)에 카드를 던진다. 편견은 일종의 도박이기도 하다. 결국, 이 편견으로 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산다. <2펴센트>는 “주연배우 없는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라는 편견을 깨부수려 한다. 문신구 감독은 “우리가 모두 주연배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긴 자, 있는 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그릇된 편견을 경계한다”라면서 “일그러지고 뒤틀어진 현실의 모습은 애써 외면하고 거짓과 조작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세력에 대한 성찰과 응징, 그리고 청산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번 영화를 통해 조성되길 기대한다.”라고 전한다.

<2퍼센트>에는 소위 ‘티켓파워’를 지녔다는 내로라하는 잘나가는 배우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영화감독 정문정 역의 허지나와 국민배우 역의 남명렬, 특별출연한 권병길 등이 낯익은 연기자다. 허지나는 올해 상반기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고유림(보나)의 어머니인 코끼리분식 안주인으로 열연해 ‘명품연기’로 조명받은 배우이고, 남명렬은 올해 이해랑 연극상을 받은 연극계의 베테랑이며, 권병길은 모노드라마 <별의 노래>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와 연극에 출연한 원로배우이다.

하지만 <2퍼센트>의 티켓파워는 이들 이외의 연기자들에게서 나온다. 작은 배역까지 배우 모두가 연극계에서 내공을 다진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이다. 강지원, 권해성, 유다미, 황건, 장재혁, 배연경, 주진성 등이 그들이다.

이들을 문신구 감독은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 누구나 다 부자일 수 없고 모두가 건강하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배우라고 해서 모두 ‘스타’도 아니며 ‘유명’하지도 않다. 달리 말하면 ‘스타’가 아니고, ‘유명’하지 않다고 해도 배우는 배우다. 우리가 주연배우 없는 영화에 도전한 힘은 바로 이 배우들이 있어 가능했다. 그들 모두 주연배우였다”라고 말한다. 이 또한 ‘유명 스타’의 ‘편견깨기’이다.

<2퍼센트>는 영화에서, 현실과 인물을 형상화할 때 논리에 맞게 이어 나가야 한다는 정형화된 영화 문법을 해체하고 있다. 서사의 핵심인 ‘시한부 인생’에서 흔히 표현되는 울고 짜는 ‘삶의 애착’은 보이지 않는다. 캐스팅에서도 스타파워를 외면한 채 철저하게 배우의 연기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르영화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영화에 주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배경이나 물체, 영화를 전달하는 데 주요하게 쓰이는 색깔(영화미술 혹은 분장) 등이 반복되거나 변주되는 장르영화의 특성이 곳곳에 등장한다. 주요 배경이 바다인 것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바다의 특성에서 선택되었고, 주인공이 매일 색색의 원색 가발을 바꿔 쓰는 특이한 여자로 설정된 것도 그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무작정 믿고 싶은 마음. 기대를 품은 마음이 현실을 모른 체해야 안심이 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편견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문신구 감독의 이같은 연출 방식에서는 최근 경제학에서 자주 인용하는 ‘바이킹형 인물’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설정한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창조적 파괴, 열망과 승부 근성, 승리에 대한 집요함과 끈질김, 상식을 엎는 발상을 갖춘, 이른바 ‘바이킹형’ 인물들이다. 자금 회수가 깜깜한 데도 투자를 결심하는 제작자, 죽음을 앞두고도 병원보다 촬영현장에 매달리는 주인공, 그를 응원하는 배우들과 스태프 모두가 ‘바이킹형’으로 그려진다. 편견으로 인해 상식의 잣대가 고장 난 사람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결국 <2퍼센트>는 전작 <원죄>처럼 독립예술영화로 완성됐다. 이에 대해 문신구 감독은 “독립예술영화로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영화, 특히 상업영화와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전한다. 다른 영화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꼭 완성도 높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영화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영화와 달라지는 것이란 이야기이다. 다른 영화와 다를 것이 없다면 무수한 영화 중 한편(One of them)에 불과하다는 것, 그래서 “대체 불가능한 작품만이 주목받을 수 있다.”라는 설명이다.

관계자 시사회에서 <2퍼센트>를 만난 영화인들은 그들의 단톡방에는 “리얼리즘의 승리다”, “어지러운 현실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준 제작진에 고맙다.”, “영화가 끝난 후 울컥 목젖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라는 소감이 올라왔다. 무늬만 요란한 소위 대작 상업영화의 현실도피성 이야기보다 현실을 직면하는 이야기에 공감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한 여인의 삶의 마지막 시공간을 둘러싼 ‘사실’과 ‘진실’의 퍼즐 맞추기다. 전면에 배치된 ‘사실’은 불가능한 영화 만들기이다. ‘진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이 가파른 경계선에 감독은 퍼즐 조각을 와르르 부어놓는다.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구성과 복선, 치고 빠지는 변칙복서 같은 대사, 절제된 서술, 연검처럼 날렵하면서도 묵직한 내상을 안기는 문신구표 연출은 읽는 이의 방어벽을 야금야금, 철저하게 무너뜨린다.

고백하건대, 관객은 중반에 닿기도 전에 깊숙한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를 향해 ‘진실’이 카운터블로를 날린다. 얻어맞고 얻어낸 것은 슬픔이나 감동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묶이지 않는 ‘어떤 것’이다. 거기에 이름을 붙여주는 건 관객이 누릴 기쁨이다. 관객은 이 작품에서 냉철하고, 강인하고, 뜨거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2%가 모자라든 넘치든, <2퍼센트> 제작진이 보내는 메시지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절망이든 희망이든 결코 0%는 없다”라는 것이다. 사회로부터 마이너 취급을 받는 사람들. 본래 하고 싶었던 일과 갈수록 멀어져 꿈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버텨내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이 영화는 그런 사회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런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곳이 바로 메이저라고 응원한다.

국내 개봉에 앞서 이미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출품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2퍼센트>는 포항 출신인 문신구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경상북도와 포항시가 제작 지원에 나서고 포항영화인협회가 주관한 민관합작 프로젝트 작품이다. 여기에 문신구 감독의 차기작 제작사인 부산의 영화제작사 ‘마리솔’이 후원사로 나서는 등 독립예술영화로는 드물게 든든한 지원군의 호위를 받은 사례로 주목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자발적 후원과 지방 영화제작사의 지원을 이끌어낸 <2퍼센트>의 제작 시스템은 “독립영화는 공공재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지 산업적 틀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라는 바람직한 선례를 남긴 경우이어서 많은 영화인이 이 영화의 선언적 의미에 주목한다. 바로 “영화 제작 지원은 이제 산업과 문화예술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라는 선언이다.

칼럼니스트 윤상길은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